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1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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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 평택자연연구소 소장

봄을 맞아 로제트로 겨울을 난 냉이와 꽃다지, 서양민들레에 희고 노란색의 꽃이 피면 이내 겨울을 난 꿀벌과 꽃등에, 네발나비가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날아든다. 매화와 벚나무의 꽃눈이 열리기가 무섭게 기다리기라도 한 듯 직박구리가 꽃꿀을 따고 버드나무를 찾은 청설모는 여느 곤충이나 새와는 달리 이삭이 달린 가지를 잡고 옥수수 알을 털 듯 욕심을 부린다.


봄을 전후해 산개구리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논이나 계곡물을 찾고, 봄꽃나무에 향기 넘쳐나면 온갖 곤충이 날아들어 이를 기다리던 산새들 또한 단백질 먹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장맛비로 고인 작은 웅덩이가 생기면 땅속에 은둔하던 맹꽁이가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한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곤충과 새, 개구리 하나하나, 이들 모두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연의 일부이지만, 오랜 시간을 통해 서로 바라보고 의존하거나 경쟁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1. 추운 겨울 물까치를 불러들인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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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를 기다려 잘 익은 열매로 물까치를 불러들인 회화나무(2024.12.24 배다리마을숲)

 

열매를 옮겨줄 때를 아는 주변 나무와 천적을 피함은 물론이고 동료들의 정보력을 공유해 혹한에도 먹이터를 함께 옮겨 다니는 물까치 무리, 냇가에서 목욕한 후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깃털을 터는 작은 곤줄박이 등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름 주변 환경에 적응해가는 변화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씨앗을 옮겨야 할 때가 된 회화나무가 반가운 손님, 물까치를 불러들였다.


2. 왕벚나무와 개미의 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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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잎자루 안쪽의 밀선에 꿀을 채워 개미를 불러들이는 왕벚나무(2013.5.19. 덕동산마을숲)

 

배다리산책로를 따라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나무가 있다면 바로 왕벚나무이며, 마을숲 안쪽으로는 한 가족인 산벚나무도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은 꽃가루받이를 도와줄 곤충을 위한 꿀샘과 개미를 위한 꿀샘을 따로 가지고 있는데, 개미를 불러들이는 꿀샘은 벚나무 잎자루 안쪽에 사마귀처럼 생긴 작은 혹, 밀샘에 꿀을 채워 잎과 열매를 노리는 곤충을 쫓아낸다.


3. 빨간색 열매로 새들을 유혹하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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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색의 산수유 열매를 잎에 물고 이동 준비를 마친 물까치(2023.1.6 배다리산책로)

 

남천, 찔레꽃, 산수유, 팥배나무, 산수유 등 주변의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 건 새들을 유혹하기 위함이다. 나뭇잎뿐 아니라 열매와 꽃이 붉은 것도 대부분 안토시아닌이 만든 색상 때문인데, 이 색상이 새들에게 먹혀서라도 멀리까지 씨앗을 퍼트리기 위한 유혹, 종족 번식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 식물의 본심은 포유동물이 아닌 새가 열매를 먹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4. 꿀벌의 희망을 이어가다, 회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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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봄 밀원식물인 회양목의 꽃꿀을 찾아 나선 양봉꿀벌(2023.3.10 배다리산책로)

 

양봉꿀벌부터 시작하여 물결넓적꽃등에, 네발나비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성체로 겨울을 난 곤충으로 이른 봄 주변 온도가 어느 정도 오르면 절로 깨어나 움직임을 시작한다. 기후변화의 탓으로 빨라진 생태시계는 시도 때도 없이 겨울잠 상태의 곤충을 깨우는데 이들에게 참으로 절실한 것이 있다면 에너지원으로 누구보다도 먼저 꽃꿀을 내는 회양목이 크게 반가울 수밖에 없다.


