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조선시대 평택현 동면지역... 1914년 노련리와 와칠동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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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16년 신축된 팽성읍사무소 전경

◆ 팽성읍(彭城邑) 노와리(老瓦里)

 조선시대 평택현 동면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노련리와 와칠동을 통합해 노와리라고 했다. 해방 전후 노와3리 양천마을이 형성됐고, 한국전쟁 뒤 노와4리에 피난민촌이 형성되면서 현재는 4개 마을이 됐다.

1. 노와(老瓦): 1914년 이전 노련리(老連里)와 와야리를 통합하면서 두 마을에서 한 글자씩 취해 만든 지명.

2. 동면(東面): 노와1리의 자연지명. 평택현 동면(東面)의 중심마을이었다.

3. 안말·바깥말·넘말 : 동면마을의 산등성이를 기준으로 좌우, 너머에 위치한 마을.

4. 노련리(老連里):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이전 동면의 자연지명.

5. 왜골: 노와2리의 자연지명. ‘와야리’, ‘평택왜골’이라고도 한다. 옛날에 봉씨(奉氏)가 정착해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는 데서 유래됐다는 설과 기와를 굽던 가마가 있어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6. 양천(良川): 노와3리의 자연지명. ‘새동네’라고도 부른다. 일제강점기에는 5~6호의 작은 마을이었다가 물난리로 평궁2리 상평 마을의 주민들이 집단 이주하면서 마을이 커졌다.

7. 피난민촌: 노와4리의 자연지명. ‘수용소’, ‘포막’이라고도 한다. 한국전쟁 뒤 피난민들의 정착촌이었다.

8. 따비쟁이: 피난민촌 황무지의 옛 지명. 따비(농사기구)로 농사를 지었다고 해서 유래됐다.

9. 농장: 일제강점기 일본인 농장과 단무지 공장이 있던 곳이다.

10. 북망산: 동면마을 앞 평궁리 가는 길 중간에 있던 봉우리. 상례를 치를 때 상여가 넘나들던 산이었으며, 웅덩이로 된 큰 우물이 있어 노와리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다.

11. 새터말: 동면마을 동쪽 성환-아산 간 역로(驛路)가 지나는 길가에 있었던 옛 마을 터. 지금도 기와조각이 출토되는 등 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도둑이 많아 현재의 위치로 옮긴 뒤 폐동됐다 한다.

12. 큰샘: 동면에 있었던 마을 공동우물. 새벽에는 물이 넘칠 만큼 수량이 풍부하고 물맛이 좋았다. 정월에 샘제사(우물고사)를 드렸다.

13. 노와초등학교: 노와1리 동면에 설립된 초등학교. 부용초등학교 노와분교로 됐다가 2002년 폐교돼 경기도유아체험교육원으로 바뀌었다.

14. 소금장수길: 노와3리에서 둔포장을 보러 다녔던 길. 소사동 소새장도 다녔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575호)에서는 ‘평택시 팽성읍 대사리(大沙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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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팽성읍 노와리’ 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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