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도두리, 근대 전후 형성... 1950~60년대 도두2리 형성

동창리, 조선 후기 평택현 지역 “1914년 부용면에 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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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 신축된 팽성읍사무소 전경

◆ 팽성읍(彭城邑) 도두리(棹頭里)

 근대 전후 도두리들 일부가 간척되면서 형성됐다. 지명은 바닷가를 향해 돛대처럼 길게 나와 있어 유래됐다. 1950~60년대를 거치며 도두2리가 형성됐고 미군기지 확장사업으로 도두2리가 폐동되면서 도두1리만 남았다.

1. 도두리: 조선시대 마을 입구 도장산 위에 돈두정이 있어 ‘돈두정리’라고 불렀던 것이 1914년 도두리로 바뀌었다.

2. 신흥: 도두2리의 자연지명. 일제강점기 암기원들이 간척되고 한국전쟁 뒤 도두리들이 간척되면서 모여든 사람들이 형성한 마을이다. 미군기지 확장사업으로 폐동됐다.

3. 공주촌: 도두2리의 다른 이름. 1960년대 도두리들이 간척되면서 충남 공주·청양의 빈농들이 이주해 마을을 형성했다. 현재 폐동됐다.

4. 암기원동네: 도두2리의 다른 이름.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 암기원이 간척한 암기원들에 마을이 형성돼서 유래됐다. 현재 폐동됐다.

5. 도장산: 마을입구에 있는 야트막한 봉우리. 조선시대에는 돈두정이라는 누정이 있었으며 해방 전후까지 엄나무 고목이 있어 주민들의 쉼터가 됐다.

6. 돈두암: 도당산 기슭에 있는 바위. 간척사업 전에는 바닷가에 우뚝 솟아 경관이 수려했지만 간척사업과 경지정리사업으로 흙 속에 묻혀 작은 바위로 변했다.

7. 도두리들: 도두리, 대추리, 신대리 일대에 걸쳐 있는 들판. 근대 전후 소규모로 간척됐으나 한국전쟁 뒤 피난민들과 빈농들의 노동력을 동원해 대규모 간척이 이뤄졌다.

◆ 팽성읍(彭城邑) 동창리(東倉里)

 조선 후기 평택현 서면지역. 1914년 부용면 동창리였다. 동창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평택현의 사창이 있었기 때문에 유래됐다.

1. 윗동네·아랫동내: 동창리의 자연마을. ‘새악씨동네’라고도 부른다.

2. 역당말: 원정리에서 동창리를 거쳐 내리로 넘어가는 고개.

3. 잿밭둑: 동창리에서 내리로 넘어 가는 고개. ‘백현’ 또는 ‘잣고개’라고도 부른다.

4. 사래물: 마을 남쪽 비행장 들어가는 철조망 부근의 지명.

5. 울찌니: 황새울 너머에 있는 들판 이름.

6. 홍짓물: 마을 남쪽 벌판에 있었던 웅덩이.

7. 동창리 줄다리기: 정월 대보름 풍년을 기원하며 동창리 마을회관 앞에서 거행됐던 놀이. 1980년대 초 중단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577호)에서는 ‘평택시 팽성읍 두리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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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팽성읍 도두리·동창리’ 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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