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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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꽃샘추위가 한창 맹위를 떨치던 어느 춘삼월 학기 초입, 제자들에게 김구가 쓴 “나의 소원”을 가르치며 남달리 느낀 바가 있었다. 그 까닭인즉 이 글이 속한 ‘짜임새 있는 말과 글’이라는 대단원을 보기 전부터 평소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감으로 백범이 적격이었다는 생각을 줄곧 가다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역사에 가정이란 존재하지 않더라도 만약 이분이 우리나라의 초석을 다졌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적잖은 부분에서 몰라보게 달라졌으리라는 아쉬움을 뇌리에서 쉬이 지울 수 없었거니와 제대로 책 한 권 구경하기 어렵던 시절 유독 네모난 책자 만지기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책 읽기, 아니 그보다는 책으로 성을 쌓아 올리는 놀이를 무척 즐기곤 했을뿐더러 그걸 이용하여 나름 경계선을 긋고 견고한 성곽을 세우며 맘에 드는 아이들과 소꿉놀이를 하는 것이 그토록 재미질 수 없어서였다. 돌이켜보면 그때마다 두툼한 책이야말로 책상이나 의자로 전용하는 데 늘 편리한 도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소소한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른들로부터 책이란 게 읽으라고 있는 게지 그렇게 못살게 굴라고 주어진 물건이 아니라는 핀잔을 연신 들어야 했고, 서당 훈장이신 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지냈던 한 해 동안은 누런 서책 끈이 떨어지고 닥나무 종이가 부스러진다는 꾸지람을 푸지게 기억 속에 저장해야 했다. 불철주야 생업에 바쁜 부모님께도 잔소리를 들은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튼 나는 비록 많은 숫자는 아닐지언정 일상처럼 크고 작은 책들을 곁에 끼고 놀았던 셈이다. 놀랍게도 그 몇 권 안 되는 책자 가운데 바로 『백범일지』가 있었다. 회상컨대 아마도 조그마한 문고본이었는데 이리 굴리고 저리 돌아다닌 끝에 사라져버린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조부께서는 김구 선생님을 깊이 흠모하고 계셨던 것 같다. 비록 그 소책자는 아니로되 손자인 내가 다시금 읽고 있으니 그야말로 대를 물려가며 그분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는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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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덕신도시로 진입하는 길목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작정하고 자서전을 손에 잡았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독립군 야전사령관의 글월이 눈동자에 빨려 들어왔다. 그 유려(流麗)하고 섬세한 필치가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 누구인들 생사가 경각에 달린 전쟁터에서 이만한 역사적 장면들을 일목요연하게 엮어낼 수 있을까? 아무리 떠올려봐도 『난중일기』를 빼고는 이만치 자신의 고뇌와 신념을 정리해 후세에 고스란히 담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김구라는 인간 됨됨이가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이미 최고의 경지에 올라섰다고 쉽사리 분별하면서도 적잖이 놀라울 뿐이었다. 나의 알량한 인격으로서는 언감생심 따라갈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白凡逸志』를 산책하며 감상문이란 형태로 나의 생각을 가다듬을 수만 있어도 마냥 흐뭇하기만 하다. 이제 주어진 과제는 이분의 진면목을 제대로 표현하는 일이다. 그간 나름대로는 어디 가서 글줄깨나 쓴다고 자부했거늘 막상 묵직한 활자들을 눈앞에 두니 왠지 끼적거리는 손목이 떨리고 요량과는 달리 문맥이 흔들려 글감을 추스르기가 만만치 않았다.


백범은 모두에서 자신을 왕손이라고 밝히면서도 스스로 상민으로 낮추는 겸손을 잃지 않았다. 시종일관 그의 솔직담백한 고백은 나를 흠칫흠칫 놀라게 만들었고, 자신의 어릴 적 생각을 남김없이 서술한 용기가 초장부터 두 눈을 붙잡았다. 다른 자서전들을 보노라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미사여구로 꾸며져 태어날 때부터 보통 사람이 아님을 과시하고, 그래야만이 존경의 대상으로 남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작동하는 것과는 확연히 달라서였다. 예컨대 아버지의 심한 매질을 책망하며 항렬에 따라 회초리를 들이대는 집안 내력은 의외였다. 더구나 어린 김구가 장연 할아버지 내외에게서 느낀 감정은 내 가슴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일로 인해 도리어 매를 맞는 아버지의 처지를 고소해하는 순진무구한 모습에서 필자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느낀 터였다. 필자의 경우 부당한 구타(?)를 당하면서도 감히 억울하다는 의사표시는커녕 최소한의 불만조차 거의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대 억압적 사회 분위기로 보아 어느 누군들 어른 앞에서 그만치 당돌한 태도를 보일 수는 없었겠으나 그분의 특이한 유년의 모습은 새삼스러웠다. 특유의 엄격성을 유지하면서도 저마다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출하는 집안 공기가 마냥 부러웠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63호)에는 ‘미완의 거인을 기리며 - 일제 강점기의 치욕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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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미완의 거인을 기리며 ‘남달랐던 집안 분위기’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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