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도 생소한 아제르바이잔(Azerbaijan: 1천만 남짓, 86,600㎢, 8천 달러)은 서남아시아에 속하는 국가로 이른바 코카서스(Caucasus,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30불의 비자피를 물고 당도한 미지의 나라는 첫눈에 지난날 명성에 애써 부응하려는 듯한 모양새. 마치 용트림하듯 치솟은 타원형 알로브 타워(일명 불꽃빌딩)나 비록 자칭이긴 하되 정복 불가능한 성역의 뜻으로 명명한 메이든 타워를 마주하면 그 절절한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성싶다. 아쉽게도 초소형 미니북 박물관이며 흘러간 제왕의 청동상은 있어도 빈약한 보관자료를 두고 메이든 타워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구시가지의 쉬르반샤 궁전의 고전미까지 가벼이 여기는 건 자칫 편견이거나 단견일 수 있다. 지상에 갖가지 중세문화재를 그대로 간직할 줄 아는 소양이나 오래된 가게를 영업 중 명소로 개방한 당국의 조치를 통해 개념 있는 행정적 체계를 확인한 터였다. 다만 헤이다르알리예프센터처럼 선뜻 동대문디자인센터를 떠올리게 하거나 어설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본뜬 표절작은 볼썽사납다고밖에 할 수 없다.
스탈린의 흔적이 서린 자유광장을 거쳐 정부청사가 모여있는 아제르바이잔의 과거 속 현재는 옛 영화의 궤적을 추적하면 얼마큼씩 숨은 그림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바쿠(240만여 명 거주)라는 묵직한 중심지와 흙먼지 날리는 외곽지의 현주소가 바로 그것. 필자의 경우 다소 번잡한 시가지로 들어서자마자 여기는 가능한 한 거창한 규모의 건조물을 지향한다는 인상이 짙었다.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유러피안게임의 주경기장으로 사용한 올림픽 스타디움(약 7만 명 수용,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설계)을 비롯해 아제르바이잔의 랜드마크로써 밤마다 현란한 조명쇼를 선보이는 곡선형 플레임 타워는 제법 유명세를 치른다는데, 과거완료와 현재 진행형이 뒤섞인 도심을 벗어나면 곳곳에서 작업 중인 유전을 만나게 된다. 메마른 대지를 보면 그나마 원유라도 묻혀있으니 천만다행인 국면이랄까, 단순히 사막이나 광야보다는 좀 낫다고 보면 된다. 창밖이 시종 흐릿한 건 희뿌연 대기질 때문인데, 문제는 기창을 통해 발견한 카스피해 기름띠였다. 연신 석유를 파내면서도 뒤처리가 미흡해 내륙에 갇힌 호수로 흘러든 탓이다.
▲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의 위용
휘어지고 깡마른 초목들 사이로 이따금 지나가는 녹슨 화물 열차를 보며 한 시간 반쯤을 달려가 고부스탄 KASSA 박물관에 이어 암각화를 감상할 때는 카스피해에서 불어오는 거센 마파람을 맞아야 했다. 여섯 개 원형 단층 건물에 배치한 대표적 전시물은 선사시대인들의 생활상과 각종 장신구들. 관련 기록에는 1947년 이후 전문가 디자파르사드가 발굴을 본격화한 뒤로 1965년부터 청동기 구조물이 나왔다고 한다. 일각의 의견이로되 기우제를 지낼 때 바위 구멍에 가축의 피를 넣어 소원을 빌었다는데, 천여 개 암석에 6천 점 이상의 그림과 고대 상형문자로 새긴 삶의 모습은 원시적 수렵과 사냥, 토템사상 등 유무형의 기록을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단다. 야외에 설치한 고대 주거 형태나 석조물에서 보는 바처럼 유물유적을 통해 대단한 고고학적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을망정 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문명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역만리의 국립공원을 답사하는 일은 매번 보람찬 여정으로 꼽는다. 척박한 산기슭에 놓인 바위를 두드려 청아한 소리가 난다면 나름 기암괴석이라 인정해도 되리라.
한글을 독학으로 익힌 현지 가이드가 해설을 곁들인 칸의 여름 궁전은 웅대한 프레스코와 섬세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이네들의 자부심. 그에 덧붙여 실크로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카라반사라이(숙소)도 옛 정취를 되살려내고 있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기거하고 있어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없었고, 알바니안 교회, 큼지막한 모스크(무슬림 93%)와 기도처들을 돌아본 일은 덤이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곳이 불의 나라답게 조로아스터교의 발상지라는 사실. 하지만 그에 딸린 동네는 유명 관광지인데도 바닥이 고르지 않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계단은 왜 그리 높고 높낮이마저 일정치가 않으니 행여 넘어지지나 않을까 불안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은 이란에 산다는 무려 3천만 아제르바이잔인들의 행방이다. 끝으로 원유 수출에 주력하는 건 수긍하되 소금기를 먹고 자라는 염생식물도 미래자원이라고 귀띔해주고 싶다. 어쨌거나 출입국 절차에 시달려선지 토종 꽃처럼 살갑게 “살람(안녕)”이란 인사를 건네며 “사고올(감사)”이라고 후일을 기약하긴 힘든 곳으로 기억될 것 같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45호)에는 ‘코카서스 기행 - 조지아의 트빌리시는 문전성시’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