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3월에 접어들면서 박새, 딱새, 노랑턱멧새, 밀화부리의 구애 노랫소리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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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 평택자연연구소 소장

배다리습지와 배다리마을숲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수많은 동·식물은 자연에서 터득한 순리를 따라서 나름의 삶을 이어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환경 속에서 겨울을 난다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림을 자연스럽게 몸에 담아온지라 혹독한 겨울이었을지라도 봄이 오면 새싹과 꽃을 내고 열매를 맺음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한껏 자랑하게 된다. ‘어떤 무엇인가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 즉 ‘기다림’ 같은 자연에서 배우는 지혜 몇을 배다리 생태공원에서 찾아 함께 나눠본다.


◆ 때를 기다려 수액을 찾는 야생조류


지난겨울 배다리생태공원에서 터 잡고 살아왔던 야생조류 중에 직박구리만큼 바빴던 친구는 없었을 것이다. 겨울 초입까지 남아 있는 나무 열매 중 직박구리의 시야를 벗어난 열매는 없었다. 보석 같은 좀작살나무의 보라색 열매로부터 빨갛게 익은 산수유와 꽃사과나무의 열매 그리고 시고 짠맛이 나는 붉나무의 열매와 늦게까지 열매를 떨구지 않았던 아그배나무의 넉넉한 열매에 이르기까지 직박구리는 그 누구보다도 최고의 먹방을 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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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나뭇과 복자기나무에서 수액을 먹는 직박구리 (2013.1.12)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직박구리와 함께 주변 야생조류는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기다림은 참고 견디며 이겨내는 것으로 그들의 생존과 성장의 기저에는 오랫동안 이어지는 기다림의 미학이 존재한다. 최근 몇 차례 복자기의 나뭇가지 틈새 혹은 줄기의 상처 부분에서 흘러내리는 수액에 큰 관심을 두고 다가서는 야생조류 몇을 관찰하였다. 봄이 오기 직전까지 때를 기다리는 것은 물론이고 당분 및 무기 성분을 다량 함유한 단풍나뭇과에 속한 나무를 어떻게 알았는지, 나뭇가지와 나무껍질을 통해 한동안 수액을 먹고 있는 숙달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먹이 욕심이 넘치는 새를 넘어 호기심과 적응력을 통해 주변 환경은 물론이고 기후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체하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야생조류의 특성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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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나뭇과 복자기나무에서 수액을 먹는 오목눈이 (2013.2.23)

 

직박구리의 이러한 노력은 마치 전염병처럼 옮겨져 오목눈이와 박새 그리고 쇠박새에게 전해져 수액이 터지는 시기엔 여러 종이 수시로 찾아들어 목마름과 주린 배를 채우곤 한다. 봄이 오기 전 2월 중순이 되면 배다리생태공원의 직박구리와 오목눈이, 박새와 쇠박새 등이 복자기나무에 매달려 수액을 빠는 진기한 모습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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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러밍에 적합한 나무를 골라 나무를 두드리는 청딱따구리(2022.4.7)

 

◆ 청딱따구리의 드러밍(Drumming) 속에 담긴 지혜


배다리마을숲에 찾아오는 봄은 새들이 내는 소리로부터 알 수 있다. 겨울의 끄트머리에 있는 2월 말이면 멧비둘기의 구애 소리로 시작해 3월에 접어들면서 박새, 딱새, 노랑턱멧새, 밀화부리 등의 암컷을 염두에 둔 노랫소리가 이어지고 수다쟁이 새로 소문난 직박구리조차도 짧고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 길게 이어지는 노랫소리로 바뀐다. 이른바 봄이 시작된 것이다.


배다리마을숲에 들어서는 산책로 입구에는 야간출입 통제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고 “이곳은 원형보존림 내 야생동물 이동통로입니다. 야간에는 생태보호 및 이용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출입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안내 글이 적혀있는데, 실제 이곳은 면적이 작고 생물다양성이 크지 않은 곳이지만 청딱따구리와 오색딱따구리의 번식지로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작년에도 이들의 번식이 있었고 새끼들의 이소 또한 성공적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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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따구리의 번식터전 배다리마을숲(2022.4.11)

 

3월을 시작하면서 U-city 통합관제센터 뒤편에 자리를 잡은 원형보존림에서 딱따구리 몇 종이 나무를 두드리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두드리는 것은 나무를 쪼아 나무껍질 안에 숨어있는 먹이를 찾고자 함이고,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를 통해 경쟁자에게는 영역을 알리고, 암컷에게는 구애에 대한 의사전달을 주기 위함이며, 궁극적으로는 번식을 위한 둥지를 만들기 위함이다.


배다리마을숲에서 자리를 잡은 딱따구리 가족은 작은 크기의 쇠딱따구리와 중간 크기의 청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모두 세 종으로, 이 중 번식기를 맞으면서 산책에 나선 주민들의 가장 관심을 끄는 종이 있다면 바로 청딱따구리이다. 쇠딱따구리와 오색딱따구리 모두 나름의 독특한 소리를 갖고 있지만, 청딱따구리만큼 소리의 효율성을 높이지는 못한다. 청딱따구리는 ‘뾰, 뾰, 뾰’하고 짧게 울기도 하지만 번식기에는 점점 낮아지는 소리로 ‘히요, 히요, 히요, 히요’하고 반복하여 맑은소리로 마을숲 전체를 진동시킨다. 청딱따구리만의 전략이 있다면 두드림만으로도 상대에게 의사전달을 하는 종에 비해 짧고, 강하며, 반복적인 독특한 소리를 통해 정확한 메시지 전달과 함께 한 번 더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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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조류가 즐겨 찾는 복자기나무 수피에 흐르는 수액(2023.2.26)

 

특히, 청딱따구리의 드러밍에는 나름의 경험과 지혜가 포함되어 있다. 경쟁자에게는 자기 영역을 주장하고, 암컷에게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전하는 목적의 드러밍은 소리가 크고 정확해야 멀리 떨어져 있어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데, 드러밍을 내는 나무의 선택에 청딱따구리만의 지혜가 담겨 있다. 살아있는 나무보다는 죽은 나무를, 너무 굵거나 가늘기보다는 적당한 굵기의 나무로, 속이 꽉 차기보다는 울림을 위해 속이 빈 나무를 선택해 소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러한 청딱따구리의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는 은사시나무숲을 넘어 배다리마을까지도 그 소리가 전해질 정도이다.


딱따구리의 생체량이 클수록 드러밍 시간이 길고, 두드림 회수 또한 많은 편인데, 스스로의 신체적 조건과 효율성까지도 충분히 활용하는 청딱따구리만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독특한 전략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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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의 평택의 자연] 배다리 자연에서 배우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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