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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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한 학기를 알차게 마무리한 보람의 맛은 언제나 기분 좋은 자유의 시공이다. 평소에 비해 늦은 아침을 들고 그리하리라 작정한 바도 없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그러나 오랜만에 바람이나 쏘이자며 자동차 페달을 살짝 밟는다는 것이 그만 장호원을 지나고 음성을 거쳐 어느덧 충주에 들어서면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풍치에 금세 물들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냉큼 돌아서기 싫은 국면. 그렇다면 일단 이 순간을 즐기리라. 우리 네 식구는 하나같이 사방에 펼쳐진 황홀경에 흠뻑 빠져보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렇더라도 왠지 어정쩡한 느낌이어서 단양팔경 중 어느 한두 곳만 구경한 다음 나중에 다시 올까, 아니면 내친김에 숙소를 잡고 청려(淸麗)하기 이를 데 없는 나머지 절경까지 죄다 돌아볼 건가를 제각기 재어보았다. 원래 의도는 분명 둘 다가 아니로되 주변의 청아한 풍경이 네 명의 나그네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점심때가 가까워지니 장기 전체에 출출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직 장호원은 못 미쳤으나 바로 곁에 단아한 초가가 있어 그 옆 솔숲 자락에 자리를 깔았다. 그런데 주섬주섬 챙겨온 과일에 문제가 생겼다. 트렁크에 넣어둔 수박에 얼이 잔뜩 먹는 바람에 맛이 좀 이상했다. 통째로 버리기는 아까워 성한 부분을 골라 먹는데 딱 한 입 베어 물기가 무섭게 아주 정색하는 인사가 있었으니 어린 아들내미였다. 그 모양새가 하도 우스워 다들 배꼽을 잡는 가운데 드는 생각인즉 오늘은 김밥 도시락이나 얼른 까먹고 가벼이 드라이브나 즐기다가 적당한 지점에서 그냥 돌아가는 게 좋겠다는 맘이 언뜻 들다가도, 까짓것 이왕지사 일이 이쯤 되었다면 내친김에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느낌이 오락가락했다. 어렵사리 내린 결정은 아쉽지만 가장 유명한 청령포만 재빨리 둘러보고 집에 돌아가자는 쪽이었다.


부랴부랴 영월로 향하는 길. 목하 차창 밖은 수려한 강산의 연속극이다. 상상한 이상 고운 풍치에 너나없이 매료된 듯 차 안은 연신 감탄사들로 가득하다. 어느새 청풍명월(淸風明月)을 예약해둔 채 남쪽으로 흐르는 내[, 시내와 강의 중간 크기]가 넓다고 하여 붙여진 듯 광천리(廣川里)라는 팻말이 보였다. 그 청량하기 그지없는 청령포(淸玲浦)에 다다랐음을 알아차린 건 첫눈에 비친 비경(祕境) 때문이었다. 읍내로부터 십 리 좀 못 미친 지점의 좁다란 강가에는 막바지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 몇몇이 띄엄띄엄 한가로운 강촌을 시름없이 거닐고 있었다. 자료를 들춰보니 청령포는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곡류하여 반도 모양의 지형을 이룬 곳으로써 동··서쪽이 모두 깊은 물줄기로 막혔을뿐더러 육지로 이어지는 남쪽마저 육륙봉의 험준한 층암절벽이 솟아있었다. 이를테면 단종의 유배지로 낙점할 만한 섬 아닌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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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영월에 소재한 청령포


아닌 게 아니라 영화 빠삐용의 요새처럼 탈출이 불가능한 절해고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항간에 널리 육지 속의 고도(孤島)로 알려진 대로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인 데다가 남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가로막고 있어 고스란히 감옥을 삼기에 손색이 없다는 게 중평이로되, 속절없이 세월만 흐르다 보니 솔숲이 울창하고 강물은 더없이 맑아 영월 팔경 중 으뜸으로 꼽는 명소에 걸맞게 피서객과 낚시꾼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따라서 거기에 가려면 반드시 배를 타야 한다. 재밌게도 강철 밧줄을 손으로 잡아당기며 강폭을 가로질러 건너편에 맞닿는 수단이 색다른 정취와 감흥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조심스레 뭍에 오르자마자 가장 먼저 널따란 잔돌밭이 가족 단위의 일행을 맞았다.


청령포는 한낮인 데도 해가 진 듯 어두웠다. 그러고 보니 햇살이 뚫지 못할 만치 울창한 수목들로 빼곡하다. 하늘을 뒤덮은 나무 가운데 맨 먼저 눈에 띈 건 관음송(觀音松). 단종의 유배 생활을 줄곧 지켜보았을 거라며 볼 관()’ 자에 피맺힌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뜻으로 소리 음()’ 자를 따서 붙였단다. 입간판을 보니 둘레가 5m가 넘는 높이 30m가량의 600년생 소나무는 빼어난 자태로 인하여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적송이었다. 그 우측으로는 단종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자 일반인의 출입을 엄금했던 금표비(禁標碑)가 있었는데 한때 화마에 휩싸여 영조 2년에 복원했단다. 돌비에 쓰인 동서삼백척 남북사백구십척 차후니생역재당금(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泥生亦在當禁)”인즉, 사방으로 접근이 엄격히 금지된 구역이었음을 소개한 내용이었다.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세상사는 이야기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다음호(646)에는 청령포의 오래전 풍경화 - 처연한 단종의 인물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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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청령포의 오래전 풍경화 ‘청량한 포구의 산수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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