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평등한 세상 만들기 위해 정열과 노력을 바치겠습니다”

■ 도의원 출마, 2002년 경기도의회에 입성

 “선천적 장애인은 10%에 불과하지요. 장애인 중 노인이 40%, 여성은 30%에 달합니다. 결국 후천적 장애인이 월등하게 많은 셈이지요. 그러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 장애인이 될 수 있지요.”

 장호철 도의원은 경기도의회에서 장애인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전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도의회뿐만 아니라 지역구인 평택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젊은 시절부터 줄곧 복지사회건설에 다양한 활동을 해온 제8대 하반기 경기도의회 부의장인 장호철 도의원(새누리당 비례대표)을 만나 그의 도정 정책과 복지철학을 들어 본다.

 장호철 도의원은 지난 7월 제269회 정례회 본회의장에서 재적의원 130명 중 109명이 출석한 부의장 선거에 93표를 얻어 제8대 경기도의회 후반기 부의장에 당선됐다.

 장 부의장은 장애인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보사여성위원장, 장애인복지위원회 위원, 여성특별위원회 위원, 복지경기발전 T/F팀 위원으로 활동하며 도민들의 사회복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온 힘을 다 쏟아 왔다.

 장호철 경기도의회 부의장은 3선의 도의원으로 땀 냄새가 오히려 정겨운, 눈물과 사랑의 진실을 소담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소중한 땀과 눈물을 어르신에게 베푸는, 끈끈한 사랑을 불편하고 어려운 이웃에 나눠 주는, 그래서 그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소문나 있다.

 장 부의장은 20대부터 지역발전을 위한 봉사활동이 몸에 밴 일꾼이다. 1991년 전국 최초의 역도후원회를 결성해 태광중, 효명중·고 꿈나무 선수들을 키워 훗날 국가대표 선수까지 배출했다. 1993년 송탄시 생활체육회 사무국장으로 지역 초중고 운동기구 지원, 노인 게이트볼 보급, 여성들의 에어로빅·수영 등 각종 스포츠 프로그램을 진흥시켰다.

 또한 IMF 시절에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참사랑회’ 등 각종 사회복지단체에 참여해 관내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등 소외된 이들과 아픔을 함께 나눴다. 장 부의장은 이런 헌신적인 자원봉사활동을 좋게 평가한 지역 선후배들의 추천으로 도의원에 출마해 2002년 경기도의회에 입성했다.

 “예전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불우이웃에 쌀을 배달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피부에 와 닿았던 그때가 더 행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요즘도 같은 일을 하지만, 봉사도 즐겁게 해야지 즐겁지 않으면 못해요. 요즘은 집사람도 복지회관에 도시락 돌리는 일을 하는데 사람들은 제 부인인지 모른답니다.”
장 부의장은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말보다는 행동으로’를 봉사정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
 
■ 경기도 문화의 전당 전국 최초 장애인 전용 관람석 지정

 장 부의장은 도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시작한 이후 경기도 문화의 전당 전국 최초 장애인 전용 관람석 지정 설치, 장애인대책특별위원회 구성으로 장애인 인권신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국립한국재활복지대학 원격교육지원센터 예산지원, 장애인 전담교사 특수근무수당 지급, 경기도 노인복지과 신설, 경기 도립 노인전문병원 설립 등 그가 이룬 주요 실적은 또렷한 족적을 남겼다.

 장 부의장은 경기도 재활공학서비스 연구지원센터 설치 운영, 경기도 장애인 등의 편의시설 사전점검, 저소득 노인가구 국민건강보험료 등 지원, 경기도 보육 지원, 위기가정 청소년 자활 및 시군 사회복지종합정보센터 지원, 학교급식 지원, 경기도 교육 지원 등 조례 제정을 했다.

