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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일제강점기의 평택교육 ⑧’
작성일 : 20-10-16 14:21    
진청학원, 세교동으로 옮겨져 ‘평택중앙초등학교’ 전신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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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청학원 제1회 졸업 기념사진(1940.3) <출처 = 평택시사> 
 
◆ 학원 교육기관
 
1. 진청학원(振靑學院)
 
 진위지역 청년운동단체인 ‘진위청년회’가 1928년 5월 5일 문맹퇴치를 위해 청년회관 내에 ‘진청학원’을 설립했다. 진위청년회 회원으로 서울로 통학하던 박상만(朴商萬, 보성전문재학), 김준석(金俊錫, 양정고보 재학) 등 학생들이 직접 대패질과 톱질을 하고 회관을 개조해 교실을 만들었다.
 
 수업교사는 보성전문의 박상만, 경성제대 김귀갑, 양정고보 김준석, 배재고보 이기동, 제2고보 정진은, 휘문고보 유인갑이 있었고, 공무원과 일반인으로는 서상해·조종순·유병혁·이근안·이춘환·이기호 등이 있었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1933년 문을 닫았고, 1935년 4월 정경천(鄭敬天)이 노동으로 모은 50원과 김진만이 4원을 각각 기부했다.
 
 이후 이민훤(李敏煊)이 진청학원을 인수해 폐교 2년만인 1935년 5월 6일 다시 개교했다. 이날 김순이(金順伊)·정인창(鄭寅昌)·유치봉(劉致鳳) 등이 20원을 운영기금으로 기탁했고, 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 등 3개 지국 후원으로 소인극을 개최하기도 했다.
 
 ‘청주증익식산주식회사’에서 100원을, 오성면(오늘날의 안중읍) 차옥선이 5원을 기부했다. 이후 1937년 4월 운동장을 개설하고 재학생이 3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크게 발전했다. 진청학원장은 진위청년회 회장인 이민훤(李敏煊)이 맡았고 정인창·조봉행(趙鳳行)·박영환(朴永煥)·김영주(金永株) 등이 재정적인 후원을 뒷받침했다. 이후 이민훤이 사재를 들여 진위군 통복 5리에 7개의 교실을 건축했다. 2년제이던 학제를 1936년에 4년제로 전환하고 1940년에 6년제로 발전시켰다.
 
 진청학원은 학원장 이민훤이 운영비를 부담하고 김영보(金永普)가 운영해 1945년 8월 15일 민족해방 당시까지 존속했다. 1945년 4월 진청학원의 교사 일부를 이용해 ‘진청공립국민학교’가 개설됐다. 해방 직후 진청공립국민학교는 일본인 소학교를 접수해 이전했고, 진청학원 건물은 현재 ‘평택중앙초등학교’ 건물이 됐다. 그 후 진청공립국민학교는 시장 로타리(현재 통복동) 심상소학교가 있던 자리로 옮겼고, 다시 세교동으로 옮겨져 ‘평택중앙초등학교’ 전신이 됐다.
 
2. 신흥학원(新興學院)
 
 1931년 오성면 양교리 황로식이 신흥학원을 건립했다. 농어촌 아동들을 교육하다가 1943년 오성국민학교가 설립돼 자연히 폐교하게 됐다.
 
3. 중성학원(衆成學院)
 
 1932년 포승면 원정리의 양해동·김덕래·전규영 등이 포승면 원정리에 ‘중성학원’을 설립했다. 양해동은 당시 일본의 중앙대학 재학생으로 3천여 원을 투자해 학원을 설립했다. 1935년 5월 10일 간이학교로 바뀌었고 당시 3백여 명의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었다.
 
4. 서일학원(西一學院)
 
 1935년 숙성리 서병창이 ‘서일학원’을 설립했다. 처음에 4년제로 운영하다가 6년제로 바꾸었으며, 1941년 ‘오성초등학교’가 설립되면서 자연 통합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560호)에서는 ‘평택의 면 단위 공교육기관’이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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