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복잡한 관계 통해 거듭 진화해 와

배다리마을숲 산수유나무, 늦가을~이른 봄까지 직박구리·물까치 넉넉한 에너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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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 평택자연연구소 소장

“드넓은 고원의 꽃밭, 하양, 노랑, 보라 등 색색의 꽃들이 만발해 있다. 산들바람이 부드럽게 볼을 어루만지고 멀리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노랑나비가 어른거리고 꿀벌의 ‘부웅’하는 낮은 날갯짓 소리가 귀를 스친다.” 위 내용은 다나카 하지메의 ‘꽃과 곤충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이란 책 서문에 나온 글로, 갖가지 모양과 색상으로 만발한 꽃 주변에서 꽃꿀을 따고 있는 나비와 벌 혹은 곤충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멋있고 아름다우며 서로의 필요에 따라 영향을 주고받는 공생관계쯤으로 느껴지지만 그건 착각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꽃과 곤충은 목적을 위해 상대를 속이고 속는 관계라고 말한다. 자칫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의미의 상부상조하는 관계처럼 보이지만 저자의 글을 보면 그들 간의 상부상조는 우리들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 꽃과 곤충 사이에는 처음부터 그런 선한 의도나 계약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꽃은 그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피어나고, 곤충 또한 주린 배를 채우고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이꽃 저꽃을 찾아다닐 뿐이라고 한다.


단연코 저자는 이 책에서 꽃이 현란할 정도로 보여 주는 기만술과 변장술은 단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이뤄지며, 바로 효과적인 꽃가루받이, 곧 생존과 종족 보존임을 지적하고 있다. 꽃과 곤충의 이러한 관계는 생태계 전반에 깔린 현상으로 생존의 방식은 꽃과 곤충의 관계를 넘어 꽃과 새, 열매와 새와도 긴밀하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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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색 열매를 이용해 직박구리를 불러들여 종족을 이어가는 꽃사과나무(2024.1.8)

 

◆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

 

생명을 지닌 동·식물이 함께 살아가는 모양이나 생활상태 혹은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고 적응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생태’라고 한다면, 생태계란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가 함께 체계(System)를 이루어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생태계란 의미를 조금 더 들어갈 수 있다면 생태학자 베리 커머너(Barry Commoner, 1917-2012)는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들과 서로 연관되어 있다”라고 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 관련이 있고 복잡한 관계를 통해 진화해 왔음을 전하고 있다.


새의 종류에 따라 나름 먹이 패턴이 정해졌지만, 대다수 새는 잡식성으로 크기나 부리의 모양에 따라 먹는 먹이가 조금씩 다르다. 배다리생태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새를 중심으로 먹이 패턴을 정리하면 박새와 곤줄박이, 딱새와 노랑턱멧새 등의 새가 열매와 씨앗, 벌레 혹은 곤충을 먹이로 삼지만 특이하게 직박구리와 오목눈이처럼 꽃꿀을 따거나 나무 수액을 먹는 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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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나비가 좋아하는 붉은색 꽃을 이용해 나비를 유혹하는 영산홍(2016.4.23)

 

앞에 언급했던 다나카 하지메의 ‘꽃과 곤충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이 꽃과 곤충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우리의 시선을 조금만 높여 위쪽을 바라볼 수 있다면 새를 유혹하기 위한 작고 붉은 열매와 그 속에 숨겨진 눈속임 또한 ‘꽃과 곤충’에 비해 크게 다르지 않다.


수천 년을 지내오면서 풀과 나무, 곤충과 야생조류 사이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을 것이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개체로 살아남거나 종족 보존을 위해 상생을 하는가 하면 경쟁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속임을 선택하기도 한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풀과 나무를 보면서 남을 그럴듯하게 속여 넘기는 나름의 술책을 쉽게 알아차릴 수는 없지만, 이기적인 유전자 깊은 곳에 내재한 기만술과 변장술을 통해 자손을 이어가고자 하는 그들만의 끝없는 노력에 숙연해지고 차라리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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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자리의 분홍색 가짜 꽃으로 곤충을 유혹하는 산수국(2016.6.18)

 

◆ 종족 보존을 위한 유전자의 노력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풀과 나무 그리고 이를 기다리는 곤충과 새 사이에서 일어나는 눈속임에는 간략하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그중 하나는 꽃이 피면서 꽃가루받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다양한 모습의 꽃으로 주변 곤충을 유혹하는 눈속임과 종의 보존 전략의 하나로 자신의 종족을 멀리까지 퍼트리기 위해 열매의 색상으로 새를 유혹하기 위한 눈속임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전 세계의 조류학자들은 오랫동안 자연에 붉은색을 띤 과일이 풍부한 원인으로 이런 과일을 먹고 씨앗을 퍼뜨리는 조류가 선호하는 색상에 있다는 가설을 제기해 왔는데,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를 통해 과일의 색상은 새의 취향에 맞춰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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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새가 가장 좋아하는 붉은색 열매를 통해 직박구리를 불러들인 좀작살나무(2022.9.7)

 

배다리생태공원에서 터를 잡은 80여 종의 수목 중에서 야생조류의 관심을 많이 받는 나무는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인데 공통점이 있다면 붉은색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피라칸사스, 남천, 낙상홍, 가막살나무, 백당나무, 산사나무 등의 수종은 없을지라도 팥배나무, 화살나무, 아그배나무, 꽃사과나무, 찔레꽃, 팽나무, 산수유나무, 산딸나무 등이 붉은색 열매를 달고 있어 적지 않은 야생조류에게 생존의 즐거움을 전하고 있다. 그중에서 산수유나무의 붉은색 열매는 배다리마을숲과 산책로의 대표 열매로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무리 지어 활동하는 직박구리와 물까치에게 혹독한 겨울을 이길 수 있는 넉넉한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무당벌레를 쫓고자 개미를 불러들인 진딧물, 엘라이오좀이라는 지방산 덩어리를 씨앗에 붙여 개미를 통해 씨앗을 멀리 보내려는 애기똥풀, 잎벌레들의 공격에서 벗어나고자 잎몸 아래쪽에 꿀샘을 달아 개미를 불러들이는 벚나무 등 모두 개미와의 관계 맺음이지만 사전 묵시적 협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상부상조나 공생관계는 더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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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조류 물까치를 이용해 자신의 종족 번식을 이어가는 산수유(2023.1.6)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이 생태계 구성원들 간의 처절한 생존경쟁인 듯 보이지만 실은 자기가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대안을 선택한 것이고, 협력과 상생이라는 것도 결국은 생존을 위해 더 나은 방향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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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의 평택의 자연] 생존을 위한 최적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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