 장 부의장은 ▶2002년 지체장애인 복지향상 유공 표창(경기도 지체장애인협회장) ▶2003년 경기도 장애극복상(경기도지사) ▶2005년 9월 경기복지대상(의정 부문) ▶2008년 6월 장애인체육부문 표창(문화체육부장관) 등 주로 장애인과 연관된 수상 실적이 돋보인다. 이는 그만큼 평소 장애인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장애인들 사이에 ‘나누면 곱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이 가진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 주면, 종국에는 서로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는 뜻이지요. 적어도 신체적 정신적 결함으로 누군가에게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말 그대로 평등한 세상이지요. 저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 자신을 불태울 겁니다.”

 장 부의장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극심한 우리 사회의 현실에 맞서 장애인복지에 남다른 열정을 기울여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장애를 입은 ‘아픔 아닌 아픔’이 은연중 그로 하여금 봉사의 길로 인도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생전에 제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장애를 슬퍼하지 마라.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너보다 불행한 사람이 있음을 명심해라. 무엇이든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소외된 이웃에 베풀어라. 그 말씀이 제 인생의 좌우명이 돼 오늘의 저로 이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장 부의장은 겉으로 표가 나지 않는데도 바지를 걷어 종아리를 보여주며 자신의 장애를 떳떳하게 밝힌다.

■ 스스로 장애인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아

 장 부의장은 아무것도 모르던 2살 때 식모의 실수로 다리를 다쳤다. 7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다친 다리의 뼈가 썩는 것도 모르다가 1984·1994·2007년 인공관절 대수술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부의장은 늘 밝은 마음으로 어른들에게 사랑과 공경의 마음을 다하는 이로 정평이 나 있다. 결국 그 모든 애정의 원천은 한순간 실수로 자식에게 장애를 안긴 부모님이 베푼 아낌없는 사랑이었던 셈이다.

 장 부의장이 오랜 기간 장애인복지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사회·의정활동을 해온 계기는 그의 아픈 삶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장애인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장 부의장은 그동안 장애인복지 환경개선에 부단히 노력한 결과 가시적인 성과를 많이 거뒀다. 그는 먼저 “장애인복지를 실현하려면 먼저 장애인들의 생존법인 이동권·보행권·선택권·평등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못을 박는다. 그래서 장 부의장은 경기도의회에 장애인특별위원회 구성을 발의해 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네 가지 권리를 신장하는 데 최대한 노력했다.

 장 부의장은 장애인복지 못지않게 노인복지에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장 부의장은 2007년 노인들에게 지원할 효과적인 행정기능이 없는 것을 알고 도지사에게 강력히 요청해 도청에 노인복지과를 최초로 신설했다. 또한 노인인구의 증가로 늘어나는 환자들을 위해 평택에 노인성질환전문병원을 지어 환자와 가족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장 부의장은 앞으로 노인복지를 장애인복지와 똑같이 중시할 생각이다. 이는 노인복지문제가 곧 우리나라 복지사회건설에 아주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장애인이든 노인계층이든 복지를 실현하는 데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그만의 특별한 방식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복지를 실현하는 데 돈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복지제도도 화중지병일 뿐입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생계형복지 위주였습니다. 기초생활수급비와 기초노령연금이 생계형이죠. 앞으로 계속 생계형에 머물면 국가재정은 파탄날 겁니다. 하지만 일자리를 지원하는 생산형복지는 다릅니다. 장애인과 노인에게 맞는 일자리를 제공하면 우리의 복지재원은 충분히 여력을 갖출 겁니다.”

 장 부의장은 현재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한계와 변화 방향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제시한다. 이는 일찍이 장애를 겪으며 힘들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딪친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정책이다.

 장 부의장은 비장애인들의 편견과 차별을 우리사회가 복지사회로 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한다. 그는 “물론 비장애인들의 편견과 차별이 모두 다 그렇지는 않다”며 “이런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려면 일찍이 유치원 때부터 ‘함께 나누는 삶’을 가르쳐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의 재능과 능력을 나누는 삶을 어려서부터 가르치면 잘못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다는 얘기다.

