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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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천여 권의 책을 짊어진 채 시동한 국어국문학이란 학문은 생각보다는 수월했다. 오후 네 시에 시작해 밤 11시에 끝나는 직장 일을 병행하고서도 나는 높은 학점을 받았다. 적성에 들어맞는 학업의 진전은 괄목할만한 지적 성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턱없이 모자란 수면의 질량으로 급격히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써야 했다. 나는 전공과 관련한 책들을 모으는 재미로 종로서적과 교보문고의 재고 코너와 할인매장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 줄기차게 발품을 팔다 보니 가뜩이나 비좁은 전세방이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남들의 눈에는 제집 장만도 못한 주제에 참으로 유별난 취미를 가졌다며 수군댔을지도 모른다. 고마운 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치열한 관문을 뚫고 곧바로 교육대학원생이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추동력은 평온한 가정이었다. 아내의 내조에 힘입어 졸업논문을 쓰는 일에 집중했다. 세 명의 동기 가운데 홀로 석사학위를 마무리한 것은 주님의 은혜였다. 어렵사리 시작한 나머지 대학 2년과 야간대학원 2년 반까지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수학 연한이 남들보다 뒤로 밀리기는 했어도 얻어낸 열매가 결코 작지 않았다. 허송한 세월을 따라잡아 보았고 맞이할 미래를 앞당겨 다져보았다. 


그해 겨울 나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로운 직장을 얻었다. 전세에서 새집으로 옮긴 환희는 기대 이상이었다. 서울을 떠난 책의 숫자만도 이미 나 혼자서는 짊어지기 어려운 천 권을 넘어섰다. 난생처음 마련한 내 집의 구석방에 바라던 서재를 꾸미기로 했다. 농부 겸 목수 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손을 빌려 칸칸이 번듯한 서가를 세웠다. 누가 봐도 멋들어진 새 책방을 번듯하게 마련한 터였다. 얼마나 고대하던 나만의 서재였던가. 고대 때는 지금이다 싶어 잽싸게 고향 집 구석방에 쟁여놨던 서책들을 공수했다. 한 달에 걸쳐 책 정리를 마치고 나니 남부럽지 않은 서재가 위용을 드러냈다. 제법 주제별 배치까지 고려한 듯 쳐다볼수록 흡족하기만 했다. 책에서 나는 냄새가 옛날 가마솥 누룽지처럼 구수했다. 한 칸 한 칸 서가를 채워가는 재미가 이토록 쏠쏠한지 미처 몰랐다. 내 명의라야 달랑 집 한 채가 다였지만 농부가 땅뙈기를 늘려가는 기분이 흡사 이럴 거 같았다. 솔직히 빈 서가를 메우는 마음만치 책장을 넘기는 보람을 느꼈는지를 되돌아본 계기였다.


그런데 왠지 가슴 한쪽이 허전했다. 바야흐로 영적 감지기에 접어든 참이었다.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릴 예배당을 찾은 건 그때였다. 이 교회 저 교회를 전전하다시피 주위를 샅샅이 살폈다. 반경을 한껏 넓혀 오산에서 천안까지 훑고 다녔다. 아침저녁으로 가정예배는 드렸지만 영안이 열리기 전이어서 목회자들이 극구 감추는 데까지 훤히 꿰뚫기는 어려웠다. 쏟아지는 교재 연구에 가르치기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 서적 읽기를 늦춘 것은 영적 침체를 불렀다. 그중 직장 내 신우회 모임을 통해 어느 정도 도움은 받았으나 그뿐이었다. 자연스럽게 성경 주석서를 접할 수 있는 호기(好機)였는데 성과 없이 끊겨버린 것이 아쉬움을 남겼다. 그나저나 장서 이천 권이 되려면 지혜와 지식을 녹여 만든 세월의 지층이 좀 더 켜켜이 쌓여야 했다. 그 틈에 어렵사리 마친 아내의 방송대 수학 덕분에 가정학에 관련된 책자가 백여 권 늘어난 것은 흐뭇한 지점이었다. 그렇게 몇 년간은 유의미한 장서 확보에 소강상태를 보였다. 요즘 들어 뼈저리게 느끼는 건 지속 가능한 일이라야 주목할 만한 성취감을 담보한다는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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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기 때문이라며 변명 아닌 설명을 애써 해대고는 있지만 실은 뭔가 지적 허기를 느꼈던 건 사실이다. 확실한 주제 없이 살아온 열기로 인해 태부족한 소일(消日)이 그 까닭이었다. 한사코 털어놓기를 주저한 터여서 여태 분출하지 못한 지성적 에너지원이 거르지 않은 잉여물처럼 심연에서 들끓고 있었다. 그래도 그 시절 산책과 등산의 그윽한 묘미를 알아차린 건 천만다행이다. 물론 방이 하나 더 있는 큰집을 마련하기 위한 초 긴축가계운영도 책꽂이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데 한몫을 담당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고답적인 취향이 멀리 달아나 버린 건 아니었다. 꼭 필요하다고 분별한 책들은 시와 때를 따라 곤궁을 면할 만큼은 사서 읽은 편이어서 굳이 수집 형태만 놓고 본다면 도리어 바람직한 형태로 바뀐 측면도 없지는 않았다. 기실 유능한 장서가들을 보노라면 다 읽은 책이나 더는 묵히기 아까운 책들을 흔쾌히 기증하고 있으니 말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2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21호)에는 ‘죽향재(竹向在)의 주인의식 - 신령한 처소를 찾아’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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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죽향재(竹向在)’의 주인의식 ‘영적 감지기를 맞아’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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