• 최종편집 2025-10-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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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세도나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그만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뜻밖의 경관에 걸음을 멈춘 채 탄성을 지를 수밖에! 세상에 이런 데가 있었다니 나는 선뜻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봤던 치유의 빛깔을 떠올렸다. 주위를 둘러싼 자색과 홍색 조합은 맘껏 심신을 씻어내라는 눈짓이자 손짓. 게다가 여태껏 경사진 주거지 가운데 이만치 발걸음이 편안한 곳은 없었다. 일본 원도심이나 두바이조차 추종을 불허하리란 작심이 아니고서는 이토록 정교한 시공이 가능한 자체가 대단한 밑바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주인구는 만 명 선을 넘지 않고 살고 싶어도 더는 집을 지을 수 없어 고가의 주택을 빌리거나 사들이지 않으면 쉽사리 한달살이마저 여의치 않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다. 단지 흠이라면 연중 한겨울을 빼고는 더운 편이라는데 그마저 습도는 높지 않아 지낼 만하다니 구미가 당긴다. 거기서 만난 교포의 얼굴을 보니 고국의 정세는 걱정스러운 반면 그 여유로움에서 우러나오는 행복감은 감추기 어려워 보인다. 눈을 감아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곳은 맑은 기운을 뿜어내는 최고 거주지였다.


라스베이거스야말로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 세운 대작, 과연 한눈에 미합중국의 힘을 한껏 과시한 도시였다. 대뜸 회색빛 시멘트로 버무린 조각품이라고 하면 너무 내지른 수사일까? 하긴 트럼프 호텔을 보면 그 정체가 뭔지는 이미 밝혀진 셈이다. 호텔이라고 생긴 데는 어김없이 카지노. 정신을 혼미하도록 세팅해놓고 주머니를 털어가는 수법이다. 루시퍼가 달았음 직한 분홍빛 날개를 흔들며 엉덩이를 까발린 채 과객을 유혹하는 건 일상이다. 돈이 아깝고 시간이 모자라 그 대신 트램에 올라탄 지혜는 탁월한 선택. 느닷없이 이집트 크레오파트라가 중얼거리듯 아라비안나이트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혹자는 이렇게 비아냥대고도 싶을 것이다. 300여 만이 모인 화려한 밤의 도시에 왔거든 해묵은 숙제를 풀라는 등의 넋두리 따위 말이다. 뉴욕 스퀘어가든을 방불하는 불빛 아래 골 빈 여인도 만나고 디즈니랜드를 흉내 낸 동화 속의 고깔 탑을 구경했으면 됐지, 그 이상 혼을 빼는 듯한 실내 정원이나 허접한 베네치아는 그저 최후의 만찬일 뿐이다. 라스베이거스 그 미혹의 극치는 우리 부부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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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엔젤레스에 조성한 ‘스타의 거리’ 모습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은 이미 사양길이었다. 흡사 한국의 어느 도심 상가를 보는 느낌이랄까. 쓸쓸할 만큼 한산한 거리도 쏙 빼닮았다. 간간이 섞여 있는 영어 간판이 이곳이 U.S.A.임을 알려줄 뿐이다.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미국 내 두 번째 대도시에서 물가고를 견디다 못해 라스베이거스로 역류한다는 소리는 과장이 아닌 기정사실이라는데, 이러다간 곧 400만이 무너지는 날도 머잖았다는 걸 확인한 근거는 외곽지. 잡화점이나 한인 상점을 들를 때마다 지구촌에 울려 퍼지는 조종 소리를 실감한 참이다. 만연한 동성애로 인해 제3의 성을 설정한다며 남녀가 함께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일은 우리 부부도 해본 기상천외한 경험. 식탁에서 가십 삼아 그걸 말하니 동공들이 커다랗게 부풀었다. 이제 LA에 왔으니 할리우드 거리를 걸어보는 건 필수. 유명세를 치르는 만큼 거리는 북적였다. 명화에 등장한 스타들이 있다는 차이니즈 극장에서 안성기와 이병헌을 만난들 천사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유니버설 스튜디오보다 나은 건 거금을 투척한 대가로 보여준다는 유치찬란한 촌극이니 농락당한 기분이랄까.


예전 미서부를 재현해놓은 캘리코 은광촌에 들러 시계를 거꾸로 돌려본 건 나름 유의미했다. 사전에 공지만 했더라면 탄광촌 거미 열차도 타봤을 것이다. 거기서 곧장 남으로 내달린 곳은 샌디에이고 바닷가. 가이드가 권하는 언덕배기를 보아하니 30분 만에 오르내리려면 땀깨나 빼야겠기에 가벼이 해변을 걷기로 했다. 은근히 불어오는 갯바람이 소금기를 실어날라도 둘이서 나란히 잔모래를 밟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 범상한 다운타운을 지나 퇴역한 군함을 등에 업은 채 수병과 간호사의 사랑을 소환한 시공도 감미로웠다.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을 음미하려고 흔들의자에 앉아본 건 잘한 일. 씨포트빌리지 한쪽에 가로놓인 소품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중남미 상인들이 점거를 완료한 올드타운을 거쳐 기차에 오를 때만 해도 기대감이 컸으나, 여느 관광열차를 연상한 건 큰 오산. 창밖에 스치는 풍경화는 그런대로 봐줄지언정 낭만을 껴안고 태평양 연안을 따라 일렁이는 파도를 가슴에 담아갈 거라는 착각은 자유였다. 귀국을 위한 절차는 순조로웠다. 이로써 4,500Km 대장정의 여정은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61호)에는 ‘왜들 아이를 낳지 않을까?’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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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미서부 탐방기 ‘다양한 도시환경 보고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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