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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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문인, 철학박사

기독교의 주요 덕목 가운데 첫째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단순히 자선이나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마음이나 애정이 절로 생기기보다는 미워하는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난제입니다. 설령 내가 선천적으로 냉정한 기질을 가졌다고 해서 사랑을 배워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일단 그냥 그를 사랑한다고 치고 행동해보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그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느끼는 만족감과 기쁨은 그야말로 비밀입니다. 똑같은 영적 법칙이 정반대 방향으로 무섭게 치닫기도 합니다. 독일인의 유대인 학살은 그래서 벌어진 일입니다. 선과 악은 모두 복리로 증가한답니다. 기독교의 첫사랑은 지정의의 문제입니다.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마태복음 22:37-38) 라는 계명에 순종하십시오. 사랑은 우리의 죄나 무관심을 지치게 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절대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신학적 덕목 가운데 소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인류사를 훑어보면 바로 다음 세상을 위해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은 선한 믿음의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이상을 생각지 않으면서부터 기독교의 영향력은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천국을 지향하면 세상을 덤으로 얻을 수 있거늘 반대로 세상을 바라보다가 둘 다 잃어버리는 법칙입니다. 이제 우리는 현재의 문명 이상을 소망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지상에서 천상의 가치를 추구하지 못하는 것은 그에 관한 훈련을 받지 못해서입니다. 우리가 받은 교육은 거의가 세상에 마음을 두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천국을 염두에 둘 때조차 미처 그걸 깨닫지 못하고 흘려버릴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으로 채우지 않으면 끝내 공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절대 공간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예 그 공간의 존재를 무시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환경을 탓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게 환상일 뿐이라고 지레 결론을 내리는 자들도 있습니다. 거듭난 기독교들은 하늘나라를 이룩하고자 자신의 목표를 바꾸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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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락산 일대에서 만난 풍경화

 

믿음은 성경 말씀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결단입니다. 그러나 이성을 거치지 않은 믿음은 사상누각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정작 믿음을 무너뜨리는 주범은 상상력과 감정입니다. 믿음과 이성이 한편이 되고 감정과 상상력이 다른 편이 되어 싸움을 벌이는 것입니다. 고로 믿음은 단순히 누군가의 신념을 바꾸라는 제안이나 설득이 아닙니다. 치열한 추론을 거쳐 자기 확신이 들 때 고수하는 기술입니다. 믿음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훈련해야 합니다. 첫 단계는 사람의 기분은 바뀌기 마련이므로 지속적인 지도와 말씀 공부가 필수입니다. 가만히 내버려 두는 데도 점점 자라나는 신앙은 없습니다. 둘째 단계는 차원을 높여 기독교의 덕목들을 실천해보는 진지한 시도입니다. 일주일 이상의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선행을 위한 집요한 노력을 해보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알기 어렵습니다. 포기하고픈 유혹과 맞서 싸워보지 않은 사람은 유혹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모릅니다. 사악한 충동을 물리쳤을 때라야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상황을 속속들이 아실뿐더러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아는 순간부터 우리의 진정한 삶이 시작됩니다.


이쯤에서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기독교 서적을 읽다가 이해할 수 없는 게 나오면 그냥 넘어가십시오. 시간이 지난 뒤 자연스레 의문이 풀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선행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그분의 관심사는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갈수록 나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맡기는 상태로 변화해가는 일이 관건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상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일입니다. 그것이 신행일치의 삶을 실천하는 데까지 이르는 길입니다. 굳건한 믿음으로부터 선한 행동이 나옵니다. 이 원리를 두고 이와 같은 패러디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오직 사랑이라고? 그 사랑은 돈이라고?”라고 말입니다. 심지어는 “오직 믿음이라고? 믿음만 있으면 무슨 짓이든 상관없다고?” 비아냥대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빌 2:12-13)라는 진리입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73호)에는 ‘기독교를 위한 변증 - 삼위의 하나님을 신뢰함’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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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기독교를 위한 변증 ‘믿음으로 사랑을 소망함’ (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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