 “뉴질랜드 장애인특수학교에 갔더니 한국 학생들이 절반에 달할 만큼 많았어요. 그건 뉴질랜드의 장애인 복지제도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돼 있는 탓이겠지요. 거긴 선생 2명이 학생 3명을 담당하는데, 우리나라는 1명당 13~4명이나 맡고 있으니 그 차이가 엄청나지요.”

 장 부의장은 우리나라 복지제도가 선진국을 금방 따라잡지 못해도 점차 좋아진다고 희망을 전한다.

■ 장호철 경기도의회 부의장 인터뷰

- 후반기 부의장으로서의 소감과 각오는

 “부의장은 의회운영 방향을 잡는 한 축으로 늘 솔선수범하고,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말보다는 행동으로’란 모토로 부의장의 권한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겠습니다. 그간 쌓아온 3선의 의정 경험으로 제8대 후반기 의회를 운영하는 데 대화·타협·소통으로 원만한 조정과 화합을 이끌어내 원활하고 민주적인 경기도의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경기도의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의회 본연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고, 도민의 뜻을 대변하는 대의기관의 위상 정립에 힘쓰겠습니다. 아울러 동료 의원들과 함께 늘 겸손한 자세로 소외계층에 사랑과 희망을 전해 도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겠습니다.

 또한 후반기 의정활동에 힘찬 역동성을 불어넣고, 민주적 리더십으로 여러 의원님들의 뜻을 모아 일천이백만 도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 현재 경기도의 가장 큰 현안과 과제는

 “1200만 경기도민이 두루 행복해지려면 무엇보다 민생안정과 민생복지를 앞당겨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방자치단체의 입주우선순위 선정 등 자율성 부여, 비정규직 근로자 권리보호,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근로여건 개선, 저소득층과 장애인 일자리 해소를 위한 사회적기업 육성과 확충 등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특히 어려운 이웃들이 자활하는 경제정책을 마련하고, 여성 저출산 문제를 사회공동으로 풀어야 할 중장기적인 산아정책도 시급합니다.”

- 후반기 의회에서 중점을 둘 부분은

 저는 제8대 후반기 도의정의 남은 기간 동안 지방의회 고유의 기능과 역할인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조화롭게 유지하며 의정활동을 충실히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보다 더 나아가 정책대안 제시에 충실한 의회, 말보다 실천하는 의회상 구현에 앞장서서 도민으로부터 사랑받고 도민에게 감동을 주는 의회를 만들겠습니다.

 한편 지방의회 위상 제고와 전문성 강화를 위해 ‘인사권 독립’과 ‘의원 보좌관제’를 관철시키겠습니다.

- 그동안 의정활동을 하며 느꼈던 보람과 어려운 점은

 “2008년 9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돼 도민의 혈세가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모든 사업에 투명한 예·결산 심사과정을 확립했습니다. 경기도 감사자문위원으로 부정부패 방지와 청렴시책 추진에 관한 사항과 불합리한 법령제도 개선, 명예감사관 운영에 관한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고, 1995년 시군 통합으로 인해 평택시에서 발생하는 각종 갈등과 문제점 해소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마련했습니다. 경부선 고속철도 경기남부역 설치와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수서~동탄 노선의 평택 연장을 추진해 KTX 지제역을 신설했습니다.

 특히 그 당시 전국 최초로 의원 해외연수 비용을 삭감해 청년일자리사업, 위기가정돌봄사업에 지원했습니다. 경기도의회에서 ‘봉급끝전나눔 운동’을 발의해 의정비의 일부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해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함으로써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모범적인 의정활동을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 앞으로 의정활동을 어떻게 펼쳐 나갈지

 “IMF구제금융 이후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대가족 형태가 붕괴되고 소가족, 핵가족 중심으로 변하면서 편부모가정, 소년소녀가장, 노인 단독세대, 독신생활자, 미혼자녀 가정의 증가 등 급격한 가족해체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날로 심화되는 양극화와 위기가정이 증가하면서 이혼율과 자살률이 세계 1위로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좌절하고 있으며, 급속하게 다문화사회와 저출산·고령화 국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어려운 이웃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미력하나마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안연영 김선우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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