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세상사는 이야기 증명사진.jpg
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우리네 인생은 저마다 주어진 달란트를 노자 삼아 떠나는 자유여행이다. 그 가운데 지혜문학이야말로 생의 지축이 흔들릴 때마다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지침서다. 상처 많은 일생을 통해 곁에 두고 읽을 지혜의 말씀이 있다는 사실은 무한한 축복이다. 당신이 주님의 자녀라면 영혼의 잘됨을 인도하는 탁월한 길잡이를 최대한 활용할 일이다. 특히 양날의 칼 같은 언어를 조심하라는 것이 잠언의 숱한 타이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결같이 훈계를 싫어한다. 지혜를 버리고 스스로 어리석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으므로 고귀한 삶을 영위해야 마땅하건만 창조하신 목적을 벗어나 점점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해 가는 연유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 그러기에 잠언은 누차에 걸쳐 가르치며 경고하는 것이다. 예컨대, 미련한 계집의 초청에 응하면 망하는 길로 접어든다, 지혜로운 자의 책망을 거부하는 자의 종말은 빤하다, 하나님의 미움을 받고 살아날 자는 하나도 없다는 데도 굳이 이를 거부하는 선택이 우리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참이다.


악인이 되지 않는 길은 의외로 그리 어렵지 않다. 단순히 지혜로운 권면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돌아서면 된다. 자기 멋대로 방탕하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덧 악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선하게 살려면 언제나 지혜자의 명철을 사모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그중에 으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주옥같은 말씀을 부지런히 섭렵해야 한다. 더불어 후대에 가르쳐 함께 지켜내야만 한다.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하시는 분께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이기에 그렇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창조주 앞에서 무언가를 숨겨 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우매한 일이다. 전도서 7장 29절의 말씀 그대로,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하나님 없이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잘못된 행위다. 그것을 깨닫는 일이 최고가는 이성이다. 훈계가 되는 잠언을 지킨다면 우리의 삶은 빛나는 지혜로 넘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변화할 수 있다.

 

세상사는 이야기.JPG


지혜문학 열차에서 내리며 깨달은 지혜는 명백하다. 잠언에서 추구하는 지혜의 세계는 인간을 존중하는 사상이다. 사람을 천시하고서는 슬기를 터득할 수 없다는 법칙이다. 지혜문학의 어휘 속에 담긴 내용의 핵심이 심판의 필연을 강조하는 연유다. 창조주가 주신 권능을 극대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시기가 목하 오늘이라는 외침이다. 하나님께서는 공평무사를 주문하시는 이유다. 인간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지혜문학 전반에 흐르는 지혜의 총합이다. 하나님은 어느 특정인에게만 특별한 능력을 쏟아부으시지 않으셨다. 그분은 공명정대한 규칙 속에서 심령의 내면을 일일이 감찰하신다. 맡은 바 책무를 겸허히 감당하라는 것이 주님의 변함없는 가르침이다. 지혜로운 말씀을 경청하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자고이래 창조주께서 주시는 교훈을 멀리하는 자에게는 그 해악이 삼사대까지 미쳤거니와 오직 말씀에 근거해 살아갈 때는 대대로 천대까지 구원을 받게 된다는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는 지복(至福)의 비밀을 값없이 알려주신 참이다.


 하지만 즐거움에는 반드시 절제가 따라야 한다. 주신 능력의 남용은 필연적으로 판단력의 마비를 가져온다. 유혹의 올무에 걸려들지 않는 지혜는 말씀을 가까이함으로 섭렵할 수 있다. 여타 종교에서 주장하는 마음의 제어는 내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참된 지혜요 공적 정의이기에 그렇다. 그리스도인의 신중한 말이 긴요한 바는 그래서다. 조리 없는 불필요한 논쟁은 십중팔구 다툼을 유발하므로 경계하라는 경고다. 책망은 그 유익을 심사숙고하여 우회적으로 시도할 일이다. 그러니 충고는 먹히는 곳에 시와 때를 따라 권고함이 슬기다. 인간인지라 근묵자흑(近墨者黑)하다 보면 멸망의 길로 함께 휩쓸려 가기 십상이다. 범죄하는 자와 어울리면 같이 죄를 짓게 마련인 것이 인간사회의 한계적 상황이다. 하나님의 법정에 서서 나의 알량한 선행을 운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위는 없을 것이다.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전도서 17:27)”라는 말씀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


 솔로몬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하나님 앞에 가감 없이 자복했다. 인생의 허약함을 고백하기 시작한 터였다. 회복에 대한 확신의 섬광이 잠자던 욥을 일깨운 참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우리의 차지가 되었다. 의롭다고 하셨기에 드디어 의인일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은 바였다. 살아온 세월에 대한 탄식과 절규는 비단 욥이나 솔로몬의 몫만은 아니었다. 천상에 먼저 간 다윗이 그랬고, 바울도 그러했다. 뒤늦게나마 지혜의 가치를 알아가는 사람들의 행보가 의미심장한 이유다. 성도는 깊고 높은 회개의 사다리를 통해 절대 순종을 배워야 한다. 순수한 복종 뒤에 주신 것은 아낌없는 축복이었다. 그 끝점에 영혼 구원이 있다. 그분의 주권적 통치에 동참하는 것만이 인간들이 애써 실천할 덕목이다. 젊디젊은 날에 위로부터의 슬기를 터득하여 주어진 달란트만큼 열심히 살다가 말년에 자손들에게 은혜를 전수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다. 이슬처럼 사라져갈 인생의 도정에서 감지하는 창조주의 사랑만이 지상최대의 행복을 담보하는 첩경인 것이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나의 영혼을 지으신 하나님께 되돌아가는 여정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28호)에는 ‘독서와 서평의 관계성 - 독서의 중요성’이 이어집니다. 


태그

전체댓글 0

  • 28291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세상사는 이야기] 지혜문학과 떠난 자유여행 ‘성경은 구원의 약속’ (6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