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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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문인, 철학박사

필자 역시 그 정도의 예시와 비유를 통해 삼위의 하나님을 설명하려는 원저자의 의도에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성부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은 실행하시며, 성령 하나님은 적용하신다는 설명을 곁들이곤 합니다. 세 분의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방식은 성경에서 제시하는 만큼의 표현들에 국한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저도 학위논문의 한 단원을 오롯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라는 내용으로 채워 나가는 입장에서 애틋한 동병상련을 느끼기는 합니다만 실체도 없는 논리를 붙들고 늘어질 필요는 없다고 사려합니다. 다만 앞서 적시한 하나님은 하나님을 나을지언정 만들지 않으신다는 대목과 함께 성부와 성자 사이에는 선후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발견은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우리를 위해 성령을 보내신다는 대목을 뺀 대목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이 영원부터 함께 하시며 서로가 기뻐하시고 사랑하며 공경하셨다는 부분은 옳은 탐구입니다. 사실 이 지점은 너무나 오묘하여 우리가 죄다 알 수도 없고 깊이 몰라도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전염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설명을 시도한 삼위의 하나님에 이어 고집 센 장난감 병정에 대한 부분은 저 같으면 이렇게 서술하였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이 된 전대미문의 대사건을 달팽이나 게보다는 개미나 아메바 같은 미물에 비유했더라면 더 실감이 나지 않았을까 합니다. 떠올려보면 단세포 동물에 지나지 않은 미물들이 나서서 개미의 생명을 구하려고 개미가 된 사람을 쳐다보고 비웃는 꼴이니까요. 요체는 성부와 성자가 맺은 하나님 자체내의 계약으로 인해 인류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본질이 생물학적 생명체에서 영적 생명체로 바뀐 셈입니다. 필자는 이를 두고 천지창조보다 더 큰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이기도 하신 분에게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기만 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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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락산 일대에서 만난 풍경화

 

의문을 풀고자 던진 독자의 질문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아들을 많이 낳으면 되지 왜 굳이 꼭두각시를 내세운 다음 다들 생고생을 시키느냐는 항변입니다. 원저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엉뚱한 데 쓰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는 원론적으로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믿음이 없다면 공허감을 느끼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답답하게도 온갖 과학적 지식을 다 동원한들 쉬이 납득이 될 리 없는 영역입니다. 요점은 우리는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으로 지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엄연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믿어도 되고 믿지 않아도 끝까지 참고 기다려주시는 분이 삼위의 하나님이니까요. 둘째는 인류 전체가 유기체라는 걸 오해한 부분입니다. 사람을 망치는 것 중에 하나가 강요된 획일주의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전체주의나 개인주의를 배격해야 합니다. 사탄은 그릇된 사고를 퍼뜨리는 데 혈안이 들려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큰 죄악인 줄 속히 알아차려야 합니다.


제목으로 내세운 가장하라는 말은 언뜻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기도문’의 첫 구절을 생각하면 금세 이해가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보면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진짜 아버지인 양 가장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위장도 아니고 변장은 더욱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양자로 받아들이셨으니까요. 곧 아이들이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그렇게들 가정하고 살라는 권유입니다. 선한 배역을 자꾸 연습하다 보면 진짜 그러한 인격체로 변화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리스도로부터 조에(Zoe)가 옮겨오면 명목상의 신자에게도 예수님의 영이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불신자를 통해 성도가 된 원저자의 경우가 대표적이랍니다. 죄인인 인간은 예외 없이 구원을 베푸시는 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반드시 실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권고하십니다. 항상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입니다. 옛 자아를 버리고 새로운 심령이 되라는 권면입니다.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주신 자유의지를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을 작은 그리스도를 대하듯이 바라보고 계십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75호)에는 ‘기독교를 위한 변증 - 구원의 실체를 명문화함’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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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기독교를 위한 변증 ‘하늘나라의 뜻을 이해함’ (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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