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2-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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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기다리던 시공을 찾아 가족여행을 하던 중 느닷없이 들른 곳이 있었다. 동쪽 바닷가 영덕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이정표를 보니 ‘주왕산 국립공원’, 여기가 바로 그 주왕의 전설이 알알이 박혀있다는 거기로구나! 언뜻 듣기로도 선경에 비견할 만한 비경을 뽐낸다더니 먼발치에서 바라봐도 전혀 낭설은 아니었다. 놀라움 반 반가움 반으로 예정에도 없이 그쪽 입구를 향해 냅다 차를 몰았다. 매표소에 도착해 사방을 휘 둘러보니 첫눈에 들어온 것은 뫼의 반 이상을 뒤덮고 있는 장엄한 바윗돌. 마치 정성껏 분재해놓은 듯 싱싱한 소나무들이 제각각 균형을 잡고 암석 틈바구니마다 알알이 박혀있었다. 이토록 장관이니 ‘석병산(石屛山)’으로 칭할 수밖에. 마치 바위로 병풍을 두른 거 같다고 하여 그렇게 부른다는데 잠시 간판에 적힌 깨알 같은 글씨를 읽어보니 그 옛날 중국 은나라 마지막 왕의 사연이 골짜기에 굽이굽이 서려 있다는 설명이었다. 

 

주왕산은 그 이름의 유래부터 전설에 기인했다. 주왕의 본명은 원래 ‘주도’였단다. 어려서부터 천품이 범상치 않았을뿐더러 5세 때 글을 깨쳐 11세에 이미 병법서인 육도삼략(六韜三略)과 천문지리에 능통했으며, 그때부터 “황하의 물을 들이키고 태산을 갈아 없애버리겠다”라고 호언장담하며 군사를 끌어모아 후일을 도모하지만, 그가 꿈꾼 새로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국 중과부적을 느낀 나머지 신라까지 쫓겨가 몸을 피한 곳이 바로 여기였고, 온갖 위장술을 동원하여 끈질기게 버티다가 그만 한중 양국의 양동작전에 걸려들어 끝내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패각하던 중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낭떠러지 중간에 요새처럼 뚫린 굴속으로 숨어들었단다. 하지만 도피의 세월도 잠깐, 마침내 주왕은 천명을 다한 듯 귀신도 모를 것 같던 천혜의 은신처에서 뒤쫓던 마장 군사들에게 발각되어 최후를 맞으며 한 많은 생을 마쳐야 했다. 바로 그 주왕을 본떠 붙여진 이름이 주왕산이고 주왕굴이란다. 통일신라시대 말부터 줄곧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었다는데 대전사(大典寺)와 백련사(百蓮寺) 또한 그가 남긴 남매의 이름을 딴 절이라며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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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청송군에 소재한 주왕산 <제공 = 주왕산 국립공원>

 

경상북도 청송과 영덕 일대를 두르고 자리한 주왕산. 보자마자 한눈에 빨려 들어온 산자락이요, 그 생김새 또한 수려하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해발 722m 높이의 뫼를 시간이 허락하는 데까지 오르기로 했다. 온갖 기암괴석들이 울창한 수풀과 어우러져 신묘막측한 풍광을 연출하는 산속으로 기꺼이 들어가 보리라 당차게 마음먹은 터. 행장을 보니 산행을 하기에는 적잖이 어설프다. 등산화는커녕 간편한 바지마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였다. 게다가 해가 이미 중천에 떴으니 잰걸음이어야 하리라. 하지만 우리네 산행 의지를 꺾기에는 역부족. 해낼 수 있다는 격려를 아이들에게 곁들이며 바위가 돌계단을 이루고 있는 호젓한 등산로를 따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산세가 웅장하고 골짜기가 깊어 발길 닿는 데마다 명경지수(明鏡止水). 걸음을 서두른 탓인지 우리는 금세 콸콸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니 더욱 밋밋하게 오르다 말 수는 없는 노릇. 큰 뫼를 딛고 눈을 들어 위를 바라다보니 푸르른 수림이 잔뜩 우거진 틈새로 높푸른 하늘이 활짝 웃으며 화답한 데 이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새털구름이 화들짝 놀란 듯 엄청난 크기의 돌덩이를 주의하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읽었던 글줄이 떠올랐다. 명품을 그린 병풍이로되 잔솔가지가 너무 늘어져 한쪽으로 치우친 품이 흠이라는 촌평. 그걸 좀 빌리면, 하늘로 솟아난 듯한 정자에 날아오르는 백학 한 쌍이 빠져버려 가벼워진 기품이 자못 아쉽다는 푸념에 묵직한 동양화의 진경산수화 한 폭이라기에는 적이 모자라서 못내 애를 태우다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른 곳이 여기였다는 구절이었다. 막상 그곳에 깊숙이 들어오니 연달아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한반도의 등뼈로 구실을 하는 태백산맥의 남쪽 끝자락에 스리슬쩍 우뚝 솟은 명산으로써 웅대한 바위산의 위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절경이라 하여 하등 나무랄 데가 없으렷다. 이제부터는 바위벽과 암벽 사이를 타고 올라야 한다. 난감한 건 밑바닥에 때 이른 낙엽과 푸석푸석한 돌가루가 수북이 쌓였다는 점. 위쪽으로 발길을 내딛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신발이 불편하여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자꾸만 미끄러지기 일쑤. 고맙게도 아이들이 오히려 성큼성큼 순발력 있게 잘 따라붙어 주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54호)에는 ‘주왕산 바윗돌 - 고초를 겪고 오른 지점’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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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주왕산 바윗돌 ‘길 가다 만난 기암괴석’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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