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진위군 여방면 지역... 1914년 원당면 의곡·여동·신촌·심곡 통합
▲ 도일동 하리 여의실 마을(2012)
◆ 도일동(道日洞)
조선시대 진위군 여방면 지역이었다. 1914년 여방면의 도일리·내리·상리·양성현 원당면 의곡·여동·신촌·심곡을 통합해 도일리(동)라 했다. 도일이라는 지명은 ‘원도일’에서 왔다.
1. 원도일: 양성현의 경계여서 도일, 되일이라고 하던 것을 도일(道日)로 표기했다.
2. 상리(上里): 진위현 여방면 지역으로 가장 위쪽에 위치해 유래됐다.
3. 내리(內里): 진위현 여방면으로 안쪽에 형성돼 유래됐다.
4. 하리(下里): 양성현 원당면 지역으로 아래쪽의 마을이라고 해서 유래됐다.
5. 여좌울: 조선후기 상리 도일천을 경계로 좌측(덕암산 쪽)의 마을에 대한 통칭.
6. 여우동: 조선후기 상리 도일천을 경계로 우측(팔룡산 쪽)에 대한 통칭.
7. 사창이: 도일동 상리의 자연마을. 조선시대 진위현의 사창이 있었다.
8. 뱃터: 조선시대 사창이 있을 때 도일천에 있었던 나루터. 뱃줄을 매어 두었다는 느티나무와 향나무 비보림이 있다.
9. 산막골: 상리의 자연지명으로 산막이 있었다.
10. 요골: 상리의 자연지명으로 그릇을 굽던 가마가 있었다.
11. 배낭골: 상리의 자연마을. 배나무골이 변해 유래됐으며 이성부 충절정문이 있다.
12. 황성말: 황새울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큰길가에 위치했다.
13. 샛골: 상리에 자연마을로 원주 원씨가 처음 자리 잡은 마을.
14. 안골: 상리 가운데서도 덕암산의 안쪽에 형성돼 유래. 양세충효정문이 있다.
15. 정골: 안골 위쪽의 골짜기며 1728년 이인좌의 난에 호응했던 원만주가 용광로를 설치하고 농기구와 병장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16. 빈터: 안골에 있는 골짜기. 임진왜란 때 상리의 부인들이 피신했던 곳이다.
17.빈터고개: 빈터를 지나 은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정상부에 서낭당이 있다.
18. 가농골: 황성말 서쪽의 자연마을.
19. 응골: 도일천 건너편의 자연마을.
20. 갈월: 도일천 건너편의 자연마을로 약천사가 있다.
21. 양성말: 도일천 건너편의 자연마을로 조선후기 양성현 지역이었다.
22. 여의실: 하리의 자연마을로 양성현 원당면 여동과 의곡리가 통합하면서 유래됐고, 큰여의실과 작은여의실로 구분된다.
23. 대마거리: 내리의 자연마을. 말을 기다리던 곳에서 유래됐다.
24. 운터말: 내리의 자연마을.
25. 울음밭: 원균 장군의 집터가 있던 곳으로 장군의 유품을 물고 천리를 달려온 애마가 유품을 내려놓고 울음을 운 뒤 죽었다는 곳.
26. 갓골: 원릉군 원균의 묘가 있는 마을.
27. 능골: 원릉군 원균의 묘 뒤쪽 마을. 조선 전기의 화가 최경의 묘가 있다.
28. 암말: 내리에서 덕암산 안쪽에 형성된 마을. 전원주택단지가 조성됐다.
29. 왕뒤: 암말 서쪽의 자연지명. 원릉군 원균의 선무1등교서를 가지고 왕의 사신이 넘어온 길에서 유래됐다.
30. 덕암산: 도일동과 진위면 은산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산. 예로부터 ‘석씨 천 년, 소씨 천년, 원씨 천년’이라는 말이 전해오며 ‘아흔 아홉 골짜기가 있고 아흔 아홉 마을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31. 흰치고개: 삼남대로 평택 구간의 가장 험한 구간. 산봉우리가 희게 보여 대백치라고도 불렀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30호)에서는 ‘평택시 모곡동(茅谷洞)’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