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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치기와 의기 ‘깨닫고 보는 분투기’ <하>
작성일 : 19-11-14 14:39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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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잘못도 없이 석연찮게 매질을 당한 트라우마였는지 불현듯 용솟음치는 노기를 좀처럼 다스리지 못할 때였다. 비록 한두 번이로되 수화기를 붙잡고 여과 없이 막말을 내뱉은 적이 있었다. 피폐한 나를 대놓고 괴롭히던 자를 향한 미움의 발동이었다. 이리 뒹굴고 저리 부딪히던 심령이 유약해진 끝에 강퍅해진 증거였을 게다. 미처 삭이지 못한 병증이야말로 복음이 희미해질 대로 희미해진 연고로 보기에 이런 기록 또한 가능하리라. 상대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곧 분별은 하되 함부로 판단치 말라(롬14:13)는 말씀을 거스른 대가였다.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아간 탓이었다. 요즘은 순간 욱하는 분기 대신 차분한 의분을 품으려 의식하며 애를 쓴다. 예수님을 오롯이 나의 주인으로 모시면서부터 받은 은총이다. 이제야 겨우 영적으로 철이 들었다는 얘기다. 정리하면 툭하면 치기가 혈기가 되어 의기를 잃어버린 참이었다.
 
 기차를 타고 무작정 집을 나선 적이 있었다. 가엽게도 대입시험에 응시조차 못 하던 딱한 처지였다. 가벼운 노자는 고대 떨어졌다. 내린 데는 전라도 땅이었다. 인적 없는 백양사로 들어가 흰 눈 덮인 절터를 터벅터벅 걷다가 돌아섰다. 한번은 대전 쪽으로 갔다. 돌아갈 차비가 모자랐다. 파출소가 보이기에 들어갔다. 대학생이라고 둘러댔다. 통금을 피해 하룻밤 자고 갈 심산이었는데 어쩌면 차표를 끊어줄 것 같았다. 같잖은 일장 훈계를 듣고 동전 몇 닢을 받아 천안에 내렸다. 얼마 전 머리를 깎은 친구를 찾았다. 오밤중인지라 좀체 기척이 없었다. 그래도 담장을 뛰어넘긴 싫었다. 벌벌 한참을 떤 끝에 기어들어가다시피 했다. 하도 배가 고파 라면국물로 빈속을 덥히고서야 잠자리에 누웠다. 영적 허기를 이기지 못한 채 짙은 치기를 드러내던 시절의 기약 없는 배회였다. 늦었지만 산사에 들어가 시를 쓰던 벗을 만나면 대뜸 복음을 꺼내놓고 이건 한사코 의기라고 우길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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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전셋집을 전전하던 때였다. 치솟는 집값으로 인해 내쫓기다시피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옮겨야 했다. 위층 집주인 부부의 눈길은 표독스러웠다. 고장난 보일러를 고쳐주지 않아 한겨울 냉골에서 처자식과 덜덜 떤 적도 있었다. 떠날 때까지 내내 꽤나 애를 먹였다. 드디어 이사날짜를 잡았다. 짐을 다 싣기까지 들어올 사람이 오질 않았다. 봇짐을 푼 집은 엉망이었다. 물기가 외벽을 타고 도배지에 스며들었다. 거처는 비좁았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이래저래 떠돌이신세를 면치 못하던 처지였다. 나올 때 본의 아니게 치를 차액 전기세를 떠넘긴 채 떠났다. 저쪽이 먼저 약속을 어겨서였다. 돌이켜보니 객기였다. 채무와 괘씸함을 혼동한 치기였다. 곤핍한 영혼의 의기마저 사악한 기운으로 번진 변고였다. 나란 사람은 늘 세금 고지서를 볼라치면 앞당겨 내고나서야 맘이 편해지는데 말이다.
 
 으슥한 뒷동산 한쪽에 자리한 무당 굿터를 어지럽히곤 했다. 그러나 의기를 자처해 벌인 일련의 행위는 섣부른 치기였다. 그로 인해 오른손가락에 한 점 흉터를 불렀다. 생나무에 칭칭 감은 오방색을 태우려다 촛농이 떨어져 살갗을 녹이고 말았다. 한번은 하나님 말씀을 정성껏 프린트하여 여봐란 듯이 여기저기 붙여놓았다. 그걸 필시 전도라고 생각했는데 의로운 선포는 아니었다. 연신 빌어대는 샘물에다 재를 뿌려대곤 했는데 비릿한 치기였다. 우상 제단을 흐트러뜨리는 게 옳다고 여겼는데 해맑은 의기는 아니었다. 돌이켜보매 굿을 생계로 삼는 무속인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던 거다. 아무튼 한때는 이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한 일들을 심심 찮게 저지르고 다녔다. 여태껏 의에 대해 온전히 깨닫지 못했다면 엇비슷한 유의 일을 거듭할는지도 모른다. 실로 끔찍한 일이다.
 
 멀찌감치 뒤돌아보니 의기와 치기는 한 지붕 두 가족이다. 서로들 의기투합하자며 한솥밥을 먹으니 말이다. 나야말로 치기어린 의기에 오랜 세월 시달린 참이다. 감추고 싶은 인생의 어떤 모습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죄다 구세주이신 예수님 곁을 떠나 살아온 생채기요 갈팡질팡한 발자취에 지나지 않았다. 전도서(12:13-14)의 말씀처럼 일의 결국을 다 듣고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지 못한 연고였다. 무릇 사람의 본분을 알고 난 뒤 헤아리니 때를 따라 눈감아주신 은혜였다. 결국 선하지 않은 의기는 악하지 않은 치기일망정 정녕 정의로움은 아닌 게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 프로필
 
국어를 가르치는 문인(수필가: 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시인: 창조문학 천료), 교사로서 신앙산문집, 수필집, 시조집, 시편집, 기행집 등의 문집을 펴냄.
- 블로그 -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0년째 연재 중
 
※ 다음호(520호)에는 “도서관으로 초대함”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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