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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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올여름은 3대 재난을 겪었다. 폭우, 폭염, 태풍으로 온 국토와 국민이 몸살을 앓았다. 기후 위기에 따른 천재(天災)다. 불가항력적 재앙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볼 일이 남아 있다. 가까운 미래 예측이 부실했다. 이는 인재(人災)의 영역이다. 예방문화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까닭이다.


그런데 여름 3재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이른바 ‘신림역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과 보름 후에 동일하게 발생한 ‘서현역 사건’이다. 이로 인해 불안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흉기 난동 사건이 이리도 무서울 줄이야.


이 사건 범인들의 특징은 ‘은둔형 외톨이’이란 점이다. 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된 고립, 고독형 인간이다. 범죄 수사 과정에서 많은 심리적 검사가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확인해야 할 일은 사회적 안전망을 심도 있게 재평가하는 것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더 일찍 이런 류(類)의 사건 사고를 겪었다. 사람들은 이런 범행의 특징을 가리켜 이들을 ‘거리의 악마’라 불렀다. 그래서 지금도 이런 은둔형 외톨이들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더 촘촘히 마련해 예방에 주력한다고 한다.


학교와 학원에 자녀들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에 갈수록 불안지수가 높아질 것이다. 직장에서 오후 늦은 시간에 퇴근하거나 붐비는 지하철역이나 백화점 쇼핑을 나설 때, 사람들은 경계심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과연 우리가 살만한 도시 풍경인가?


이렇게 힘든 더운 계절을 보내며 마음을 다잡아 보자. 다른 사람, 곧 이웃에 대해 생각을 바꾸어 보자. 우린 결국 ‘사회적 존재’임을 벗어날 수 없으니까.


한숨을 돌리며, 나호열 시인의 ‘안아주기’를 음미해 보자.


“어디 쉬운 일인가

나무를, 책상을, 모르는 사람을

안아 준다는 것이


물컹하게 가슴과 가슴이 맞닿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대, 어둠을 안아 보았는가

무량한 허공을 안아 보았는가


슬픔도 안으면 따뜻하다

마음도 안으면 따뜻하다


가슴이 없다면

우주는 우주가 아니다“


우리가 어우러져 우주를 이룬다. 그 우주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 가슴으로 안아주어야 비로소 우주가 된다. 생명이 감돌기 시작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둠도 허공도 슬픔도 은둔형 외톨이도 안아주면 따뜻해진다. 소통하고 치유된다. 시인이 바라는 세상은 가슴이 있는, 안아주는 작은 배려가 있는 그런 우주이다.


비지땀 흘리며 물건을 배달해주는 택배원에게 시원한 미숫가루 한 잔을 건네주는 주부, 고속도로 졸음 쉼터 휴게소 안팎과 화장실을 청소하며 그 시간에 쉼터를 다녀가는 운전자를 위해 냉수를 준비해 무상으로 나눠주는 관리자들(특히 대부분이 여성), 태풍 후 농촌의 무너진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논밭 이랑을 돋우고 쓰레기를 치우는 도시에서 달려간 시민단체 봉사자들, 우리 우주를 아름답게 수놓는 따뜻한 가슴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세계 잼버리 사태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나섰다. 그들에게 부족했던 물을 들고 갔다. 식당 주인은 음식값도 깎아 주었다. 어떤 도시 아줌마부대는 잼버리 야영장 화장실을 청소하러 달려갔다. 기업과 대학교, 종교단체는 기숙사와 수련장을 제공하고 그들을 섬겼다.


폭염 속, 냉수와도 같은 작은 선한 손길이 있어 아직 우주는 숨통이 막히지 않았나 보다. 가슴이 있는 세상, 서로 안아주는 따뜻한 마음의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어느 음악방송 시간의 엔딩 멘트를 가슴으로 전한다. “당신의 하루가 아름답게 펼쳐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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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안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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