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세상사는 이야기 증명사진.jpg
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결국은 서로의 생각, 주장, 선호는 다르지만 훌륭한 예술품이 되는 모자이크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유기적으로 드리는 예배, 자유롭게 드리는 예배, 자연스러운 기도, 감각적 체험을 중시하는 예배(EPIC: 체험, 참여, 이미지, 연결)를 지향하는 일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스타벅스 스타일의 예배나 효율성, 측정/예측 가능성, 통제성을 강조하는 맥도날드에서 기법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전자의 주장을 보면 교회는 스타벅스에서 교회의 비전(기원하고 싶은 목표)과 사명(존재하는 이유)보다 매주 일요일에 하는 일이 더 큰가를 비롯하여 성도 개개인을 향한 선택과 집중, 까다로운 성도들의 욕구를 조사해 반영해야 하고, 하나님과 깊은 연대감을 주는 위대한 공동체, 교회 방문자에게 의도적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지역사회와 이웃에게 “세 번째 공간”으로 봉사하는 등 늘 환영받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한편, 친숙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의식과 의례를 통해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교회는 목적을 달성하는 장소인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교회보다 스타벅스를 더 좋아하는가를 들여다보니 복음이 선포됨으로 말씀에 대한 감동이 있는 예배, 문화 마케팅, 건강한 교제의 장, 환경 관리, 환대하는 공동체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요청입니다. 놀랍게도 인공지능(AI)이 설교하는 예배가 가까워졌다는 경종이었습니다. 20세기 테크놀로지는 NBC(핵, 생물, 화학) & 21세기 GNR(유전, 나노기술, 로봇공학)에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즉 사물지능시대에 기업용 솔루션-의료-농업 등에 AI가 들어와 스트리밍 전쟁이 시작을 알렸고, 향후 10년은 전기차 시대, 디지털 헬스케어가 라이프스타일이 되어 로봇과 교감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일본의 로봇 페퍼에서 보듯이 이미 AI와 기독교는 컴퓨터에 인간의 기능을 결합한 대체재를 고안해냈습니다. AI 설교자의 출현 가능성으로 사회적인 영향력, 트랜스휴머니즘과 같은 새로운 종교, 도덕적 행위자로서의 전자인격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한 참입니다. 그렇다면 설교에 AI 사용하기를 고민할 시점입니다. 단 영성적 설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전달자로서의 인격적 교제를 감안하여 언어적 물리성을 초월한 영적 교류의 보조적 수단이어야 합니다.


이제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예배에 매스미디어의 접근성, 유용성, 최신성, 영속성이라는 가치를 플랫폼 자체의 개방성, 즉시성, 유통성, 보완성, 기능성, 다양성 등을 접목하면 예배 홍보, 실황 중계, 피드백 실시간 반영, 정보 공유화, 교육과 교제, 공동체의 건강한 소그룹 형성 등 쌍방향 상호작용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평일에도 예배할 수 있다는 사고의 대전환이 뒤따라야 합니다. 청중을 깨우기 위해서는 설교에 변화가 있어야 하고, 영적 충전을 위한 예배가 다양화, 특화되어야 하며, 목회자가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역설입니다. 다만 예배의 대상은 창조주이시므로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이 우리 예배의 근거가 되어야 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도록 우리에게 계시한 말씀으로써 예배의 온전한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즉 주일예배는 설교 중심의 전통을 탈피하여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통로이기에 은혜의 수단이 되어야 하며, 예배의 거룩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형식과 순서에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세상사는 이야기.JPG

▲ 충북 진천과 맞닿아 있는 안성 배티성지

 

관건은 세상속으로 들어가는 예배입니다. 일찍이 종교개혁의 주요과제는 예배개혁을 통한 신앙개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예배가 생명력을 잃은 요인으로 인본주의의 영향, 곧 인간 중심의 예배로 세속적 감동과 눈길을 끌려는 동기, 갖가지 프로그램으로 예배를 대신하려는 시도, 교역자들이 예배를 잘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빚어진 결과임을 지적하는 이유입니다. 예배개혁론자들의 주장대로 말씀의 회복, 예배 중심에 회중을 앉히는 문제, 제사상이던 성찬을 하나님 백성의 잔칫상으로 회복하는 노력, 사제들의 전유물이던 예배 프로그램을 회중을 위한 내용으로 바꿔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하나님과 세상을 잇기 위한 징검다리였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계시와 응답의 현장으로써 하나님과의 교제, 성도의 교제, 세상을 향한 사랑의 교제, 세상 속에서의 예배행위이므로 하나님, 백성, 세상이 연결되는 지점이니 말입니다. 교회 안에 갇힌 교회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53호)에는 ‘주왕산 바윗돌 - 길 가다 만난 기암괴석’이 이어집니다. 



태그

전체댓글 0

  • 33728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세상사는 이야기] 다양한 교회의 필요성 ‘미래를 대비하는 교회상’ (6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