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경도시인 사다클에서 지루한 입국 수속을 밟고 대면한 아르메니아(Armenia: 280만가량, 29,743㎢, 8천 달러)에 대한 인상은 고유미를 지닌 수더분한 얼굴이었다. 미루나무에 둘러싸인 가옥에 설치한 가스관도 이웃나라와 대동소이. 종교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95%)라는 명칭을 사용하기에 물어보니 기존 정교회나 예수교(4%)와는 달리 그리스도 단성론을 취하여 민족적 결합을 꾀한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이는 계시(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깨우쳐 알게 함)를 왜곡한 것이다. 기독교 정통교리에서는 이를 이단(異端)으로 분류한다. 제번하고 예정했던 아르메니아 비잔틴 양식과 카브카즈 건축을 혼합한 알라베르디 지역의 아그파트 수도원은 수해 복구 중이어서 아쉽게도 발길을 세바나반크 수도원으로 돌렸다. 다행히 길이 78km, 폭 56km에 이르는 세반호가 넉넉한 품으로 “안녕(바렘)”하며 일행을 반겼다. ‘감사(멜시)’한 건 1,900m 고지에 찰랑대는 호숫가도 좋은데 촉촉한 물바람의 촉감이 고풍스런 수도원만큼이나 운치 어렸다는 것. 이번 여행 들어 처음 느낀 이런 기분은 나만이 누린 호사일까?
수도 예레반(약 110만 명 거주)의 보도는 앞서 방문한 두 나라에 비하면 눈에 띄게 양호했다. 과연 돌의 나라라는 명성에 걸맞은 석공술. 때마침 차창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경치 가운데 유독 눈요기가 될 만한 바위산이 많았다. 게다가 노르웨이에서 스웨덴으로 넘어올 때 장경(場景)을 코카서스에서 그대로 마주할 줄이야, 정겨운 휴양마을을 지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산맥이 온통 초지로 뒤바뀌었다. 지질학자들조차 모른다는 궁금증을 안고 나타난 보조 가이드는 한국 외대에서 공부한 20대 재원. 이름이 ‘아니’라는 말에 닉네임을 ‘아론’이라고 쓰는 해설자와는 어떤 사이냐고 물어 한바탕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발걸음을 재촉한 곳은 지하 감옥이라는 뜻의 코르비랍 수도원. 그 길목 양편으로 포도원이 펼쳐졌다. 그런데 밭 한가운데 잠시 내려 구름에 덮인 아라랏산을 겨냥하자니 아무래도 초점을 잘못 맞춘 듯. 어차피 수도원 둔덕에 올라서면 왼쪽은 소아라랏산이요, 오른쪽은 대아라랏산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좀체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아라랏의 신비를 껴안은 채 그 밑자락 널따란 묘원을 응시했다.
▲ 아르메니아서 바라본 아라랏 산정
바라볼수록 아르메니아를 대표할 만한 독특한 경관. 줄곧 설산을 맴도는 독수리는 무얼 노리는 걸까? 일찍이 이 땅에 정착한 선조가 노아의 5대손이라는 전설이 있단다. 다만 여덟 식구로 묶인 당대 의인의 육적 구원은 방주에 물기가 채 마르기도 전 밤새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추태로 이어졌다. 아마도 함, 셈, 야벳으로 갈라진 저주의 통로가 아니었다면 적어도 홀로코스트(레위기에 나오는 번제라는 뜻)로 대표되는 제노사이드의 참극을 되풀이하진 않았을까? 가끔씩 묵상에 임해보면 부지불식간에 필자 특유의 영적 노파심이 뇌파를 건드리곤 한다. 가능하다면 우주 공간에서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목도하며 지도상에 표시한 동서남북의 바다 빛깔이 흑해-백해-홍해-청해로 채색되어 있는지 보고프다. 그 시점이 임박한 날 아라랏산 어딘가에 자취를 감추고 있는 노아의 방주도 세상에 정체를 고할 것이다. 하츠카르 석판 십자가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우리 부부가 묘지공원을 산책한 건 그래서였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노라는 우리 속담처럼 죽음을 앞두고 배회하는 뭇 영혼의 행방에 대해 상고한 시공이었다.
아짜트 계곡에 퍼진 주상절리는 그 규모만 하더라도 세계 최대라는 희귀성이 있었다. 가까이 접근해 보아하니 다양성 측면에서도 이제껏 구경한 주상절리 가운데 최상급. 화산 분출 과정에서 용암이 흘러내리며 식을 때 육각형 기둥 모양으로 균열이 일어나 생기는 형태의 오묘함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필자의 눈매에 잡힌 문제점은 이토록 귀한 천연기념물이 급속히 망가지고 있다는 현실적 위기감. 아슬아슬 붙어있다가 낙하물로 인한 안전불감증은 물론 바로 위쪽으로 차량이 오가도록 놔두고 가옥들까지 방치한다면 거기서 내뿜는 매연이나 오폐수가 스며들어 얼마 가지 않아 훼손당할 게 빤했다. 큰 근심거리를 짊어진 채 구슬픈 연주로 물든 가르니신전 내 글라디에이터에 관람에 뒤이어 예레반의 랜드마크라는 캐스케이드 조각공원은 공화국 광장과 일체를 이룬 예레반 관광의 기준점. 층계마다 구상한 창의성이 돋보일뿐더러 발품을 팔아 맨 위 횃불 탑에서 아래를 굽어보니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산책로 끝에 가면 일평생 아르메니아를 제 몸처럼 아꼈다는 공원 설계자 타마니안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48호)에는 ‘보행 운동의 별미’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