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군인황제시대 거치며 인플레이션 파고 맞아... 과거 영광 뒤로 한 채 몰락해

로마 제국과 같이 급격한 인플레이션 통제 못할 경우 그 피해와 파급 효과 작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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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

강대국의 표본이자 한때 지중해를 내해로 만들었던 로마 제국, 그 강함이 영원할 것 같았지만 3세기의 위기 속에 로마 제국은 점차 그 힘을 잃어갔다. 그 이유는 황제의 권위 상실과 인플레이션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전까지 로마의 황제는 원로원과 시민, 군인의 승인을 얻어야만 획득할 수 있는 지위였다. 여기에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핏줄을 이은 정통성을 더하고자 했고, 그렇게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가 이어졌다. 이후 핏줄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원로원과 시민, 군인의 승인을 얻어야만 황제의 지위가 주어진 건 변함이 없었다. 


로마의 황제는 표면적으로 총사령관을 뜻하는 임페라토르(imperator)이자 공화정 내 1인자의 의미를 가진 프린켑스(princeps)였을 뿐, 전제 군주는 아니었다. 따라서 이 시기 로마의 황제는 원로원과 시민, 군대의 지지를 얻어야 했기에, 빵과 서커스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군인황제시대가 시작되면서 황제의 자리는 군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군인들의 결정에 원로원은 추인의 역할에 머물렀고, 황제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때문에 긴축재정을 하거나 굴욕적인 강화회담이라도 있을 경우 그동안의 처우에 대한 불만과 함께 내란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실제 군인황제시대의 황제들은 자연사한 경우가 극히 드물고, 대개 암살의 수단으로 교체되었다. 그렇게 군인황제시대에 제 명에 죽은 황제는 찾기가 어려웠고, 대개 암살이라는 수단으로 비명횡사해야 했다. 이러다 보니 황제들은 군인들의 눈치를 봐야 했고,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보너스를 하사해야 했다. 여기서 말하는 보너스란 당연히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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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123년 M. Fannius에 의해 발행된 데나리우스 은화

 

이 시기 로마의 기축 통화는 성경에도 등장하는 데나리우스(Denarius)였다. 공화정을 시작으로, 로마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오현제 시기까지 데나리우스의 은 함유량은 일부 떨어지긴 했어도 안정적인 가치가 유지되었다. 하지만 카라칼라(Caracalla) 황제 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카라칼라 황제의 치세 기간 중 통화량의 팽창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당시 데나리우스의 두 배 가치를 지닌 안토니니니아누스(Antoninianus) 은화를 발행했다. 그런데 새로 발행된 은화는 함유량이 절반이 넘는 수준이었으나 명목상의 가치는 데나리우스의 두 배였다. 이러면 화폐 발행량이 늘어나는 만큼 인플레이션은 피할 수가 없었다. 또한 260년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전쟁 중에 포로로 잡히는 사건이 발생하며, 로마 제국은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 제국으로 분리되는 이른바 로마판 삼국시대가 펼쳐지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화폐 가치의 하락과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었다.


그 결과 갈리에누스 황제시기에 이르면 안토니니아누스의 은 함유량은 6% 이하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건 은화라고 부를 수도 없는 악화였다. 로마제국의 초기만 해도 데나리우스와 그 밖에 동화만으로도 충분히 경제생활의 영위가 가능했다면 이 무렵에는 안토니니아누스 은화(?)를 왕창 가지고 가야 할 정도로 그 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졌다. 또한 제국 내 은 광산이 무한한 것도 아닌 만큼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여서 은을 유입시킬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 이기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지거나 전쟁이 길어지면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했다. 때문에 로마 제국은 군인황제시대를 거치며 인플레이션의 파고를 그대로 맞았고, 그 결과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몰락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면 나라의 안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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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푸스 1세의 안토니니아누스 은화, 은 함유량이 50%를 넘어 은화의 형태는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데나리우스에 비해 은 함유량은 적으면서 명목상의 가치는 두 배에 해당했으니, 늘어난 화폐 발행량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었다.

 

최근 제롬 헤이든 파월(Jerome Hayden Powell)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의 거듭된 금리 인상 기조가 눈에 띈다. 6월과 7월 연이어 0.75%를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파월 의장이 내놓은 해결책은 과거 폴 볼커가 그랬던 것처럼 지속적인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가령 1년 전 정책 금리인 보금자리론 대출을 2.95%(30년)를 받았다면, 지금은 무려 4.80%(30년)로 폭등했다. 이렇게 되면 대출의 수요와 증가가 억제되고,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유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너무 많은 돈이 풀려 화폐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면 당연히 물가는 상승할 수밖에 없고, 늘어난 화폐 발행은 필연적으로 부동산과 주식, 가상화폐 등으로 몰려들며 버블을 키우는 기제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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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리에누스 황제의 안토니니아누스 은화, 말만 은화지 사실상 동화나 다를 바 없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실책 중 하나인 부동산 가격 폭등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의 두려움을 파고들며 역대급 인상을 보여줬다. 하지만 버블은 언제가 터지는 법, 지나친 물가 상승 속에 이를 억제하기 위한 카드로 금리 인상을 선택했고, 이는 달러 가치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지금 달러를 사려면 1달러에 1,300원은 기본으로 삼아야 할 만큼 높아진 환율을 실감할 수 있다. 그 결과 가상화폐 시장의 폭락과 주식, 부동산 등의 연쇄 하락이 예고되며, 많은 전문가들이 경기 침체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통화량 팽창과 인플레이션의 안정적 관리는 경제의 체급과 규모를 키우는데 필요한 요소이지만,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 그 피해와 파급 효과는 결코 작지 않음을 우리는 로마 제국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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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의 역사에서 배우는 지혜] 인플레이션이 집어 삼킨 로마 제국, 역사는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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