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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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조발제를 하고 있는 백승종 역사학자

 

금요포럼과 원균장군문화벨트시민연대가 주최하고, ‘원균학당’에서 주관한 ‘선무일등공신 원균 장군 재평가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역사포럼이 12월 20일 평택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개최됐다. 이날 포럼은 평택학연구소장인 박성복 평택시사신문 사장이 좌장을 맡았으며, 백승종 역사학자의 ‘원균에 관한 몇 가지 새로운 사실’ 기조발제와 홍순승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조병욱 평택시문화관광해설사, 황수근 평택문화원 학예연구사, 김영선 평택시청소년지도위원협의회 사무국장이 지정토론을 가졌다. <편집자 말>


■ [기조발제] 백승종 역사학자/전 서강대학교 교수


“원균, 기문포·가덕도·안골포 해전 압승… 선조 ‘지혜 뛰어난 장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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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동안의 연구에서 새롭게 발견한 다섯 가지 사실과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원균 장군이 1797년(선조 30년) 통제사로서 추구한 전략을 소개한다. 


원균은 본래가 명망 있는 무관이었으며, 1583년 ‘니탕개의 난(선조 16년)’에 큰 공을 세워 그때부터 선조의 주목을 받았다. 왜란 직전에 원균이 경상우수사에 임명된 배경이다.


경상우수영에는 본래 19척의 판옥선이 배치됐다. 전란 초기에 원균이 전투에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중 10척이었다. 따라서 원균이 100척의 판옥선을 침몰시키고 달아났다는 식의 주장은 믿을 수 없다. 또한 통제사가 된 후 원균은 기문포해전과 가덕도·안골포 해전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이를 패전이라고 여기는 이가 아직도 많으나, 잘못된 판단이다.


아울러 원균이 칠천량에서 1만 명의 수군과 180척의 판옥선을 몽땅 잃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1597년(선조 30년) 7월 16일자 실록에서도 확인되듯 원균은 90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부산포로 진출했다가 당일에 고성의 춘원포로 퇴각했으며, 통제사인 원균 등 최고지휘관 3명이 순국한 것 외에는 인명피해가 거의 없었다. 조선 수군이 무너진 것은 경상우수사 배설과 도원수 권율 등이 사후 처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왜란 때 조정은 도원수와 도체찰사를 통해 수군을 지나치게 간섭했고, 이로 인해 통제사조차 작전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1597년(선조 30년) 7월 16일 원균이 순국하게 된 까닭이다.


통제사 원균은 전술 전략적으로도 걸출한 인물이었다. 훗날 선조는 “원균이야말로 지혜가 뛰어난 장수였다”고 평가했다. 통제사가 되기 몇 달 전부터 원균은 다섯 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 수군이 부산포로 진출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안골포(현 진해 웅동)의 왜성(倭城)이라고 했다. 이미 1596년(선조 29년) 11월부터 원균은 안골포를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통제사가 된 뒤에도 그는 안골포와 가덕도의 왜적을 소탕하고자 했으나 조정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둘째, 적의 재침이 박두하자 그는 부산포와 쓰시마(대마도)를 연결하는 적의 운송로를 철저히 감시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려면 가덕도 후방에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으나, 그 역시 조정의 반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셋째, 절영도(현 부산 영도)를 요새화하자는 주장도 했다. 적군의 상륙을 저지하고, 그들의 해상 활동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선조와 대신들의 반대로 그 또한 무산됐다.


넷째, 적군이 공세를 취하기 전에 일대 결전을 감행하자는 제안도 했다. 1597년(선조 30년) 4월 22일자 실록에 실려 있는 전략이었다. 왜군의 사정에 능통한 사명대사 유정도 유사한 전략을 내놨다. 그러나 조정 대신들은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반대했다. 다섯째, 왜란 초기부터 원균은 수륙합동작전을 강조했다. 그는 명나라 육군과도 작전을 계획했으나, 한치윤이 쓴 <해동역사>에 의하면 기밀을 누설하는 아군 장수가 있어서 수포로 돌아갔다. 이렇듯 원균은 탁월한 전략가였으나 실정을 모르는 대신들의 반대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 [지정토론 1] 홍순승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이순신·원균 협력으로 바다 지켜… 선무일등공신 공적 알리는 것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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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장군은 공보다 과에 지나친 비중을 두고 잘못 평가된 역사적 인물이다. 선무일등공신교서에 명기된 것처럼 원균 장군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의기를 합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순신 장군 혼자 바다를 지킨 게 아니라 이순신과 원균 두 사람이 함께 협력해서 바다를 지켰다. 그런데도 이순신 장군은 오늘날 우리 민족의 유일한 성웅으로 추앙을 받는 대신 원균 장군은 아주 형편없는 졸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원균 장군 순국 후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주축이 된 서인 정권에 의해 그때부터 역사 왜곡이 시작됐다. 서인이 300년 가까이 집권하면서 원균 장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이어갔다. 원균 장군 순국 직후 가문의 상황도 중요하며, 칠천량 패전의 책임을 둘러싼 논란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도 원균 장군 명예 회복의 핵심 과제다. 칠천량 패전이 원균 장군의 책임이었다면 선무일등공신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 전공자도 원균 장군이 선무일등공신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있는 만큼 원균 장군의 공적을 집중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으며, 관련 사료를 찾는 것도 시급하다.


