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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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문인·철학박사

이제 그리스도인의 순결에 대해서 다룰 차례입니다. 성도덕은 기본적으로 옷차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기독교의 규범은 결혼해서 배우자에게 충실하든지, 독신으로 금욕하든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요지는 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본성을 제어하는 일에서 기독교의 원칙을 따르는 데는 절제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불완전한 자가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참고로 심리학에서는 억압된 성적 욕망이 위험하다고 가르칩니다. 기독교에서 결혼을 권장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육체가 짓는 죄보다 더 나쁜 건 영적 쾌락을 추구하는 일입니다.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고 즐거워하는 것, 남을 자기 맘대로 휘두르는 것, 남의 흥을 깨뜨리고 좋아하는 것, 남의 험담을 즐기는 것, 권력을 탐닉하는 것, 증오를 부추기며 기뻐하는 일 등이 그것입니다. 동물적 자아와 악마적 자아를 즐기는 자들이 거리의 매춘부보다 지옥행에 더 가까운 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결혼관에서는 부부를 하나의 단일한 유기체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결혼에 대한 열쇠와 자물쇠의 비유는 적절해 보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배우자의 간음을 제외하면 이혼을 금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결혼식장에서 서약한 것에 대한 무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증인들 앞에서 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순결을 논하기에 앞서 정직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상대를 향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책임이요 정의라는 규정입니다. 사랑하면서 느끼는 황홀한 감정은 여러 가지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삶의 토대일 수는 없습니다. 유한한 인간의 감정이 늘 지속 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남편을 가정의 머리(에베소서 5:22-24)라고 합니다. 부부가 동등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가정에도 일정한 순서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강력한 사랑을 바탕으로 가족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수호할 최후 결정권을 행사하는 데 따른 부득이한 순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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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락산 일대에서 만난 풍경화

 

기독교의 규범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9)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원수까지 용서해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 한복판에서 다시금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태복음 6:11)라는 말씀까지 맞닥뜨리면서 떠오른 말은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선언입니다. 필자의 경우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뒤부터 고민을 거듭하다가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나 자신이 스스로 자격이 있기에 나로부터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나 자신에게서 발견된 비겁함, 자만심, 탐욕까지 무작정 덮어주면서 말입니다. 기실 누군가를 지독하게 미워한다는 것은 오롯이 증오의 세계에 갇히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살인하지 말지니라”(출애굽기 20:13)라는 말씀을 주신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전쟁터에 나간 기독교인 병사가 총으로 상대를 무찌르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는 적의나 복수심을 물리치라는 충고입니다. 전혀 사랑할 구석이라곤 없는 자들까지 사랑한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사랑할 만한 모습이 아닌데도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단지 그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에 사랑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자유로울 수 없는 죄악 중에 교만과 자만이 있습니다. 천사도 교만으로 인하여 악마가 되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께 정면으로 맞서는 일입니다. 교만한 자에게 불쾌감을 느끼는 것도 알고 보면 자기 안에 교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남과의 비교에서 옵니다. 경쟁을 부추기는 권력이야말로 교만한 자들을 좋아합니다. 교만은 필연적으로 적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교만한 자가 믿는 하나님은 상상 속의 신을 만들어 섬기는 것입니다. 교만은 영적인 데서 비롯되니까요. 교만을 통해 온갖 유혹을 극복하려는 자들도 있습니다. 교만은 영적인 암으로써 악마가 좋아하는 모습입니다. 다만 타당한 칭찬을 듣고 즐거워하는 일은 습관적이 아닌 한 교만은 아닙니다. 교만한 자들일수록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입에 발린 목소리로 자신을 부족한 사람으로 포장하는 경우를 조심해야 합니다. 겸손해지고 싶다면 자신이 어딘가 교만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72호)에는 ‘기독교를 위한 변증 - 믿음으로 사랑을 소망함’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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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기독교를 위한 변증 ‘정결한 결혼관을 규정함’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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