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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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지난 목요일, 늦가을녘에 대학 입학 전후한 동문들의 정례 모임이 있었다. 필자는 아내와 동반해 참석했다. 다섯 쌍이 각각 인천과 일산, 서울에서 평택까지 내려왔다. 오성면 맛집인 샤부샤부 식당에 모였다.


식당 내 방이 협소해서 남녀로 나누어 자리를 잡았다. 기본적인 음식이 남녀 각 상에 차려지고 추가로 필요한 음식은 차려진 식단에서 자율로 가져다 먹었으며, 식사 중에 연신 웃음이 이어지며 수다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우리가 나누는 수다의 주제는 주로 건강, 병원 진료, 식생활과 운동 이야기였다. 어떨 땐 죽음, 웰빙과 버킷리스트와 같은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펼쳐놓는다. 간혹 정치와 정치인 이야기도 나눈다. 대부분의 화제는 대학 생활 초기에 겪었던 이야기들이다. 


식사와 함께 나누던 수다는 자리를 옮겨 가까운 생태공원 벤치에 둘러앉아 커피를 나누며 계속됐다. 그 시절 기숙사에서 겪었던 이야기가 한참 뜨겁게 달구어졌다. 기숙사 사감님의 매서운 감시의 눈을 피해 다니다 낭패를 당한 일들, 엄격한 야간 통금 시간을 놓쳐 월담한 일, 주린 배를 채우려 교문 앞 유일한 라면집에서 먹던 라면 맛의 추억 등 수다는 시들 줄 몰랐다.


남편들의 수다를 지켜보던 아내 중 한 분이 이렇게 말한다. “아하, 남자들도 수다가 필요하군요.” 은퇴 후의 수다 모임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아내들이 곁에서 지켜보며 웬 수다거리가 그렇게 많냐고 은근히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낸다.


교회 시무를 은퇴하고 만나는 또 다른 친구 모임도 있다. 예배 모임인 노을교회에서 매주 만나는 동료들이다. 주일예배 후 그 자리에서 식사 후 나누는 수다는 얼마나 생기 넘치는지 모른다. 한 주간 있었던 주변잡기를 나누거나 한국교회와 세계 정세에 대한 견해도 나눈다.


필자는 사실 오래전부터 고향 친구들과 정기적인 수다 모임을 가져왔다. 한 친구는 외과 의사요, 또 한 친구는 사회복지단체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후 대학 교수직에서 은퇴했다. 우린 고향교회 출신이자 죽마고우인 만큼 평생을 형제처럼 함께 하고 있다. 부부가 동반해 모이는데 한 달에 한 번 돌아가며 만난다.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친구 집에 모여서 자정이 되도록 정감 있는 수다를 나눈다. 공유한 추억이 많기에 수다는 멈출 줄을 모르고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를 지경이다. 얼마나 열띤 수다를 떠는지. 그런데 최근에 한 친구가 전원살이를 위해 남해로 거처를 옮겨 간 이후로 잘 모이지 못해 애석하다.


언젠가 지인이 보내온 글에서 이런 내용을 접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연구 한 바에 의하면 인간의 수명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흡연, 음주, 경제문제, 사회적 지위, 일하는 스타일, 인간관계 등을 조사한 결과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친구가 없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마음고생이 심하고, 쉽게 병에 걸리고, 노화가 빨라지고,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친구들이 주위에 많고 그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스트레스가 줄고 훨씬 더 건강한 삶을 유지했다.」 이런 조사 결과다.


친구를 가진 사람, 친구와 정기적인 만남으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단명하지 않는다. 친구와 만남과 수다는 필연적 관계다. 건강한 수다는 권장할 만하다. 특히 남자들도 수다가 필요하다. 술자리 친구와는 다른 특색을 가진다. 커피 한 잔을 놓고도 건강한 수다를 이어갈 수 있다.

 

특히 은퇴자들은 이런 건강한 수다가 생활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창의력이 고갈되지 않게 돕는다. 또한 세계를 넓게 보는 식견과 나름으로 돌파구를 제시하기도 한다.


세계 도처에 우울한 소식들이 가득하지만 건강한 수다의 자리에선 편하고 허심탄회하게 날려 보낼 수 있다. 어떤 걱정, 염려 거리도 맥을 못 춘다. 누구도 이 일을 말릴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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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남자들도 수다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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