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조선시대에는 객사·상신대·하신대·대정·교촌으로 나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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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3월에 신축된 팽성읍행정복지센터 전경
 
◆ 팽성읍(彭城邑) 객사리(客舍里)
 
 팽성읍 객사리는 평택현의 읍치(邑治)였던 마을이다. 조선시대에는 객사·상신대·하신대·대정·교촌으로 나눠져 있었다. 1914년 객사리로 통합돼 부용면에 속했으며, 1934년 9월 부용면이 서면과 통합되면서 팽성면의 면소재지가 됐다.
 
◆ 객사리 각 지역 지명 설명
 
1. 객사(客舍): 조선시대 평택현의 공해 가운데 하나

2. 동촌(東村): 객사리가 2개 마을로 나뉘어져 있을 때 객사2리의 마을이름. 자연마을로는 새터·하신대·주막거리·대정촌이 있다.

3. 주막거리: 동촌의 다른 이름. 성환찰방에서 충청도 보령시 오천의 충청수영으로 연결된 역로(驛路)가 지나가던 길목에 주막이 있어 유래됐다.

4. 서촌(西村): 객사리가 2개 마을로 나뉘어져 있을 때 객사3리의 이름. 자연마을로 연못뚝과 향교말이 있다.

5. 새터말: 객사1리의 자연마을로 자비사 주변의 마을이다. 본래는 상신다리 또는 상신대로 불렸지만 지금은 신대 또는 새터말로 부르고 있다.

6. 상신대: 객사리에 새로 형성된 마을로 상신다리라고도 부른다. 1789년 호구총수가 작성될 때는 신대리였다가 19세기 후반에 마을이 커지면서 상신대와 하신대로 구분됐다.

7. 하신대: 새터말 옆에 형성된 마을로 하신다리라고도 부른다. 19세기 후반 신대리에서 분리됐다.

8. 대정(大井): 객사4리의 자연지명으로 큰 우물이 있었다.

9. 연못(뚝): 객사4리의 자연지명으로 대정마을과 향교말 사이에 있었던 마을.

10. 향교말: 객사5리의 마을. 향교 아래에 있어 ‘교촌(校村)’ 또는 ‘향교말’, ‘향촌(鄕村)’이라 했다.

11. 성바께: 평택현 관아를 둘러싼 읍성(邑城) 북쪽이었다.

12. 부용산: 조선시대 평택현의 주산(主山). 안성천이 휘돌아 흐르는 곳에 위치한 모습이 부용(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습과 같다는 데서 유래됐다. 해평 윤씨(윤보선 씨 집안) 가문이 소유하면서 윤씨 가문의 선산으로 유지되다가 평택시가 단계적으로 매입해 시민공원으로 만들고 있다.

13. 천덕산: 객사1리 망한사(자비사) 뒤에 있었던 산. 1990년대 중반 공군아파트와 중앙아파트 등을 건설하면서 없어졌다.

14. 망한사터: 객사1리 주막거리에 있는 대한 조계종 용주사의 말사인 자비사의 옛 이름. 신라 말 당나라에서 건너오던 배가 좌초해 표류하다가 팽성읍에 당도했던 선원들이 고향을 그리며 세운 사찰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15. 어걱다리: ‘구억다리’라고도 한다. 망한사(자비사) 앞에 있었던 다리로 중국 사람이 언제 건너야할지 몰라 망설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6. 피망다리 : 객사리와 평궁리 사이 중간에 있는 다리.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571호)에서는 ‘평택시 팽성읍 근내리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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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시 팽성읍 객사리’ 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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