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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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행은 항저우의 서호 대신 동리(同里, 토웅리)를 보기로 했다. 가이드는 280km나 되는 눈길을 헤치고 가봤자 호수는 꽁꽁 얼어있을 거라면서 눈[眼] 관광, 즉 눈[雪]으로 뒤덮인 풍경은 별반 볼 게 없다고 강조했다. 아닌 게 아니라 설경에 취하다보니 졸음이 몰려왔다. 아들과 대화할 호기였다. 아비로서 그간 많이 챙기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니, 전연 아니라고 감사를 표하면서 교직과 복수전공에 ROTC과정을 동시에 이수하느라 시간 자체가 없지 않았느냐며 반문했다. 다만 대학 2학년 여름방학을 허송한 건 두고두고 후회되는 실수였단다. 특히 영어에 주눅이 들어 여태 문리를 트지 못했다는 말이 가시처럼 걸렸다. 바로 이 부분이 부모로서 너무 태연하게 대처하지 않았나하고 자성하는 점이다. 남들은 일찌감치 영어학원이다 어학연수다 극성을 부릴 때 어릴 적엔 실컷 놀리는 편이 미래를 위해 오히려 낫다고 방심한 건 아니었을까 뒤돌아본 터였다. 그러나 가정교육의 요체는 신앙이고 정신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확고하고 장래를 보는 혜안을 갖춘다면 옳은 방향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버스는 湖州(호주) 쪽 톨게이트로 접어들었다. 편도 3차선이 1차선이 되는 지점. 차들은 여전히 서행이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등변 삼각형의 전나무. 철지난 크리스마스트리가 떠올랐다. 잎들을 잃은 가로수의 앙상한 가지마다 부러질 만큼 흰 눈이 쌓여있었다. 서두른 지 두 시간여 만에 당도한 목적지. ‘금명산(金明山)유한공사’를 알리는 입간판을 보고 내렸다. 살갗에 와 닿는 온기는 훈훈한 편. 古鎭景点(고진경점)의 유람권(TICKET FOR TOURING AT HISTORIC TOWN)을 받아들고 주어진 50분을 최대한 쓰기로 했다. 과거 한때는 ‘복지’로 불렸다는 ‘동리’. 둥그런 물길을 따라 차례차례 훑었다. 중국 강남의 여러 수향(水鄕) 중 하나로 인구 55,000명의 고을이지만 400년 이상 묵은 건물이 즐비했다. 태호(太湖) 기슭에 자리한 진주탑을 필두로 천방루, 이화당, 종본당, 먹을거리 장터에 재현한 대장간까지 볼 곳이 많았다. 사본교(思本橋)를 건너니 人民家屋(인민가옥). 그 문패를 보고 독음하니 신기하다는 듯이 한 남정네가 그대로 따라했다. 한자어를 차용한 뒤 발음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오염된 물길에는 까닭이 있었다. 오랜 가뭄이 주요인이로되 그 물에 걸레를 빨고, 심지어는 물고기 내장을 내다버리는 악순환이 안타까웠다. 특별히 퇴사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의 품격이 있었다. 낙향한 권세가 임란생(任兰生)의 집이었다. 눈동자에 박힌 곳은 천주당 건물. 원래는 천 년 역사의 도읍이었는데, 1992년에서야 중국역사문화도시로 발돋움하며 세계문화유전으로 인정받았단다. 강남 6대 수향 가운데 동리(同里)를 뺀 주장(周庄), 록직(甪直), 남심(南浔), 서당(西塘), 오진(乌镇) 등은 차근차근 둘러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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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해로 돌아오는 길, 동리를 막 벗어났을 때 경찰이 차를 세웠다. 타지에서 온 차량은 검문을 거친다고 했다. 아무리 가도 휴게소는 없었다. 그렇다면 고속도로상에서 볼일은 어떻게 하나? 유심히 보니 제한속도가 각기 달랐다. 자가용은 120, 버스는 100, 화물차는 90, 최하는 60km로 적혀있었다. 어느덧 요금소였다. 버스가 도심에 접어들면서 가이드는 다시금 입심을 자랑했다. 자신은 3개 국어를 한단다. 곧 중국어, 한국어, 영어인데 막상 여기서 쓰는 광둥어는 모르고 북경어를 안다고 했다. 중국어 사투리는 대략 88개, 거기에 각 부족언어까지 더하면 아마 수백, 수천을 헤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켄트니스 어(홍콩의 공용어이기도 한 광둥어의 다른 이름)의 욕설만은 잘 알아듣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가이드의 말처럼 광활한 대륙에 사는 사람이 대충 13억이라지만 부정확한 인구센서스를 액면 그대로 믿기도 어렵거니와, 무호적자가 많은 현지사정을 감안한다면 족히 15억도 넘을 거라는 추측은 결코 허사가 아닌 터다. 때문에 개개인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기조차 힘든 상황을 호소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구소련에서 보듯이 중국의 미래는 필연적으로 분열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는 소수민족의 독립요구를 언제까지 탄압할 참인가?
 
 
■ 프로필
 
 국어를 가르치는 문인(수필가: 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시인: 창조문학 천료), 교사로서 신앙산문집, 수필집, 시조집, 시편집, 기행집 등의 문집을 펴냄.
- 블로그 -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0년째 연재 중
 
※ 다음호(502호)에는 중국 상하이 기행록 다섯 번째 이야기 ‘인상적인 남경로 산책’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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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상해의 포효 ‘동리의 수더분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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