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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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벼르고 벼른 끝의 서울 나들이. 다소 늦은 아침나절, 지하철 출근 인파를 피해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오늘의 주제는 중앙박물관 관람 및 공원과 천변 산책. 마을버스에서 전철로 연계한 요금 체계의 혜택이 생각보다 쏠쏠했다. 그간 지근거리에서 바라만 보고 있다가 목하 서울로 가는 새로운 교통편을 체득할 기회를 잡은 셈이다. 실제 피부에 와 닿은 승차감도 꽤 괜찮았다. 때가 때인지라 얼마큼 예상은 했으나 의외다 싶을 만치 승객이 적었다. 하지만 수원에 이르니 상황은 정반대. 순식간에 북적이는 차창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게다가 벌써 오래전이로되 탈서울 뒤 해마다 몇 차례씩 향경(向京)할 때면 새삼 언짢아지는 게 있었다. 우리네 차창 풍경은 왜 이 모양일까? 굳이 희뿌연 하늘을 뒤덮은 아파트단지를 실례로 들지 않더라도 푸른 산맥을 뭉개고 중구난방으로 지어댄 건물들을 보면 심란하다. 난개발에서 주요인을 찾을 수 있겠다. 지금이라도 풍광과 어울리는 지붕 형태를 디자인하고 벽면 색깔만 통일해도 웬만한 그림은 나올 듯한데 왜들 미적거리는지? 혹여 경제선진국 진입에 걸맞은 문제 제기는커녕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은다면 볼썽사나운 대한민국의 풍경화를 확연히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연신 나타나는 후줄근한 상가 및 주택가. 너저분하고 지저분한 구석도 이따금 끼어든다. 대략 한 시간 반 만에 이촌역에 내리니 ‘국립중앙박물관’. 1909년 11월 창경궁 안에 이왕가박물관으로 개관한 이래 1915년 12월 총독부박물관을 거쳐 해방 후 1945년 12월 독립 박물관이 되었다가 몇 군데를 오가며 전전한 끝에 2005년 10월 28일 경복궁 시대를 마감하고 드디어 용산시대를 열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건물의 격조를 높여주리라 기대했던 외양과는 거리가 멀다. 이왕이면 전통 한옥의 우아한 자태를 살려 지었으면 좋으련만, 신축한 건조물의 겉모양은 아무리 뜯어본들 별다른 의미조차 찾아낼 수 없을 만큼 어정쩡했다. 덩치로만 친다면야 세계 여섯 번째 규모라지만 그 위용마저 별로인 터에 다행히 시멘트에서 풍기는 칙칙함을 주위의 섬세한 조경이 조금은 감싸주었다. 다만 유독 공공장소에만 오면 흐트러지는 무질서의 고질병. 왜일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사람들로 붐비는 건 반가운 일임에도 나이가 들수록 그런 모양새를 참아내지 못하는 건 나의 못된 성정 탓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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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 외경

 

1층 상설 전시장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해지기 전까지 둘러볼 빡빡한 일정이 핑계였다. 압권은 중앙에 자리한 ‘경천사십층석탑(敬天寺十層石塔)’. 개인적으로는 전체를 통틀어 가장 박물관다운 전시물로 여겨졌다. 첫 전시관은 고고관. 그런데 입구에 걸어놓은 연표의 좌우가 뒤바뀌어 있었다. 직원에게 문의하니 동선을 거슬러 거꾸로 들어왔으니 시선을 역으로 돌리는 불편함쯤은 감수하란다. 아무튼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와 초기 철기를 거쳐 원삼국부터 신라시대까지 일사천리로 훑고 지나갔다. 평소 궁금해하던 발해는 바로 옆 역사관에 있었다. 거기서 가장 관심이 가는 곳은 금석문실과 한글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 상정고금예문의 우수성과 우리 한글의 탁월함은 변함없이 빛났다. 2층의 미술관에서는 서예실이 눈에 띄었고, 3층 회화실에서는 도자보다 금속공예에 눈길이 갔다. 아시아관에서는 단장을 마친 인도네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낙랑유적과 신안해저유물이 관람객을 모았다. 잠시 앉아 창밖 경치를 감상하며 쉬다가 발길을 옮기니 기증 유물들의 배치는 일목요연하지가 않았다. 그 가운데 걸음을 멈춘 곳은 일본인에게서 되돌아온 수집품들. 하나하나 살펴보니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늘 그렇듯이 문제는 형식보다 내용물에 녹아있다. 총 33만 점의 국보급 유물에도 불구하고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비해 전시물이 빈약해 뵈는 건 나만의 시각일까? 매사 외식(外飾)을 경계하라는 선현의 가르침과는 다른 차원의 인식. 아내 역시 그리 탐탁한 눈빛은 아니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천편일률적인 배치도라면 그야말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영국박물관이나 루브르와 견주자는 얘기는 아니다. 남의 물건을 훔쳐다가 제 물건인 양 으스대는 꼴불견보다는 문화 국민의 자긍심과 자존감을 떳떳이 지키는 일이 몇 갑절 가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더욱 간송 전형필 선생이 그립다. 그처럼 해외를 떠도는 골동품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일에 정책 당국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나아가 실력 있는 큐레이터를 양성하고 편리한 부대시설과 주변 경관의 조성 등에도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36호)에는 ‘서울 나들이 - 허파와 같은 용산공원’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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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서울 나들이 ‘박물관과 녹지의 만남’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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