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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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특유의 달변에 다방면의 식견을 겸비한 박대장의 입담은 그야말로 점입가경. 서른 명이 넘는 일행을 인솔하는 밀양 박씨 공간공파 29대 종손 박승호는 그의 말마따나 4대 보험도 안 되는 일개 일용직 노동자 가이드 나부랭이가 아니라 타고난 말솜씨에 뛰어난 현실정치의식까지 갖춘 직업인이었다. 다만 티토가 구축한 발칸반도 7개국의 통합이 아닌 봉합이 그의 자연사로 말미암아 급격히 와해된 데는 잔학한 인종 청소자로 덧씌워져 급사로 처리한 밀로셰비치의 죄목에 숨겨진 내막이 있을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진단이다. 즉, 세계 제1-2차대전 이전의 유럽 상황이 일종의 도시국가 형태로 존재한 걸 감안한다면 그대로 존속하기도 어려웠겠지만 그로 인해 동시다발적 학살 현장으로 둔갑한 사실관계는 명백하다. 그렇다면 이번 여정을 통해 나는 과연 그간 말로만 듣던 삼색기의 흩어진 향방을 얼마큼 가늠할 수 있을까? 내심 우려스러운 건 여행 적색경보를 발령한 코소보(인구: 180만, 면적: 한국의 1/9가량)는 제쳐 두고 크로아티아인들 역시 자연보호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호젓한 곳에 자리한 호텔이 의외라 싶게 인기가 높은 건 심신이 지친 현대인의 의중을 반영한 실상이리라. 우포늪을 방불한 습지에서 살아있는 생태를 생생히 목격하고 곧바로 찾은 곳은 크로아티아 남부 아드리아해 연안에 있는 ‘자다르’. 피부에 와 닿은 날씨는 어느덧 초여름이다. 로마시대 유적의 밑간을 본 뒤 시멘트로 구축한 해안선을 따라가니 이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길손을 맞는다. 이른바 바다 오르간이 그것. 세계에서 유일하게 파도가 연주하는 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는 말에 저마다 두 귀를 곤두세웠다. 늘어선 전시물을 감상하며 걸어가니 이탈리아풍의 촘촘한 구시가지. 고문헌에 나올 만큼 해묵은 도시로 중세에는 무역의 중심지였고 한때(1920~1940)는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기도 했단다. 허울뿐인 현지 가이드를 대동한 채 박대장이 연신 풀어놓는 해박한 전문용어들. 스위스에서 보았던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와 특이한 형태의 원형교회 기초석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그리 깨끗해 뵈지도 않는 풀밭에 벌렁 드러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반나체의 두 여성. 제아무리 문화가 색다르고 습속을 달리한다고 한들 길목을 가로막은 행태는 꽤나 볼썽사납다. 더구나 발길이 잦은 비잔틴 양식의 도나트 성당 곁에서 인간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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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아티아의 자다르 유적지

 

블레드보다 더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크르카 국립공원’을 대하는 가슴은 무거웠다. 초장부터 도무지 천연은커녕 인위의 냄새가 코를 찔렀기 때문에. 1인당 국민소득이 마의 1만 불을 넘기면 너나없이 환경을 떠올린다는데 막상 예외는 있는 법인가? 더구나 중국의 구채구를 다녀온 이들이 내뱉는 푸념은 하나같이 거기에 비해 어림없다는 품평. 물론 아직 그곳을 접하지 않은 이들에게야 나름 감탄할 구석이 없는 건 아니지만 조금만 눈여겨볼라치면 입구에서 벌이는 공사방식 자체가 잘못된 오염원을 양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동로에 들어선 가옥이 원래 있던 건조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필자의 눈에는 환경오염의 진원지. 자랑삼아 수영을 허용하는 조치도 그리 좋아 뵈지는 않았다. 당장 시정조치가 필요한 일은 물고기들에게 먹잇감을 던지는 행위. 그나마 다행인 건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에서 발견한 천연에 가까운 이끼류였다. 빛바랜 에메랄드빛 폭포수에 흠뻑 취한 나머지 숨은 보석을 놓쳤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다. 정신을 맑게 하는 심미적 요소 중 으뜸은 단연 자연상태인 것을!


지중해상으로 해님이 빨려드는 가운데 눈부신 아드리아해를 다시금 만났다. 이탈리아반도를 마주한 ‘스플리트’는 일찍이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항구도시.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이자 달마티아의 주도답게 역사 지구에 소재한 3~4세기 건축물인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과 중세 요새에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양식의 교회당이 남아 있었다. 특별한 건 이곳이 3세기경 로마 황제의 고향이라는 명분에만 묶여있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 나라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 수심이 깊어 여러 교통망을 체계적으로 결합할 수 있었을뿐더러 그로 인해 역대 비잔틴제국의 거점도시로 발전했다는 대목은 고무적이다. 둔덕에 늘어선 집들은 강렬한 햇볕을 가리기 위해 죄다 차양을 매달았다. 베네치아풍의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시청사는 지금 민속학박물관으로 쓰인다는데 여건상 직접 가볼 수는 없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79호)에는 ‘발칸반도 주마간산기 - 보스니아: 야곱성당을 거쳐 모스타르’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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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발칸반도 주마간산기 ‘크로아티아: 자다르 크르카 스플리트’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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