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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해미읍성에서 안면도까지 ‘솔뫼성지가 남긴 것’ <1회>
작성일 : 19-08-31 14:43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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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운 날씨를 피하느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개학 전 자투리 시공을 알차게 이용하려는 계획이었다. 하루해를 빌려 서해안 일대를 둘러보기 위해서. 모처럼 바람을 쏘일 겸 푸짐한 도시락을 챙겨든 채 홀가분하게 출발! 학기말은 칙칙한 장마 끝자락이어서 식구들의 표정 또한 유난히 밝았다. 오늘 계획은 꽤나 여러 군데. 들르기로 한 곳만 해도 족히 대여섯 곳을 넘는다. 고즈넉한 해미읍성에서부터 안면도에 이르는 여정. 물론 우리가 사는 데가 평택이기에 가능한 코스다. 그도 그럴 것이 기다란 서해대교가 가로놓인 뒤로는 꼭두새벽부터 부산을 떨지 않아도 여유로울 만큼 이동 거리가 좁혀졌다.
 
 오늘 일정을 대강 살펴보면 역사책마다 꼬박꼬박 등장하는 국보 마애삼존석불을 보고, 푸르른 초원의 대명사인 서산목장을 감상한 다음, 백제 의자왕 때 지은 옛 절터를 거쳐, 일대 장관으로 소문난 철새도래지까지 아주 욕심껏 시간표를 짰다. 뿐만 아니라 가는 길목에 위치한 영락원도 둘러볼 참이다. 언뜻 이름을 들으면 살짝 고개를 갸우뚱할 테지만 그곳은 나환자 정착촌을 가리킨다. 거기에 들러 한때 곤비하던 시절의 희미한 추억을 되살려볼 요량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드라이브 삼아 대호방조제를 가벼이 달려볼 거라고 당차게 마음을 먹으니 새삼 가장의 어깨가 두 배는 더 무거워진 느낌이다.
 
 아무튼 꽉 짜인 일상에서 벗어나면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 학창시절 즐겨 부르던 ‘언덕 위의 집’을 들으며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았다. 자동차를 모는 곳은 서해안 쪽. 알찬 여정을 위해 일찌감치 서둘러 나온 탓인지 아이들은 졸음을 참지 못하고 연신 하품을 해댔다. 하긴 등교할 때를 생각하면 그렇게 이른 시각은 아니었지만 어디 게으른 버릇이란 게 보통은 그렇지 않은가? 상황에 따라 좀 더 자자 좀 더 눕자고 되뇌며 아예 일어나기를 싫어하니 내뱉는 말이다. 방금 전 당진에 접어들어서는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뒷자리에 벌렁 누워버렸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게 눈꺼풀이고 가장 참기 어려운 게 졸음이라더니 맞는 말인가 보다.
 
 언뜻 스치는 간판이 있어 아내에게 물었다. 말로만 듣던 ‘솔뫼성지'였다. 아이들 잠도 깨울 겸 방앗간 곁을 지나는 참새인 양 냅다 거기로 핸들을 꺾었다. 수십 그루의 소나무에 둘러싸인 피정의 집. 하지만 그때만 해도 커다란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해 있을 뿐 별다른 조경이랄 것조차 없었다. 전시물들을 둘러보니 갖가지 조잡한 성물들로 가득했다. 조선말 척박한 땅에서 그리도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지키다 결국 순교를 택했던 곳이다. 생목숨이 찢겨나간 피어린 흔적. 장황한 자랑이로되 그 사실은 진실에 가까웠다. 자손대대에 걸쳐 조상신을 섬기다 말고 어느 날 갑자기 천주님을 믿는다며 제사를 거부한 이들에게 돌아온 형벌은 응당 죽음이었다.
 
 돌이켜보면 한국 천주교는 참으로 독특한 전파 경로를 거쳤다. 중국 무역상을 통해 들어온 서책이 바로 성경이었던 거다. 말하자면 거지반은 자생적으로 하늘나라의 교리를 깨우친 터였다. 따라서 우리네 초창기 가톨릭은 그야말로 말씀이 펄펄 살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성당은 과연 무얼 믿고 다니는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아까운 목숨을 담보로 지켜온 믿음은 어디로 가고 일순간에 처참하리만치 무너져버린 현실이 안타깝다. 그 기점은 1962년 제2회 바티칸공의회였다. 한국의 제사를 문화로 규정하고 전면 허용한데 이어 예수그리스도가 아니어도 구원이 있다고 선포한 자리였다. 이른바 종교다원주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 망발이었다. “콧대 높은 로마교황청 양반들이여! 큰소리로 묻노니, 당신네들은 무슨 근거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에게도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하신 제2계명을 앞장서 송두리째 깨버렸는지 밝히시오?” 첨언하면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성지는 없다. 삼위의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있을 뿐이다. 그 성도가 밟은 땅이 성지라면 성지인 터다.
 

■ 프로필
 
 국어를 가르치는 문인(수필가: 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시인: 창조문학 천료), 교사로서 신앙산문집, 수필집, 시조집, 시편집, 기행집 등의 문집을 펴냄.
- 블로그 -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0년째 연재 중
 
※ 다음호(510호)에는 해미읍성에서 안면도까지 ‘산지를 덮은 대초원’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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