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조선시대 진위군 병파면... 통복천 갯가에 위치해 ‘통복개’라 불러 

 

평택시사.png

▲ 통복동 시장 로터리(2013) <출처 = 평택시사>

 

◆ 통복동(通伏洞)


조선시대 진위군 병파면 지역이었다. 통복천 갯가에 위치해 ‘통복개’, 통복천에 보(洑)를 축조하고 주변에 마을이 형성돼 ‘통복보’라고도 불렀다. 한국전쟁 뒤 도시가 철도 동쪽으로 옮겨가면서 현재 통복시장 일대까지 확대됐다.


1. 원통복(元通伏): 통복동의 본 마을이다. 진위군 병파면에 속해 ‘상통복’ 또는 ‘윗마을’이라고도 했다.

 

2. 하통복(下通伏): 원통복의 아래쪽에 형성된 마을. 진위군 성남면에 속해 ‘아래통복’이라고도 했다.

 

3. 신덕리(新德里): 조선시대 충청도 평택현 지역으로 신덕포가 있던 포구마을. 원평동 제방 너머에 마을이 형성돼 ‘뚝너머’라고도 불렀다.

 

4. 고평(高坪): 통복 육교 서쪽에 위치한 마을. 지대가 높은 곳에 마을이 형성돼 ‘높은들’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고평’이라고 했다.

 

5. 창월(倉越): 조선시대 순화군의 궁방전에서 거둬들인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 너머에 있던 마을. 안성천 제방공사로 폐동됐다.

 

6. 화촌(華村): 안성천변의 포구마을. 아산만 일대의 상선과 고깃배들이 드나들고 상거래가 이뤄지던 포구로 홰나무가 무성해 유래됐다.

 

7. 낙촌(樂村): 옛 통복시장 우시장에서 통복동 북동쪽까지 형성된 마을. 1960년대만 해도 옹기점이 있어 ‘점촌’이라고도 했다.

 

8. 통복시장: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폭격을 받아 원평동과 평택장이 파괴되면서 1953년 삼거리 동북쪽에 새로 조성된 시장. 1950~60년대에는 싸전(미곡시장)과 우시장이 유명했으며 지금은 채소전·생선전 등을 중심으로 명성을 잇고 있다.

 

9. 동삼거리(東三巨里): 통복시장 동북쪽 옛 우시장 근처. 평택시가지가 동쪽으로 넘어오기 전 평택-안성 간 국도 38호선과 평택-원곡 간 신작로가 갈라지는 지점이었다. 통복시장 내 가축시장이 형성돼 속칭 ‘개전로터리’라고도 부른다.

 

10. 서삼거리(西三巨里): 일제강점기 경부선 평택역에 설치되고 국도1호선과 국도38호선이 건설되면서, 1호선과 38호선이 교차하는 삼거리가 형성돼 유래됐다. 일제강점기 삼거리 주막이 있었으며, 한국전쟁 뒤 평택장이 통복동으로 넘어온 뒤에는 시장로터리라고 부른다.

 

11. 통복지하도: 본래 철도건널목이 있던 자리라 ‘땡땡거리’라고 했지만 1980년대 초 지하차도가 건설됐다. 

 

12. 통복천: 안성천의 지류. 천덕산에서 안성시 원곡면을 거쳐 통복동과 세교동 사이를 흐른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37호)에서는 ‘평택시 평택동(平澤洞)’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태그

BEST 뉴스

전체댓글 0

  • 43755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시 통복동’ 지명 유래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