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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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백범은 약소국 신세를 면하려는 의도에서 일부에서나마 이웃 나라의 연방에 편입하기를 바라던 자들을 향해서는 대뜸 미친놈이라고 응수했다. 다소 거칠고 모진 말로써 매섭게 일침을 가하고야 마는 모습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한 형제간도 엄연히 위아래가 있거늘 하물며 어찌 피가 다른 남의 나라 사람들과 호형호제하며 탈 없이 지낼 수가 있겠느냐는 반문이자 애당초 불가능한 일을 붙잡고 씨름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일갈이었다. 우리 겨레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먼저 피를 나눈 동족끼리 화합하는 길이었다. 어찌 내부에서조차 단합하지 못하고 이민족으로부터 예우받기를 바라느냐는 현실 인식이었다. 민족 내부의 굳건한 결속만이 스스로를 지켜내는 첩경이라고 보았다. 그가 지닌 성정(性情)은 비단 일제 침략에 저항하는 불같은 정의로움뿐만 아니라, 일상사와 주변 사회의 생활사에서까지 의로운 일이 아니면 결코 나서는 일이 없었다. 이는 백범이 일찍이 황해도 신천 청계동에서 유학자 고능선(高能善) 선생을 만나 교육사업을 펼치면서 평생의 신조처럼 지켜낸 모습에서도 그 연유를 찾을 수 있다.


내내 그가 보인 용맹성만 해도 그렇다. 약관에도 못 미친 19세의 나이에 벌써 동학의 팔봉접주가 되고 선봉장이 된 일이며, 김이언이 이끄는 의병 부대에 투신하여 국모 살해의 한을 풀려고 일본군의 특무장교 쓰찌다(土田)를 처단한 일이 이를 증명한다. 나아가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을 조직하고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도운 일에서 알 수 있듯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전혀 굴하지 않는 대담성을 보였다. 사람이란 존재가 흔히들 작심삼일 하기는 쉬워도 일관성을 지키기는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일을 떠맡고 나면 그것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간에 열정을 다해 일로매진하는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범이 책임을 맡아서 착수한 일은 무엇이든지 잘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는 맡은 바 임무를 열성껏 성실하게 완수해내고야 마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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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덕신도시로 진입하는 길목

 

김구는 불필요한 허례허식을 벗어 던져버리고 실질적 가치를 숭상하는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허황한 공리공론이나 탁상공론을 싫어한 만큼 실질적 논의를 통한 실천을 중시하는 유형이었다. 그가 동학, 유학, 불교, 기독교의 여러 종교를 두루 섭렵했음에도 진리의 핵심보다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교화시켜주고 독립운동을 지원해주는 데 중점적으로 초점을 맞추었을 뿐, 어느 한 종파의 교리에만 지나치게 경도되거나 집착한 일이 없었다. 곧 다원주의자에게 종교적 배타성이 자리 잡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에게는 이른바 목숨을 걸만한 이상이 아니면 과감하게 양보하고 타협하는 포용성이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아량을 베풀 줄 아는 그러한 성품이었다. 그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대할 때 비록 자기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설득과 연합을 통하여 서로 용납하고 협동했다. 맨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는 외교와 협상의 수완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해와 사랑의 무기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실례를 보여주었다.


가령 1927년 임시정부의 국무령이 되었을 때 득달같이 민주적인 국무위원제를 추진한 예를 보거나 일제 말기에 좌파 독립운동 단체들과 인물들을 포용하여 좌우 분열을 사전에 막아내는 등 통일정부의 수립을 준비한 일은 그의 포용적 과단성과 관련된 대표적 사건이었다. 백범은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공포한 뒤 좌파 민족 혁명당의 조선의용대를 제1지대로 편입하여 광복군을 통일했으며, 의정원에도 좌파 사회주의 정당과 단체대표들을 야당 의원으로 영입하여 의정원을 통일의회로 개편하였고, 임시정부에 부주석제를 신설하여 좌파 단체들의 대표를 선임하여 끌어안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백범은 광복 후에 역사적인 남북협상을 추진하면서 처음부터 통일정부를 수립하려 한 것도 이러한 포용성과 관련된 것이었다.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자칫 분단의 고착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못내 씻어내지 못한 것은 국제상황을 너무 고지식하게 판단한 데서 온 근시안적 오류라는 저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그의 포용성에서 비롯된 일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와 같은 강인한 성품과 특장점을 지닌 백범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를 그의 사상과 이념적 행보를 통해 알아보기로 한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65호)에는 ‘미완의 거인을 기리며 - 문화강국을 꿈꾼 거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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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미완의 거인을 기리며 ‘김구가 소유한 특장점’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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