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명상(瞑想) - 보랏빛 평화가 짙게 깔린 저녁나절, 해말갛게 가라앉은 하루 생활의 감정을 자근자근 반추해 본다. 초가지붕 틈새로 번져나가는 잿빛 연기. 시방 이 시각은 나만이 소유한 명상의 시간, 정겨운 씨앗들이 움터 오는 듯 새 생명의 약동을 암시하고 있다. 신비로운 해돋이와 해넘이를 연출하며 연신 연하고질(煙霞痼疾)을 자아내는 노을. 어둠을 사르는 부상(扶桑)에서 밤낮이 가르는 함지(咸池)를 밀고 당겨 밀물과 썰물을 주고받는.

  어릴 적 내가 뛰놀던 언덕배기에 올라 한 아름 저녁놀을 보듬고 소리 없는 갈채를 보낸다. 엉겁결에 지른 탄성, ‘아. 저기 저편 사랑의 기운이 피어나는 저 풍경은 하늘 더욱 높고 황혼 더욱 고운 환희의 절정, 조락(照落)의 시공에 침잠한 뭇 인생이 저무는 정서로다’ 노을이 감싸 안은 하늘에는 한껏 아늑하고 고즈넉하기에 소스라치게 고결한 순결과 진솔한 향기가 숨어있다. 하여 노을은 갈 데 없이 배회하는 영혼들의 고향이자 둔탁한 노출이다.

  노을은 흩어진 빛을 모아 이룩한 신의 색채이자 심원한 대우주를 수놓은 빛의 응결이다. 비록 최후의 날이 온다 할지라도 노을만은 이어지리라는 염원은 내 마지막 메아리. 아마도 검붉게 타오르는 저녁놀이 부여하는 뜻은 깊은 의식의 하늘에서 세인들이 살아가는 현장의 정결한 결정이리라. 그대의 맘에서 당신의 맘으로 건너가는 심장의 박동을 남몰래 엿들은 터다. 전연 불가해한 방언의 언저리를 두리번거렸다는 자백이다.

  흡사 패옥이 부서져 내리는 듯한 장경(莊景), 깨어있는 시간 초췌한 얼굴의 사내가 있다. 좌절과 실의 속을 헤매다가 고립된 고통에 타락한 순수를 일찍이 배워버린 아이. 그러나 그건 숱한 오류와 얼룩진 가식을 빙자해 전능자가 자기를 내쳤노라고 내뱉는 자탄에 불과했다. 설령 그렇다할지라도 심연의 수렁에다 자신을 내동댕이쳐서는 안 될 노릇이었다. 그만치 나와 노을의 만남은 극적인 해후였으니까. 그 조우의 호수에서 건진 눈부신 사물이랄까.

  연거푸 회의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몸놀림.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외침일지라도 젊은 세월을 속절없이 병들게 할 수는 없었다. 처절하고 고독한 용기의 필요한 시점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리고 따가운 삭풍이 휘몰아치는 겨울밤, 창밖에 버려진 가여운 넋이 새파랗게 질려 떨고 있대도, 내 어찌 마냥 마다만 할 수 있으리오. 한없이 버겁고 벅찬 고행일망정. 아니 고작 딴 세상의 언어를 탐색하여 계시라는 이름을 빌려 둔갑할지라도.

  연상(聯想) - 노을에 얽힌 그 연상의 모티브. 진부한 상징일수록 결국 본질에 가까울 거라는 말을 남긴 이는 푸른 풀의 시인이었다. 그윽한 황혼의 그림자는 마지막 남은 햇살에 한층 불그레 우거지고 있다. 동공이 뭉친 난 무르익는 반공(半空)의 신비를 감각한 채 경이로운 경악을 체득한 터였다. 언뜻 언뜻 보이는 사랑의 빛 무리. 그 앞에서 새가슴을 죄고 누르며 숭고한 영탄에 못 이긴 채 삼가 옷깃을 여미며.

  자, 이제 작은 육신의 비좁은 가슴을 열고 위화의 갈등 따위는 깨끗이 씻어버려야 할 때. 아직도 당신의 망막에 못 다한 다정의 갈증이나 오열에 찌든 나약함이 한 조각이라도 남아있거들랑 불사조의 넋처럼 그 잔해의 환영을 깡그리 떨치고 일어나라. 분노와 증오에 찌든 일상에서 머뭇거려 얻을 건 아무것도 없거니와 미구에 망가질 자아를 못내 추스르지 못하나니 이를 어쩌랴. 깡마른 영혼이 사모하는 절대자를 극구 외면한 채.

  황량했던 뇌파의 회로에 새로운 향수가 흐른다. 뜬소문 없는 접근, 영상처럼 교차하는 애수의 정조, 한 올 한 올 풀려나는 빛의 아리아, 목젖 깊숙이 떠도는 인간 내면의 그림자, 탁 트인 공간에서 꼼지락거리는 군상들. 그것들은 어쩌면 온갖 형상을 녹여내는 어떤 틀인지도 모른다. 그처럼 노을이란 농축된 염(念)을 달이는 약탕기였다. 바로 그곳에서 누군가가 하채(霞彩)의 부챗살을 펼치고 그리던 참이다. 무기력한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의 늪지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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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 노을은 풍요로운 추억의 강물. 문득문득 회귀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어머니의 품속 같아서 아스라이 느껴지나 단박에 쉬이 풀어내지는 못하는 아리송한 아련함이랬다. 노을이야말로 그냥 그대로 내 마음의 빛깔이고파 여태를 쌓은 고뇌의 빛바랜 여과여서다. 조물주의 섭리 속에 탄생한 심원한 천계의 풍물이면서 포용으로 터득할 여타의 동화이고, 단지 현란한 프리즘을 오롯이 담아내는 눈망울의 정제물이라고나 할까. <홈페이지
http://johs.wo.to/>

※ 이번호(288호)부터 '노을 수상록'이 5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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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노을 수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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