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1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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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 평택자연연구소 소장

동·식물은 가능한 한 그들이 태어난 곳으로부터 자손들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시집·장가를 보내려고 한다. 그래야만 제꽃가루받이의 폐단을 막을 수 있고, 가족끼리의 경쟁을 줄이면서 넓은 서식지를 차지할 수 있다. 식물이 씨를 퍼트리는 방법도 다양하다. 개쑥갓, 서양민들레 같은 국화과 식물과 부들, 박주가리 같은 주변의 풀꽃은 바람을 이용하는가 하면 도꼬마리와 가시박, 도깨비바늘 등은 사람의 의복이나 털 있는 동물의 몸에 붙어서, 상당수 나무는 물까치와 직박구리 같은 산새들에게 먹힘으로써, 겨우살이의 경우에는 까치와 멧비둘기 같은 산새들에게 종자산포를 의존한다. 한편으로는 민물조개 안에 알을 낳는 납자루과의 각시붕어,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 등 저마다 최상의 방법을 동원해 당면한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자연에서 만났던 생명은 이렇듯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스스로 풀어나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혹 풀어나가기 어려우면 시간이 걸릴지라도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대처하는 중에 제일 나은 방법을 도출해 내곤 한다.


1. 바람을 이용하는 서양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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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앗 끝에 하얀 실 모양 갓털을 달고 비행 준비를 마친 서양민들레(2010.5.16 덕동산)

 

개망초, 소리쟁이, 달맞이꽃, 큰개불알풀 등 주변서 터 잡고 살아가는 외래종 잡초 중에 서양민들레만 한 것이 없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남보다 먼저 싹을 틔워 로제트로 겨울을 준비하는 것부터, 사정이 급하면 근친결혼도 마다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연중 오랫동안 꽃을 피워 종자를 퍼트리고 있지만 바람을 이용하는 민들레의 산포전략만큼 뛰어난 생존전략은 드물다.


2. 효율적인 산포전략의 개쑥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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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산공원 수변 풀밭에서 큰 무리를 지어 개화 중인 개쑥갓(2019.5.5 모산공원)

 

식물의 생존전략 중에서 바람을 이용하는 산포전략은 열매 속에 숨겨둔 씨앗을 바람을 이용하여 멀리 보내는 전략으로, 식물 자신의 추진력으로 씨앗을 날려 보내는 전략이나 동물의 털에 무임승차하거나 야생조류의 먹잇감으로 씨앗을 퍼트리는 것보다는 효율적이어서 많은 식물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 한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개쑥갓은 늘 바람을 기다린다.


3. 수정과 종자산포를 바람에 맡기는 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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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밭에 날아들어 세력을 넓혀가는 부들의 열매(2012.12.1 진위면 마산리)

 

잎이 ‘부들부들’하다는 뜻에서 이름을 얻게 된 식물이 부들이다. 수꽃이삭과 암꽃이삭이 짧은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으면 애기부들이라고 하며, 이들 외에도 큰잎부들과 꼬마부들이 주변서 자생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저비용이면서 효율적인 바람을 이용하는 산포전략을 쓰며, 꽃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풍매화 개념과 같은 원리이다.


4. 겨울바람을 즐기는 박주가리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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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열매를 바람에 날리는 박주가리(2008.11.13 진위천)

 

열매가 익어서 씨가 퍼지는 것, 흩어져 퍼트리는 것을 ‘산포’라 한다. 이 전략은 종마다 차이가 있지만, 낙하산 모양의 관모가 달린 민들레 혹은 단풍나무의 씨앗, 구과 열매처럼 날개를 달아 바람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겨울을 기다려 긴 둥근 모양을 가진 열매의 봉합선을 열고 겹겹이 싸인 열매 하나하나를 바람에 날리는 박주가리는 겨울을 즐기는 잡초이다.


5. 벨크로 테이프의 원리, 도꼬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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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고리 돌기가 발달하여 다른 물체에 잘 붙는 도꼬마리 열매(2013.10.20 고덕지구)

 

낙하산을 사람이 처음 만들었을 때 혹 바람을 이용한 씨앗에서 힌트를 얻었다면 옷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은 갈고리 모양의 열매를 통해 만든 것이 찍찍이라 불리는 벨크로이다. “생체모방의 모든 것은 자연에 존재한다”라고 한다. 엉겅퀴의 갈고리를 흉내 낸 ‘벨크로 테이프’는 고리와 갈고리를 더불어 활용한 사례로 갈고리를 지닌 도꼬마리 또한 동물산포를 이용하고 있다.


6. 가시를 종자산포에 이용한 가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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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 전체를 가시로 무장한 후 동물을 기다리는 가시박(2008.11.8 진위천)

 

씨앗의 무한한 잠재력이 제대로 발현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추진력이 필요한데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생태계 교란식물로 ‘식물계의 황소개구리’, ‘생태계의 저승사자’ 등으로 알려진 가시박은 식물명에 나온 가시를 종자산포에 이용하고 있다. 하천변을 찾은 백로류나 고라니의 털을 이용한 가시박을 덕동산이나 배다리습지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음의 이유이기도 하다.


7. 동물산포의 대명사, 도깨비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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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모 가시의 끝이 갈고리 모양이어서 잘 붙는 도깨비바늘의 열매(2004.9.28 근내리)

 

식물의 산포하는 방법 중 동물에 의한 방법은 사람의 옷이나 동물의 털에 붙어 흩어지거나 동물에 먹힌 다음 배설하면서 산포하는 것으로 외부 환경에 의한 방법으로 볼 수 있다. 누군가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허락도 없이 무임승차하는 친구 중 씨앗의 끝에 낚싯바늘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단 도깨비바늘은 도꼬마리와 함께 동물을 산포에 이용하는 대표적 식물이다.


8. 종자분산 에이전트, 직박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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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색 꽃사과나무 열매에 집중하는 직박구리(2024.1.28 배다리산책로)

 

유해조수에 포함되었지만 도심의 야생조류를 언급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새 중 하나가 직박구리이다. 새벽부터 시끄러운 새, 공격성과 욕심이 넘쳐나 왕따를 당할 만큼의 위치에 머물러 있지만 나름 50종이 넘는 식물의 열매를 자연에 퍼트리는 ‘종자분산 에이전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변 관상수로부터 숲속 수목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9. 끈적한 씨를 앞세운 겨우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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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나무, 느티나무, 물오리나무 등에 기생하는 겨우살이(2003.1.21 천안 광덕산)

 

유전자를 중심으로 바라본 자연은 수천 년 동안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자기 복제물을 다음 세대에 남기고자 유전자는 다양한 선택을 하게 된다. 반기생식물인 겨우살이는 끈끈한 씨를 새가 먹어 배설물과 함께 이웃 나무로 퍼뜨리는 과정을 통해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독특한 전략을 발전시켜왔다.


10. 말조개 속에 알을 낳는 각시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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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란을 위해 민물조개 주변에 몰려든 각시붕어 무리(2010.5.8 진위천)

 

진위천 냇가에는 종족 보존을 위해 독특한 삶의 방식을 택한 물고기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민물조개를 산란용 둥지로 사용해 그 안에 알을 낳고 살아가는 각시붕어 이야기이다. 납자루 무리에 속한 물고기도 독특한 산란방식을 지니고 있으며, 암컷이 말조개의 출수공을 찾아 산란하게 되면 수컷의 체외수정을 통해 알은 아가미 막 사이에서 부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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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의 평택의 자연] 스스로 문제를 풀어가는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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