■ [지정토론 2] 조병욱 평택시문화관광해설사


“부정적으로 형성된 원균 장군에 대한 국민감정 돌려놓는 것이 큰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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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정유 두 전쟁이 끝난 지 40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우리는 민족의 영웅 임진왜란 선무일등공신 원균 장군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여기 모인 사실이 참 마음을 무겁게 한다.


평택에는 역사적으로 수군 장수로 두 분이 있다. 원균 장군관 이대원 장군이다. 이순신 장군과 비교해 원균 장균을 비하하는 것은 오랫동안 굳어진 ‘국민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부정적으로 형성된 원균 장군에 대한 국민감정을 돌려놓는 것이 큰 과제이며 어려운 부분이다.


원균 장군이 경상도 수역을 맡았을 때의 관련 자료들을 좀 더 발굴해서 원균 장군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일조해야 한다. 원균 장군이 오롯이 단독으로 경상도 수군으로서 왜적을 맞이했을 때의 기록을 찾아본다면 우리가 아직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


■ [지정토론 3] 황수근 평택문화원 학예연구사


“체계적인 사료 수집·분석 시급… 원균 장군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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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료의 부족함을 해결하기 위해 좀 더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전투에 국한하지 않고 조선 군사 체계와 정치적 구조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그 한계가 무엇인지에 관한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학술적 논의와 함께 이제 대중과의 소통을 계속하며 교육과 문화 콘텐츠를 확장해야 시민에게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원균 장군 재평가는 단순히 과거를 재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 세대를 위한 역사 연구와 사회적 통찰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 [지정토론 4] 김영선 평택시청소년지도위원협의회 사무국장


“원균 장군을 바로 알기 위한 현장학습 및 창의적 역사교육 활성화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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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제주도 학생들이 평택 원균 장군 유적 역사탐방을 진행한 사례가 있었다. 학생들은 원균 장군에 대한 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단순히 기록으로 접했던 역사를 직접 체험했다. 이를 통해 장군의 생애와 업적, 역사적 논란에 대해 생생하게 배움으로써 학생들이 스스로 공과를 고민할 기회를 얻었다.


탐방에 참여한 한 학생은 역사를 직접 와서 경험하니 책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와닿았다는 소감을 전했고, 이는 역사탐방이 청소년에게 교육의 효과가 있음을 보여줬다. 앞으로 원군 장군 묘와 임진왜란 유적을 방문, 전문가 해설과 함께 현장학습을 진행해 ‘원균은 실패한 장군인가? 희생된 영웅인가?’라는 주제로 토론 활동 및 원균 장군의 삶과 당시 상황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영상 제작 등의 청소년 대상 창의적 역사교육이 활성화되길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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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중토론] “임진왜란과 원균 장군에 대한 일본과 중국 사료 발굴과 연구 제안”


이날 원균학당에서 마련한 역사토론에는 시민사회와 학계, 원주원씨 종중 등 70여 명이 참여해 자리를 가득 메웠다. 기조발제와 지정토론에 이어 진행한 청중토론에서는 8명이 질의 및 향후 일정을 제안했다. 


청중토론 참가자들은 ▶전문가의 학술적 근거를 기반으로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교육 확대 ▶임진왜란과 원균 장군에 대한 일본과 중국 사료 발굴과 연구 ▶일부 일타강사 및 유튜버의 역사 왜곡에 대한 학문적 대응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학술토론회 개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리 김다솔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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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학당, 원균 장군 재평가 위한 ‘역사포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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