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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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아닌 게 아니라 겉모양만 보면 누구라도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요컨대 ‘청계8경’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이러했다. ‘청계광장’을 지나 ‘광통교’에서 벽에 새긴 ‘정조반차도’를 감상하고 나니 문화의 벽에 펼쳐놓은 ‘패션광장’이 우리 부부를 맞는다. 추억어린 ‘빨래터’를 뒤로하고 2만여 시민이 동참한 ‘소망의 벽’에 이르러 하늘물터에 세운 ‘존치교각과 터널분수’를 보노라면 그 기교와 정성이 가히 놀랄 만하다. 그러나 정작 내 눈을 사로잡은 곳은 ‘버들습지’. 모름지기 천변풍경 가운데 단연 으뜸이었다. 인파에 섞여 징검다리를 건너다 마주친 송사리 떼와의 만남이 이를 오차 없이 증명했다. 그밖에 귀여운 분수를 보는 맛도 심심찮았고, 샛강과의 조우 또한 즐거웠다. 상주인구 천만을 헤아리는 거대 도심에서 이만한 산책길을 걷기는 쉽지 않으니까. 이게 바로 서둘러 인공하천으로 복원한 이유였으리라. 듣자니 하버드대학교 부동산학과에서 이곳 사례를 연구과목으로 개설했단다. 다만 괄목할 만한 성과임에는 분명해 보이나 다소 과장한 듯한 찬사는 여기까지. 이제 곰곰이 왜 자연 하천을 조성할 수는 없었는지 차례로 따져볼 일이다. 차제에 이따금 옛 고향에 출몰하는 슈퍼 쥐들의 정체에 대해서도 추적할 대목이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뒤돌아보니 줄잡아 7~8Km는 넉넉히 걸은 것 같았다. 약 두 시간여 2년 3개월(2003.7.~2005.9.)에 걸친 대역사의 현장을 밟아온 참. 하긴 청계천 복원을 마친 직후에는 매스컴마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명물이라는 호평 일색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방문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었을뿐더러 여러 나라에서 필수 관광 상품으로 꼽는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언뜻 더없이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난공사 현장에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숨은 희생자와 공로자들이 있었다. 그에 더해 오랜 기간 이곳을 터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소시민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의 흔쾌한 협조가 없었던들 이처럼 빠른 기일에 완공하기는 어려웠을 터다. 하지만 수많은 상인들에게 약속한 갖가지 경제 대책은 일순간에 허공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애석하게도 자살자가 속출했고 아직도 그 아픔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최종 책임자는 누구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어찌 되었든 청계천은 야경이 장관이라는데 밤늦게까지 남아 죄다 보고 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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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천 <출처 = 성동구청 홈페이지>

 

천변 벽면의 검은 돌판에 새긴 깨알 같은 명단이 보였다. 청계천 복원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헤아리고 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잘난 시장을 빼고는 모두가 가나다순. 이 또한 긍정적인 측면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대변하는 일면인 데다가 새삼 설계자의 미래지향적 마인드가 돋보인 연출이니까. 막바지에 들른 청계천문화관. 청계천 주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놓은 기념관이었다. 친절한 도우미에게 상세한 안내를 받으며 불현듯 떠오른 게 있었다. 소설가 박태원의 ‘천변풍경(川邊風景)’의 줄거리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1930년대 후반 발표한 장편소설로 50개의 절로 나눠 70여 명의 등장인물이 펼치는 파노라마인데, 일제 중산층과 소시민의 생활 모습을 그린 피카레스크식 구성의 세태소설이라는 요점을 간추려 다뤄주었다. 저만치 못내 미련이 남은 ‘서울숲’일랑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다리가 몹시 아프기도 했으나 너무 늦은 시각에 퇴근하는 무리에 뒤섞인 채 귀가하기는 더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보고 가려던 황학동시장은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곧잘 안다고 장담하던 아내마저 뇌리에서 까맣게 멀어진 줄을 알아차리지 못한 터. 그 언저리를 맴돌다가 그냥 돌아서려니 한꺼번에 피로가 몰려왔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간신히 상왕십리역사를 찾았고 국철을 이용해 천안행 급행이 서는 역에 내렸다. 그나마 남은 먹거리가 있어 출출한 기운을 달래준 건 퍽 다행한 일. 단팥빵이랑 귤이랑 남은 계란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서울에 오면 도심이든 지하철역이든 하등 주위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다. 극히 서민적이면서 한편 서구적이랄까. 어디서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유는 늘 소중하다. 열차가 출발하고 고대 빈자리가 생겨 눈을 붙이니 어느새 낯익은 시가지. 택시를 타고 아파트 현관에 내린 시각은 저녁 7시경이었다. 당신과의 외출은 늘 행복하다는 지어미의 입말에 달떠 지아비 손으로 차린 저녁 밥상. 아침에 먹다 남은 북어 무국이 언 속을 풀어주었다. 서울에서 묻은 미세먼지를 깨끗이 씻어내고 감사예배를 드린 뒤 잠자리에 누우니 오늘따라 보금자리가 한결 보드랍고 아늑하구나.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38호)에는 ‘에덴동산에 숨은 비밀 - 태초의 축복을 방기하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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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서울 나들이 ‘천변을 가로지른 산책’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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