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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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무려 열다섯 시간에 이르는 비행에는 감내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 시공을 어떻게 메우느냐도 각양각색일 터, 필자의 경우는 일단 핸드폰과 절연한 채 방문지의 자료를 뒤적이는 일 외에는 심신을 푹 쉬게 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다. 어렵사리 당도한 덴마크(Kingdom of Denmark)의 수도 코펜하겐(인구: 약 140만 명). 첫눈에 초지가 대부분인 국토는 유순했다. 거꾸로 돌린 7시간의 시차로 인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곧바로 나선 뉘하운 운하(17세기경 개통) 투어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의 일성은 585만 정도 인구(면적: 한국의 43%)의 나라에서 이룩한 자랑거리 일색이다. 그럴 만한 것이 그녀의 말마따나 1인당 63,000달러에 이르는 국민소득이야 고물가를 연동한 구매력 지수를 따져봐야 하겠으나 거리 질서가 확 잡힌 사회상. 무엇보다 자전거도로의 원활한 흐름이 시야에 들어온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보행자가 자전거 통행을 방해하면 배상책임을 지운단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무단횡단하는 가운데 벌어진 교통사고에도 운전자의 과실 여부부터 따지고 드니 거드는 말이다.


우리 부부가 놓치지 않는 해외여행 포인트는 아침 식사 전 둘러보는 산책로. 정갈한 골목과 보행로를 걸어보니 역시나 강소국답게 발바닥이 부드럽다. 노면 상태는 장인정신과 맥을 같이한다고 누차 강조하는 이유다. 응당 이들에게서 발견하는 한결같은 가치는 투철한 직업의식. 쾌활한 안내자나 듬직한 선장이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그러고 보니 유람선을 이끄는 이들은 여인 천하. 수로를 따라 펼쳐지는 시가지 풍경도 동화에 곁들인 그림처럼 싱그럽지만 맛깔스럽게 이어지는 현지 가이드의 입담 또한 쏠쏠하다.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건축양식은 덴마크인들이 창출한 지혜로움. 수로에서 스치는 안데르센의 거주 지역이 세 군데라더니 정수리에 닿을 듯 아슬아슬 빠져나오는 낮은 다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메라 렌즈들은 연신 명장면을 놓칠세라 주위 풍경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눈앞에 즐비한 자전거 행렬을 뒤로하고 왼쪽으로 블랙다이아몬드라고 즐겨 부르는 왕립도서관에 이어 오른편으로는 독특한 디자인의 박물관이 지나간다. 원형과 사각형을 조합한 해군병영은 흡사 바다를 제압하려는 듯한 기세. 코펜하겐이 상업 운하도시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하고 결코 무관해 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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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마크의 코펜하겐 뉘하운 운하에서 본 시가지

 

이른바 비만세(Fat Tax)를 처음 도입한 나라도 덴마크. 2011년 10월 지방이나 설탕, 소금 함유량이 높은 식품에 부과하는 소비세를 전격 시행한 과단성이야말로 돋보이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덴마크는 이듬해 비만세 항목을 폐지했으나 이후 헝가리를 비롯해 프랑스, 핀란드, 멕시코 등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조세를 징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생활 의학 분야가 발달했다는 설명을 듣자니 유난히 유제품의 품질이 뛰어난 건 당연지사. 서해대교를 설계한 이가 덴마크인이라는 점도 놀랍거니와 물밑 주차장, 정교한 잠수함, 다들 꺼리는 소각장 등과 여왕의 거처가 멀지 않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고급아파트의 일정 지분(8%)을 빈자에게 할애하는 사회적 합의라면 수상가옥이면 어떻고 바다 버스 옆에 자리한 포장마차인들 어찌 정겹지 않으랴. 한국인 시민권자가 300여 명인 데 비해 입양아 숫자가 9,000명에 달하는 현실을 보면 이네들의 수준 높은 의식구조를 95%나 차지하는 복음루터교 교인들이 묵묵히 대변하는 참이다.


상생에 기반한 자발적 출산율이 부러운 건 이 나라가 국가 경쟁력 1위에다 일개인을 영웅시하지 않는 풍조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하리라. 수많은 계단을 딛고 ‘우리 구세주 교회’의 첨탑에 올라간다고 해도 구원은 이신칭의에 근거한 신행일치를 이루지 않는 한 절대 임하지 않는 법. 평범한 목수가 창안한 레고 장난감이 지구촌 시장을 휩쓸고, 지은 지 수백 년이 지나도 건물의 원형을 보존하려는 안목이 없다면 어릴 적부터 쓰레기를 줍도록 가르치겠는가? 다만 세계 최초로 타투를 고안해 유행시킨 공치사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한다. 이는 신체를 훼손하는 일이 불효라는 유교적 이념 이전의 성경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내 차가 떠날 시각을 예고하는 ‘주차시계’야말로 당장 도입할 만한 혜안. 새로 선출된 수상의 얼굴을 보는 절차로 취임식을 대신하는 여왕마저 필요할 때마다 박물관에서 보석을 빌려 쓸 만치 모든 사물의 박물화를 꾀하는 나라. 투명하게 상시 개방하는 시청사에서 풍기는 고품격을 감안하면 게피온 분수 아래 인어공주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덴마크에서는 만날 때 ‘하이’, 헤어질 땐 ‘하이하이’를 거듭하는 인사말도 실용적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09호)에는 ‘북유럽 기행 - 노르웨이 자산은 평등사상’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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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덴마크는 미래지향적 국가’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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