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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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한여름 맹위를 떨친 불볕더위에 다들 평안하셨는지요? 그래도 입에 들어올 알곡이며 열매를 이만치 허락하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난번에는 ‘십계명’을 주제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지요. 험난한 생활 현장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올곧게 살아가는 길이 녹록지 않기에 우리는 더욱 말씀을 궂게 붙잡아야 합니다. 이번에는 “사람은 왜 배워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이는 단순히 상급 학력을 쌓아가자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은 온통 일류대학을 나오기 위해 전쟁과 같은 입시를 치러내는 일에 몰두하지만 믿음의 형제자매들은 배우는 목적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드러내는 데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창조세계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지름길입니다. 천고마비의 계절에 각 학과목을 중심으로 다양한 학문의 구성 원리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저는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한글의 음운 체계에 대해 새삼 놀라곤 합니다. 자음(닿소리)과 모음(홀소리)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참으로 오묘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그 주역은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입니다. 자음은 발음기관(혀, 입술, 이, 목구멍)을 본떠 초성과 종성을 만들었고, 모음은 우주의 주요소인 천지인(天地人)을 본떠 중성을 이룸으로써 생생한 소리글자를 생성해냈습니다. 세계에서 현재 사용하는 수천의 언어 가운데 육하원칙에 답할 만큼 창제원리가 분명한 문자는 한글뿐입니다. 유엔에서 해마다 문맹 퇴치에 기여한 단체나 개인에게 수여하는 상의 이름이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인 것만 보아도 그 위상을 충분히 알 수 있지요. 훌륭한 리더를 중심으로 이뤄낸 걸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조촐한 글을 써서 발표하는 문인으로서 우리말을 쓸 때마다 깊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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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반 자생적이로되 외국어도 별반 다르지는 않습니다. 물론 지구상에 익혀야 할 언어가 여럿이어서 누리는 이점도 있긴 합니다. 수많은 일자리가 생긴 터입니다. 까다로운 언어 습득의 관문을 통과한 이들이 누리는 복락이지요. 에덴에서 하나였던 말이 갈라진 까닭은 이렇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 회개를 통해 거듭난 줄 알았던 인간들은 끈질긴 원죄의 사슬을 끊지 못한 채 불과 얼마 가지 않아 하나님을 대적하기에 이릅니다. 곧 바벨탑 프로젝트였지요. 다시는 물로 심판하시지 않겠다는 언약을 불신했기에 대대로 거처할 성을 하늘 높이 쌓아 심판을 피해 보자는 심산이었지요. 너나없이 피해망상증에 걸린 영적 중증 환자였던 셈입니다. 차후에는 불 심판을 예고하셨는데도 말입니다. 현재 영어 공부에 매달려 골머리를 앓는 원인이지요. 분명히 기억할 일은 우리가 천국에 가면 태초 주셨던 하나의 언어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수학의 세계는 더욱 논리가 정연합니다. 예컨대 복잡다단한 방정식을 왜 주셨을까요?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을 발견하는 훈련과정이 수학이니까요. 창조 법칙을 찾아보라는 퀴즈요 보물찾기입니다. 자연과학이나 응용과학도 같은 줄기입니다. 이를테면 제아무리 위대한 수학자라고 해도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의 계획을 겉핥기로 하나둘 찾아낼 때마다 마치 자신이 만들어낸 것처럼 기뻐 날뛰는 모양새지요. 그 가운데 가장 신묘막측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래서 아직 전능자를 만나지 못한 유명 의사나 과학자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 뛰어난 머리로 평생 인체를 연구하고 우주를 탐구하면서도 모든 게 저절로 생겨났다고 우기니 말입니다. 이른바 ‘우연과 추정’을 남발하며 ‘오랜 세월’을 무기 삼아 무작정 버티자는 형국이지요. 온갖 보화의 원천은 삼위의 하나님밖에는 안 계시기에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사회나 예체능 과목도 똑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물질로 응용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구의 자전(비행기 속도의 약 두 배의 시속)으로 인해 낮과 밤이 생기고, 지구의 공전(자전의 약 64배의 시속)으로 인해 사계가 바뀌는 걸 보십시오. 게놈(genome)이란 게 무엇입니까? 초월자에 의한 사람의 설계도 아님니까? 눈앞에서 창조주의 사역을 확인하고도 믿지 못하는 바는 전적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한 탓입니다. 시와 때를 따라 열심히 공부하는 까닭은 바로 창조세계를 올바로 알아나가기 위해서지요. 전 과목을 다 잘할 수는 없되 보다 흥미로운 분야를 찾아 선하게 활용하도록 도울 책무가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막중한 사명이요 사역입니다. 만만찮은 조건을 극복하고 창조주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에 매진하시길 기도합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34호)에는 ‘사마리안에게 전한 사계 - 선한 마음의 겨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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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사마리안에게 전한 사계 ‘선한 마음의 가을’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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