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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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드디어 이번 여정의 마지막 국가에 무사히 입성. 루마니아(Romania, 인구: 1,900만 남짓, 면적: 한국의 2.3배)는 발칸반도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싱그러운 대자연도 그렇거니와 초장부터 연일 입담을 과시한 박대장의 강력한 라이벌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현지 가이드 김학재 씨는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루마니아 한인회장을 맡아 각종 사업을 벌이는 교포로서 한국의 공중파 방송국에서도 섭외할 만큼 정통한 소식통을 겸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쉴 새 없이 쏟아놓는 다양한 화젯거리로 봐서는 도리어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나는 별의별 언어유희라도 유쾌하게 접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그의 일성은 루마니아라는 나라는 만만찮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고평가. 놀랍게도 1966년부터 ‘다치아’라는 자국 브랜드로 당당히 자동차를 생산해 왔다는 말에 의아한 반응들이다. 이에 밀릴세라 그는 세계적 기업인 현대기아차마저 ‘KOREA’라는 국명을 감춘 채 국제 사회를 상대로 광고를 제작하는 사실을 아느냐고 반문했다.


위엄을 갖추고 서 있는 개선문에 이어 기다랗게 뻗어있는 대공원. 추적추적 궂은비가 내리는 가운데 목적지를 향하며 차창을 통해 살펴본 루마니아의 거리는 건축물마다 독특한 예술미가 있었다(안타깝게도 철권 통치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현재는 유서 깊은 건물이 많이 사라진 상태라고 함). 부러운 건 자가 보유율이 무려 90%에 달한다는 사실. 더구나 아직 발굴하지 않은 다량의 지하자원은 물론 산유국으로서 세계에서 등유를 사용한 가로등을 최초로 만들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노벨상 수상자를 네 명이나 배출한 이력에서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나아가 농지가 국토의 60%에 이를뿐더러 인터넷 속도가 세계 5위권에 속한다는 사실도 처음 접하는 정보다. 그런데 왜 루마니아라는 국가 이미지는 체조 선수 코마네치의 활약상을 제외하면 고작 독재자 차우체스쿠의 비참한 말로가 전부인 것처럼 한국인들의 뇌리에 각인되었을까? 그 또한 무리가 아닌 것이 오랜 세월 구소련의 위성국가로서 북한과 친하다는 굴레가 좀처럼 벗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 하더라도 적잖은 상주인구로 보나 한반도를 능가하는 영토의 넓이(영국과 비슷함)를 헤아리면 상당히 의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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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마니아의 국보 1호 펠레슈성

 

현지 가이드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거듭한 루마니아 국보 1호인 ‘펠레슈성’의 위용은 세미한 건축미뿐만 아니라 그 안에 보관한 보물급 유물을 통해서도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1873년부터 1914년에 걸쳐 완공했다니 익히 거기에 투입된 공력을 알 수 있거니와 이 건조물을 가리켜 왜들 카르파티아의 진주라는 별칭을 붙였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펠레슈성은 세간의 품평처럼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춘 건축물일까? 평자에 따라서는 약간씩 평가들이 엇갈릴 수 있겠으나 갓 문외한을 벗어난 필자의 눈에는 치밀한 설계도면에 따라 혼신의 힘을 다해 지은 걸작품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니 이 건물이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의 각 양식을 취한 네오르네상스 스타일의 성이라는 사실관계는 부차적이다. 카롤 1세가 여름철 궁전으로 지었으나 정작 본인은 사용하지도 못하고 죽었다는 해설도 귓전을 스칠 뿐이다. 이 시점에서 필자의 긴요한 관심사는 이 유적을 통하여 후손들에게 미치는 정신사적 영향력이요, 궁극적으로 돌아올 삶의 변화상이 중요하다고 본 참이다.


시나이아 수도원의 소박한 자태를 보고 필자는 목가적이라는 어휘를 처음으로 행간에 올리게 되었다. 이는 요란하게 꾸미지 않은 사제들의 숙소를 보고 소환한 지점이자 좌중을 향한 고요한 포효. 모름지기 인간이란 자신을 낮춘 채 순전한 겸손을 유지할수록 신을 향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앞서 암시한 대로 형식은 내용을 담보하지 못하고, 내용은 형식을 제어하지 못한다. 이것이 구원신앙에 대한 나의 평소 지론이자 원색적인 복음의 본질이다. 그러한 마당에 지성소를 재현해 놓고서 제사장의 흉내를 내본들 휘장은 다시는 찢어지지 않는다. 십자가상의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이미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셨기 때문이다. 문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는 것이다(마태복음 22:14). 끝내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은 채 살다가 구더기도 죽지 않는 불못으로 들어가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다(마가복음 9:48).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87호)에는 ‘루마니아: 시기쇼아라 및 부쿠레슈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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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루마니아: 펠레슈성 시나이아 수도원 (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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