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1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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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초등학교 옆길을 산책하다가 운동장에서 달리기하는 아이들을 보며 괜히 울컥했다. 이 얼마나 평화롭고 풍요로운 그림인가. 


선생님께서 자기 반 아이들을 길게 한 줄로 세우고 “준비~ 땅!”을 외친다. 아이들은 다 함께 건너편 축구 골대를 향해 함성을 지르며 달아난다.


학교 운동장엔 모두의 추억이 숨겨져 있다. 매주 한 번씩 전교생이 모여 교장 선생님의 길고 지루한 훈화를 들었다. 운동회 날은 어김없이 만국기가 운동장 하늘을 덮었고 축제 한마당이 펼쳐졌다.


학년별로 오랜 시간 연습한 매스게임 발표가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집단 체조를 했고 여자아이들은 한복을 입고 집단 무용을 했다. 아마 댕기머리도 했을게다.


같은 반 아이들도 청백 군으로 갈라져 자기편을 위해 각종 청백전에 뛰었다. 한 경기가 끝날 때마다 점수가 게시판에 올라가면 아이들의 탄성과 환호성이 운동장을 가득 매웠다.


무엇보다 오전 경기를 마칠 때는 줄다리기를 했다. 6학년 경기지만 전교생은 운동장이 떠나갈 듯이 응원 소리를 질러대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오후 경기 마지막엔 언제나 각 학년 달리기 대표 선수들이 나와 릴레이 경기를 했다. 기억 컨대 이 경기로 전체 경기 총점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응원 소리는 절정에 다다랐다. 


필자는 6학년 마지막 운동회 때, 백군 릴레이 선수 마지막 주자였다. 청군 마지막 주자는 같은 반 친군데 육상 선수였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바통터치를 하고 나에게 바통이 넘어왔다. 백군이 조금 앞서 있었는데 청군 선수가 나를 손으로 밀치는 바람에 나는 나가 떨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아이도 넘어져 일어서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달려와 둘을 부축해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하게 했다. 동점으로 끝난 것이었다. 그러나 총점 결과는 이기고 있던 우리 편 백군이 이겼다. 아, 그 감격!


초등학교 시절은 모두가 가난했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그랬다. 도시락은 으레 꽁보리밥에 김치 반찬 하나였다. 도시락을 못 싸오는 친구를 위해 우린 도시락을 돌아가면서 나누어 먹었다.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에 나가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여러 가지 놀이를 했다. 여자아이들은 고무줄을 하는데 옆에서 노래를 불러주면 박자를 맞춰 춤추며 고무줄을 넘었다. 개구쟁이 남자아이들은 연필깎이 칼로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기도 했다.


한국동란 중에 태어나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우리 세대들, 언제나 현재에 감사하고 늘 감격해 한다. 군사정권 시절을 극복하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룬 세대였기에.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기만 해도 옛 추억과 현재가 오버랩 되면서 감회가 새롭다.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 부모 세대는 전쟁 후 베이비 붐을 일으켰다. 우리 큰이모님은 아들만 일곱을 낳아 동네의 부러움을 샀다.


우리 부모님은 해방둥이 장녀를 맏이로 낳은 후 아래로 아들만 넷을 더 낳았고 나중에 누나가 시집가자 곧바로 6살 내기 여동생을 입양했다. 부모님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단한 분들이긴 했다.


다시 가정의 소중함, 자손의 귀중함을 일깨워주고 싶다. 가족을 통해 누리는 행복이 무엇보다도 깊고 애틋하다. 아이들이 자라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며 추억을 만든다. 아이들이 부모 세대가 되고 또 그 부모 세대가 아이들을 낳아 기른다. 


초등학교 운동장 남쪽에는 전봇대 두 개 높이보다 키가 엄청나게 큰 미루나무가 있었다. 우린 6년을 그 운동장에서 뛰어놀았다. 미루나무가 지켜보는 가운데 훌쩍 커버렸다. 그래서 나에겐 소박하지만 간절한 바람이 있다. 세대를 잇는 순리가 물 흐르듯 흘러가기를.


학교 운동장에 여전히 아이들의 함성이 가득하길 바란다. 그때 그 아이들과 그 후대들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번성하기를 바란다. 연애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출산하고 그렇게 의미 있고 보람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학교 운동장, 풍파 많았던 세월이 지나가도 당당하고 무성하게 번성했던 미루나무 같은 후대들이 계속 일어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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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옛 추억이 담긴 학교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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