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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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어느 날인가 저녁나절에 있었던 일이다. 빌딩 고층에서 바라본 노을이 너무 황홀했다. 연분홍빛을 띤 솜털 구름이 하늘을 수놓았다. 구름 사이로 붉게 타오르는 해는 중천에 머물 때와는 달리 강렬한 빛으로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노년기를 이렇게 물들일 수 있을까? 노년의 삶이 황홀한 노을처럼 될 수 있을까? 인간 발달의 여정을 출생,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나눈다. 노년기를 세분화해서 Young-old(65-75세), Middle-old(75-85세), Old-old(85세 이상)라고 한다. 


사회복지 학자들이 보는 한국 사회 노인 문제는 病苦(건강문제), 貧苦(빈곤문제), 無爲苦(역할상실문제), 孤獨苦(소외와 고립문제) 등 4고(苦)라고 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는 노년기를 살려면 개인적인 준비와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먼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회복지제도가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 특히 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서비스가 자리 잡혀야 한다. 그런데 동시에 중요한 것은 은퇴 후 새로운 직업을 준비하고, 여가시간을 설계하는 등 개인적 준비가 필히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건강을 위한 체계적인 관리와 다른 사람과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 소통 디자인을 잘해야 한다. 더 나아가 웰다잉(Well-dying, 좋은 죽음) 준비도 있어야 한다. 최근 필자는 ‘죽음 준비학교’를 수료했다. 필자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등록해 5주간 수강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저자인 인도계 미국인 아툴 가완디(Atul Gawande)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죽음’을 미루는 데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어떤 노을을 그릴 것인가? 아름다운 마무리가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든다. 15~16세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잘 보낸 하루가 잠을 가져오듯이 잘 산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라고 했다.


‘죽음의 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우리는 품격 있는 죽음을 맞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죽음을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노아(Noah)는 맡겨진 소명, 즉 대홍수에서 가족을 구원했다. 그 후 노년을 맞아 ‘자유’를 하나님의 선물로 받았다. 아담의 죄로 인해 수치를 가리던 옷을 집어 던지고 술을 즐기는 여유를 즐겼다. 이건 생각하기에 따라 노아에게 주신 은혜가 아닐까? 순종에 대한 보상으로 죄로부터 자유함을 주신 게 아닐까?


그런데 망령 난 노인이라고 욕하던 아들은 자손 대대로 자유를 박탈당하고 형제들의 종이 되는 벌을 받았다. 노아는 추태를 부린 것이 아니라 노년에 ‘자유’를 만끽했다. 그렇게 노을을 물들였다. 당신의 노을은 어떻게 물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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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노인과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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