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정재우 칼럼.JPG
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새해 들어 또 한 명의 소방관이 인명을 구조하러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 생명을 잃었다. 자초지종을 따져 보기 전에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어디서 온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소명 때문이다. 단지 직업의식으로 소방관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소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해 통계 발표에 의하면 모든 직업군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직업이 소방관으로 조사됐다. 이런 결과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소명 의식이 분명한 직업군 사람들이기에 그러하리라 본다.


우리 사회는 이런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하는 직업이 여럿 있다. 소명과 관련한 직업군으로 교사, 군인, 경찰, 소방관, 공직자, 복지사, 의사, 약사, 간호사, 성직자 등이다. 이들은 경제적 이유만으로 이런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이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통념이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존경심과 기대감을 가진다. 지난 코로나 기간에 의료진이 보여준 헌신과 희생은 눈물겨운 감명과 감동을 주었다. 세계인이 주목한 K-방역의 명성을 얻었다. 그때 주무 공직자인 최고위 방역 책임자는 여성으로서 검은 머리카락이 흰 머리카락으로 변해가는 걸 우린 지켜보았다. 진심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의료인이자 공직자였다.


그런데 오늘의 상황은 어떠한가? 생명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하는 전공의는 누구를 위해 소명을 받은 자인가? 환자인지 자신인지 솔직히 생각해 보라. 국민 대다수는 의아해한다. 코로나 팬데믹 때도 그렇지 않았는데 의사 수를 증원하는 일이 이만큼 목숨 걸 일인가?


또 정부도 진작 설득력 있게 진심으로 다가가 소통하고 또 대안을 서로 제시하고 조율해 보았는가? 법으로 강압적인 자세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지난 코로나 팬데믹 때 그들의 헌신과 희생을 염두에 두고 차근하게 접근해 보았는가? 마치 일방통행식 행정권 발동으로 굴복시키려 해서 해결될 일인가?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현황을 따져 보고, 대안을 찾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가?


의사들도 자신들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집단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중증 환자와 긴급한 수술을 요하는 의사들을 교대로 배치하고 주말을 택해 본업에 지장 없이 조치를 취하고 의사 표현을 할 수는 없었을까? 그랬다면 국민들은 존경하고 신뢰하는 의사들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필자는 목회자를 배출하는 신학전문대학원 외래교수로 6년을 봉사한 경험이 있다. 목회 실습 과목을 가르쳤다. 이론 보다 실전을 가르치는 필수과목이다. 커리큘럼에 따라 첫 학기는 ‘소명’에 대해 가르쳤다. 성직에 대한 소명 의식 없이 신학 수업을 받지 말라고 했다. 소명은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말한다.


목사의 직에 대한 분명한 소명이 있어야 신학을 공부할 자격이 있다고 가르쳤다. 즉 교회와 성도를 섬기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성직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직은 세상적인 명예나 재물이나 탐욕을 버려야 한다. 때로는 목숨을 바쳐 이웃과 교회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순교자가 나오는 것이다.


소명을 받기 위해 전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먼저 인성으로서 선한 양심과, 윤리 의식, 희생과 헌신의 각오가 있어야 한다. 코람데오(신전 의식) 정신이 요구된다. 그리고 소명을 받은 후에는 자아 내려놓기와 회심, 성결과 성결한 삶, 순명과 청렴, 정직과 공개적인 신앙고백과 성직 임직식(목사 안수례)을 받아야 한다.


일련의 수련 과정과 엄격한 영성 훈련을 마친 후 임지로 나아가야 한다. 의사와 같이 신학 수업을 시작해 임직을 받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린다. 그리고 초년생 목사가 된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이처럼 소명 받은 타 직업군도 비슷한 수련 과정을 거쳐 사람의 신체와 정신과 영성 분야의 봉사자가 되는 것이다. 이 일이 단순한 근로자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가 이름이 없는 이런 봉사자들로 인해 안전하고, 안락하고, 행복하고, 자연스럽게 지탱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다시 한번 ‘소명’을 생각해 보자. 이런 직업군을 선택한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져 보자. 의사들도 환자들과 국민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자. 아직은 시간이 남아 있다. 자기 위치를 지키면서 협상의 테이블로 나오라. 또한 그들의 소명을 존중하면서 대화로 소통하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지금이야말로 소명 받은 자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묵묵히 봉사하며 섬길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때가 아닌가.


태그

전체댓글 0

  • 3313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정재우 칼럼] 숭고한 소명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