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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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문인, 철학박사

무신론은 한마디로 단순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믿으면 만사형통이라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무지입니다. 기독교야말로 전혀 단순하지 않습니다. 실제 알고 보면 실재하는 모든 것들은 복잡다단합니다. 예컨대 탁자 하나만 해도 분석해보면 까다롭습니다. 그것에 잠깐만 눈길을 주어도 시신경부터 뇌 활동까지 그야말로 총체적입니다. 더구나 추상적인 현상을 알아듣기 쉽게 해설하기는 훨씬 어렵습니다. 무수한 법칙들이 뒤엉켜 우주 전체를 형성하고 있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왜 하나님은 기독교를 복잡하게 만들었느냐고 따지고 듭니다. 하지만 지구를 비롯한 여러 행성을 바라보아도 태양을 중심으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주기를 따라 움직입니다. 자,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요? 이원론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그들은 영원 전부터 선과 악이 양대 축으로 존재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천사는 악마가 되기 전에는 선한 존재였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죄다 오염된 환경으로 인해 후패(朽敗)하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무언가 부패했다는 말은 처음에는 신선했다는 얘기니까요. 하나님이 만드신 사물의 원형은 본래는 모두 좋은 것이었습니다.


 인간들이 신을 믿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첫째는 선한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렇게 악이 기승을 부리느냐에 대한 불신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애초에 악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악행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한 탓입니다. 태초에 인간을 로봇처럼 만들 요량이었다면 굳이 창조하실 까닭이 없으셨겠죠. 누구든지 신이 명령하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면 개개인은 벌써 존재할 가치를 상실했을 것입니다. 죄악은 사탄이 인간들에게 가르친 산물일 뿐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제도와 문명을 만들어 질서를 유지하는 사람의 지혜를 보면 하나님의 선한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니 더는 소망이 없을 때 갑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분이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죄에 대한 용서를 외쳤습니다. 스스로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다녔습니다. 그는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미치광이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비록 그분을 메시아로 믿지는 않을지언정 무작정 사기꾼이라고 몰아붙이는 광인은 아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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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락산 일대에서 만난 풍경화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직면한 터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수용 여부입니다. 핵심은 인간 스스로는 자신의 원죄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신성과 인성을 지닌 분에게 이 문제를 맡기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진실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중요한 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나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 연결 고리입니다. 하지만 이는 영적인 차원의 문제이기에 더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망의 메시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대전제는 회심입니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 죄에 물든 자아를 버리지 않으면 영생을 누릴 수 없으니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은혜라는 이름으로 모든 인류에게 값없이 주어졌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일은 각자의 지정의(知情意)에 달려있습니다.


 예수는 참 하나님이었으므로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었고, 참 인간이었으므로 완전히 낮아질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그의 길을 따르자거나 가르침을 따라 노력하자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에게서 비롯된 생명의 기운이 우리 안에 들어오도록 하자는 새로운 제안입니다. 다만 교파에 따라, 각자의 신앙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 있습니다. 요체는 넘어졌을 때 일어서는 영적 대처가 관건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넘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요점은 회개를 통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데 있고, 내 안에 복음의 씨앗이 살아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영적 생명의 기운이야말로 사람을 무력감에서 탈출하도록 도우니까요. 인간의 태초부터 그리스도와 함께 유기체적으로 일한다는 의미가 그것입니다. 오래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불만도 잘 알고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의 생각보다는 오래 참으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지체하지도 않으십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70호)에는 ‘기독교를 위한 변증 - 도덕률로 선악을 분별함’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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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기독교를 위한 변증 ‘무신론의 허구를 반박함’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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