5. 이른 봄 물가에서 각다귀를 찾는 딱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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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 주변에서 수서곤충인 각다귀 애벌레를 찾는 딱새 수컷(2024.3.2 배다리마을숲)

 

2월에서 3월 초까지 배다리의 모든 야생조류가 그러하듯 봄을 앞두고 몸과 마음이 함께 바빠진다. 박새, 진박새, 곤줄박이 등의 박새류로부터 쑥새, 노랑턱멧새, 직박구리에 이르기까지 다수가 물을 먹고 목욕을 하기 위해 샘물을 찾는 것과는 달리 딱새는 겨울을 나기 위한 특별한 단백질 먹이를 찾아 물가로 온다. 딱새가 노리는 각다귀 애벌레는 낙엽을 분해하는 선한 역할을 한다.


6. 건강을 위해 물에 의존하는 야생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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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깃털의 상태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물을 이용하는 쇠박새(2024.1.29. 배다리마을숲)

 

조류학자에 의하면 새들은 깃 단장을 하는데 깨어 있는 시간의 10%를 할애하는데 이 깃 단장이 목욕이며, 깃 고르기이다. 함양지에서 배다리습지까지 이르는 실개천과 마을숲 가장자리의 샘물 등 배다리생태공원 전역에서 새들이 물에 몸을 담근 뒤 빠른 속도로 물을 뒤집어쓰고 깃털을 요란스럽게 턴 후 부리로 빗질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7. 물가의 고라니를 이용하는 가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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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덮인 배다리저수지 풀밭에서 활동 중인 고라니(2023.12.22 배다리저수지)

 

해가 지고 난 후 사람의 왕래가 뜸할 때, ‘Water Deer’라는 영명을 지닌 고라니는 물을 찾는다. 그리고 습지와 물을 좋아하는 고라니만큼이나 생존본능의 촉을 내리지 않고 서식지를 넓히고자 하는 ‘가시박’ 또한 도꼬마리 혹은 도깨비바늘처럼 열매에 가시를 두른 채 사람의 옷이나 동물의 털을 기다리게 된다. 배다리의 가시박 확장은 고라니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8. 생태적 지위가 낮은 맹꽁이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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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식기를 제외한 대다수 시간을 땅속에서 보내는 맹꽁이(2013.9.13 덕동산마을숲)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과 생물 사이의 상호관계, 경쟁 관계 등을 고려하여 형성되는 지위를 ‘생태적 지위’라 하고 넓은 의미에서 생물의 서식지 범위, 먹이사슬, 경쟁 관계에서 차지하는 자원경쟁의 지위를 포함한다. 산개구리와 참개구리 등 주변 개구리에게 경쟁적 지위에서 밀린 맹꽁이는 대다수 시간을 땅속에서 보내고, 번식 또한 장마로 고인 마을숲 웅덩이만을 이용하고 있다.


9. 개미를 이용하는 애기똥풀의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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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산 덩어리인 ‘엘라이오좀’이 붙은 애기똥풀의 씨앗(2014.5.28 덕동산마을숲)

 

애기똥풀은 잎이나 줄기를 자르면 노란색 유액이 나오는 두해살이풀이자 개미를 이용해서 씨앗을 옮기는 식물, 즉 ‘개미살포식물’로 잘 알려져 있다. 제한된 서식지 내에서의 생존 다툼을 피하고 새로운 세력권을 만들기 위해 주변의 식물은 씨앗을 멀리 확산시키길 원한다. 애기똥풀은 ‘엘라이오좀’이란 지방산 덩어리를 씨앗에 붙여 개미를 이용하는 대표적인 잡초이다.


10. 일본목련과 오동나무의 그늘을 이기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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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속 그늘에서 햇빛을 독차지하는 일본목련(2003.5.12 덕동산마을숲)

 

일본목련은 일본 원산의 목련속(Magmolia) 낙엽 활엽 교목으로, 넓은잎 큰기나무이다. 해방 전에 도입된 식물로 잎도 길이 방향으로 대형이지만 도깨비방망이를 닮은 열매 또한 애호박처럼 큼직하다. 특히 그늘에 견디는 힘인 내음성이 좋아 숲속 햇빛이 약한 곳에서도 싹을 올려 잘 자라며, 숲속 오동나무의 잎처럼 길이 방향으로 넓고 긴 잎을 가지고 있어 나름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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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의 평택의 자연] 배다리에서 생태학의 제1법칙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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