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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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어려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이냐에 대한 비법만큼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슈가 있을까? 이권우 평론가는 독서는 기본적인 문해력을 바탕으로 단계별 독서법을 권면한다. 통상 리터러시(literacy) 능력은 실용문을 이해하는 수준을 가리키므로 그 이상의 내용을 해독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저 심심풀이라면 모를까 굳이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면서까지 책을 손에 잡을 이유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기에 저자의 눈은 시종 청소년들을 주시하고 있다. 안타까운 건 그들의 관심이 유난히 독서의 기술에 쏠려있다는 점이다. 자칫 젊은이 특유의 도전정신마저 퇴색하는 게 아닌지 내심 근심스럽다는 말이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이런 경우도 보았다. 제출한 독후감에다가 지은이더러 잘난 척하더라는 표현이었다. 좀 쉽게 쓰지 뭐가 이토록 현학적이냐는 어투는 그나마 정화된 표출에 속한다. 급기야 저자를 겨냥한 원망은 자신을 향한 책망으로 이어지고 만다. 이는 응당 공들일 사안을 외면하는 풍조와 관련되어 있다. 상책은 내게 너무 난해한 책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자각이다. 물러섬이 때로는 다가섬이다.


또래에게서 지혜를 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고민의 공감대를 서로 나누라는 조언이다. 예로부터 공부란 늘 새롭고 약간은 버거운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어서 그렇다. 앎의 영역을 늘려가기 위해서는 개척자적 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무슨 일이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야 동티가 나지 않는 법이다. 알고 보면 전문서적의 세계도 수능시험의 영역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목차를 보고 전체주제를 알아차리듯이 지문을 읽고 소주제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저자가 개념어 사전을 준비하라는 권고와 맥이 닿아있는 대목이다. 복잡한 글월을 읽어내려면 취지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꿰뚫고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문제는 행간의 뜻을 놓치다 보면 자꾸만 포기하고픈 유혹이 생긴다는 점이다. 글쓴이는 이를 두고 악마의 소리라고 단정한다. 퍽 버겁더라도 참을성 있게 끝까지 읽어내는 뚝심이 성취감의 요체라는 격려다. 고로 바람직한 독서는 속독이 아니라고 나무란다. 5분 안에 승부를 보는 영화와는 다르다는 타이름이다. 책이란 집을 짓는 일과 쏙 빼닮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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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마가렛 꽃무리

 

그렇다면 대중이 선호하는 실용서와 인문서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달라야 할까? 다소 불친절한 서두보다는 중간쯤에서 해답을 찾으라고 권유한다. 책을 읽는 도중에 간간이 목차를 확인하는 요령도 일러둔다. 논의의 현주소가 어디쯤인지 그 위상을 확인하는 일이 뜻밖의 도움이 되어서다. 아예 결론 쪽으로 눈을 돌려도 괜찮다. 역으로 추적하다가 의외라 싶게 의문점이 풀리는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가 제시하는 이른바 책벌레표 ‘독서법 십계명’은 참고할 만하다. 첫째, 책을 무턱대고 읽지 말고 천천히 살펴보라. 둘째, 연필을 들고 읽으라. 셋째, 접속어에 주의하라. 넷째, 같은 주제의 책을 동시에 읽어보라. 다섯째, 그 주제와는 다르게 주장하는 책도 함께 읽어보라. 여섯째, 골라 읽는 재미를 들여놓으라. 일곱째, 어쨌든 천천히 읽으라. 여덟째, 자투리 시간을 십분 활용하라. 아홉째, 100권 읽기에 도전해보라. 열째, 독서토론을 기록하라. 구태여 주제를 삶과 사회에 발맞춰 재검토하라는 건 그동안 실천하지 못했을 뿐 몰라서가 아니어서다. 아시다시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가 퇴행하는 주범은 늘 게으름이었다.


요컨대, 지은이의 학력이 아닌 실질적인 이력, 추천서나 요약문, 고갱이를 모은 머리말, 설계도인 목차, 독서 중 가치평가를 남기는 습관은 부연과 예시의 주목도를 높이고, 요약과 각주는 주춧돌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내용에 몰입은 하되 비판 정신을 놓치지는 말란다. 저자가 명명한 ‘이크의 책읽기’야말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미덕이기에 발췌독의 효능감, 즉 음미-회상-성찰-전망 순으로 소화하라는 주문이다. 눈길을 돌려 이이(李珥)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을 되새겨보는 일은 선인들이 필사를 겸한 독서법의 달인들이어서다. 고인들 가운데 유독 공부를 위한 독서론에 중점을 둔 이유일 텐데, 몽매한 이들을 가르치는 비결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자녀교육의 초점을 정독에 두었다는 점은 과거시험, 곧 입신양명이라는 시대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유의미한 채근이다. 선조들은 인간의 도리를 깨우쳐주려는 방편으로 교학상장의 장을 마련했고, 거기서 사서삼경을 비롯한 동양철학의 경지를 섭렵하도록 종용한 참이다. 지적 포만감은 무게를 안고 전열을 가다듬어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8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읽어본 서책 활용하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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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평자가 말하는 독서법’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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