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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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차창에 비친 풍경이 확 바뀌었다. 막 국경을 통과했다고는 하나 지형을 금세 갈아치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더욱 신기한 장면의 연속극. 산악지대에서 갑자기 평원지대로 변신한 까닭은 조물주만이 그 비밀을 아실 터이로되 여행객으로서는 즐거운 눈요깃거리가 아닐 수 없다. 좀 더 거들자면 뚜렷한 차선에 도로의 경계선마다 설치한 차단봉마저 예사롭지 않다. 스웨덴(Kingdom of Sweden, 면적: 한국의 4.5배)이란 나라는 한눈에 세기(detail)에 강할뿐더러 상주인구 천만이 넘는 면모(1인당 국민소득 약 5만 달러)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참이다. 바로 옆 나라처럼 야트막한 관목에 이끼류가 기생하는 바위지대와는 판이한 풍경화. 냉큼 차에서 내려 잘 가꾼 숲속을 실컷 거닐어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이를테면 그 옛날 스웨덴 왕국의 일면식을 두고 지레 유럽 일대의 도시들 사이에 맺었던 무역공동체, 즉 ‘한자동맹(the Hansa)’의 한 축에 들어선 기분을 애써 소환하는 중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나타난 간판이 ‘IKEA’에 이어 ‘VOLVO’까지 선뵈고 있다면 수도 스톡홀름(약 165만 명)의 첫인상은 일자리 산업이 꿈틀거리는 현대도시의 현주소를 체감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도심에 자리한 호텔에 봇짐을 풀자마자 폭주족이 내는 굉음을 접한 건 꽤나 뜻밖의 일. 하지만 이마저 스웨덴이 허용한 자유의 발산이라고 이해한 건 이튿날 아침이었다. 아내와 나선 산책길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거리와 더불어 대자연을 학습하기에 알맞은 어린이놀이터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친환경 소재를 이용해 아기자기하게 꾸민 시설들을 돌아보며 흙모래를 매만지며 맘껏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어른들의 양육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부럽고 흐뭇했다. 특히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안전한 그네의 생김새. 자동차 시트처럼 폭 들어가 앉도록 만들어 위험도를 낮추었으니 당장 수입목록에 올릴 만하다. 유사시에 대비한다고 마냥 모험 자체를 차단한 품도 아니다. 미끄럼틀을 타고 올라가는 구부러진 사다리는 훈련용 계단을 연상케 했다. 주위는 흡사 해자처럼 형성된 강줄기. 잔잔히 흐르는 강변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고 싶었으나 정돈된 상가, 가지런한 주택가, 정갈한 교회당, 직장인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을 서둘러 살펴본 다음 정해진 식사 시간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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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의 스톡홀름 시청 내부 중 계단의 예술미

 

스웨덴이 한때 자긍하던 조선업의 모태는 바사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다. 역사의 현장을 확인해보니 그 위용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현지 가이드의 목소리에 담긴 줄거리를 요약하면 바사호는 현존하는 17세기 유일한 목재 전함. 바사왕국 구스타프 2세의 지시로 1625년에 건조를 시작하여 1628년 8월 항해에 나서자마자 침몰한 범선이었다. 450명이나 태운 돛단배를 단 2년여 만에 건조한 치열함도 놀랍거니와 과다적체로 인해 가라앉은 배를 급기야 333년 만에 발견하여 1961년 인양해낸 집요함은 더 경이로웠다. 줄줄이 쏟아놓는 해설을 듣자니 생생한 녹화화면이 아니더라도 당대 만천하에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호화롭게 장식한 사자 왕의 허영심은 사전에 대전함의 종말을 배태하고 있었다. 총길이 69m, 최대폭 약 11.7m, 높이 52.2m의 선박에 실었던 대포나 각종 기구류를 보아하니 아닌 게 아니라 타이태닉 거대유람선의 예고편을 접한 듯했다. 그러나 인간의 교만은 매번 그 지혜의 원천이 신의 섭리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영어 낱말인 present가 지닌 뜻처럼 내게 주어진 현재야말로 감사할 선물임을 망각한 채 잘난 척 날뛰다가는 치르는 대가가 혹독하다는 기시감(deja-vu)을 말함이다.


스토크라는 통나무와 홀름이라는 섬을 합쳐 스톡홀름이 되었다는 가이드의 해설. 그중 시청은 당시 건축술의 모든 요소를 가미한 역작이었다. 비잔틴 양식을 비롯해 바로크, 로코코, 고딕, 르네상스 등 받아적기에도 벅찰 만치 혼합미의 총망라. 다만 그 목적이 국민의 파티장으로 사용할 의도였다면 서사는 달라진다. 멀리 갈 거 없이 눈앞의 호수(식수)에 띄운 민심의 배는 왕가를 태우고 순항할 수도 있으나 정반대로 뒤집어엎을 수도 있다는 진리를 일찌감치 알아차린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뗏목섬에 구축한 스웨덴왕궁은 어떨까? 보존된 가구들의 평균치는 기본이 300년. 높낮이를 안정감 있게 설계한 계단은 우리 부부가 가장 높게 평가한 지점이다. 최상층부에서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지 않고는 그 영화를 누릴 자격에 미달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긴 시공이랄까. 세심하게 꾸민 곳마다 고품격을 갖춘 시민공원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1호)에는 ‘북유럽 기행 - 핀란드라는 나라의 확대경’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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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스웨덴이 구축한 시공문화’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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