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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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 평택안성지역노조 위원장, 평택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이번 6월 1일 치러지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입후보자 등록 결과, 무투표 당선자가 494명에 달했다. 이는 전체 선출 인원의 무려 12%에 달하는 숫자다. 4년 전 지방선거보다 5배가 넘는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다. 기초지방자치단체장 6명, 지역구 광역의원 106명, 지역구 기초의원 282명, 기초비례의원 99명 등이 무투표 당선됐다. 이는 그만큼 기득권 거대 양당 체제가 공고히 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방자치는 분권을 통해 대한민국의 균형발전과 주민자치를 실현하자며 시작됐지만 이러한 취지가 오히려 무색해진 셈이다. 


문제는 이로 인한 폐해가 고스란히 유권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점이다. 무투표 당선 예정자는 선거법에 따라 선거 운동을 할 수 없고 선거 공보도 발송되지 않는다. 당락이 정당 공천권자에 의해 판가름 나고 그 이후 자질·공약에 대한 검증 과정도 없으니,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참정권과 투표권을 송두리째 박탈당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거대정당은 어떠한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다. 어찌 보면 지방선거마저 기득권 거대 양당 정치에 줄 세우게 한 모든 유권자의 책임일 수도 있다. 유권자도 참정권자이기 때문에 그렇다.


영남에서는 국민의힘, 호남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수십 년째 ‘일당 지배’를 하고 있다 보니 아예 경쟁 후보가 나타나지 않은 곳들이 많다. 대구·경북에서는 국민의힘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무더기로 나왔다. 대구에서는 29명 시의원 중에 20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시의원의 68% 이상이 무투표 당선된 것이다. 선거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경북에서도 도의원 55명 가운데 17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정치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할 비례대표는 오히려 임명직으로 전락했다. 기초의원 비례대표의 경우 대구에서 6명, 경북에서 15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호남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당만 ‘더불어민주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전라북도 도의원의 경우에는 지역구에서 36명을 뽑는데, 그 가운데 22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선출해야 하는 도의원 숫자의 61%가 무투표 당선된 것이다. 모두가 민주당 소속이다. 


광주광역시에서도 지역구에서 20명의 시의원을 뽑는데 그 가운데 11명이 무투표 당선됐고, 전라남도 도의원의 경우에도 지역구 55명 가운데 26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영호남만 이런 것이 아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무투표 당선자가 쏟아졌다. 인천광역시의 경우, 기초의원 선거구 10곳에서 20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2인 선거구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1명씩만 공천을 하고, 다른 후보들은 아예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기초의원을 1자리씩 ‘나눠 먹기’를 한 것이다. 


서울, 경기에도 2인 선거구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1명씩만 공천해서 나눠 먹기를 한 곳들이 여럿 있다. 서울 25개 자치구 구의원은 373명인데 투표 없이 이미 당선이 확정된 구의원이 107명에 달한다. 4년 전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지역 무투표 당선된 구의원 8명의 13배가 넘는다. 경기도도 마찬가지다. 406명을 뽑는 시·군 기초의원 선거에서 50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기초의원 비례대표 선거에 출마한 4명도 무투표 당선자다. 4년 전 4명에 비해 13배나 많다. 평택의 경우에도 18명 의원 정수 가운데 44.4%인 8명이 무투표로 당선됐다.


지방의회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이 대거 발생하는 일은 비정상적이다. 그만큼 생활정치의 영역은 작아지고 다양성은 발 디딜 틈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실상 거대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지방의원이 되는 것이니, 지방의원이 선출직이 아니라 기득권 거대정당 내지 공천권자가 임명하는 임명직이나 다름없게 된 셈이다. 이렇게 무투표 당선이 속출하는 것은 결국 지역 독점의 일당 지배 또는 양당 나눠 먹기를 가능하게 하는 선거제도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큰 틀의 제도개혁이 어렵다면, 최소한 기초지방의회에서 2인 선거구만이라도 없애고 3~4인 이상 선거구를 늘리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시·도의회의 조례를 통해서 2인 선거구를 없앨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기득권 거대정당이 카르텔을 형성해서 이익을 독점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막판에는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만든 4인 선거구조차 2인 선거구로 의회에서 수정안을 통해 더 쪼개는 행태를 보였다. 


경기도의회는 28일 시·군의원 2인 선거구를 당초 84곳에서 오히려 87곳으로 늘리는 내용의 선거구획정안을 의결했다. 당초 경기도 선거구획정위원회는 84곳을 유지하는 내용으로 획정안을 제출했는데 도의회 심의 과정에서 3곳이 증가했다. 반면 3인 선거구의 경우 74곳에서 69곳으로 오히려 5곳 감소했다. 이쯤 되면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왜 만들어 놓았는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앞서 부산시의회는 지난 27일 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10곳으로 제안한 4인 선거구를 1곳으로 대폭 축소하고 9곳은 2인 선거구로 쪼갰다. 전체적으로 27곳으로 제안된 3인 선거구는 25곳으로 줄였고, 18곳으로 제안된 2인 선거구는 39곳으로 늘렸다. 같은 날 대구시의회도 4인 선거구를 7곳 늘리는 시 선거구획정위원회 안을 심의하면서 중대선거구제 시범 지역 1곳을 제외한 6곳은 모두 2인 선거구로 나눴다. 이밖에 경남도의회도 당초 제출된 도 선거구획정위원회 안보다 3인 선거구의 경우 2곳을 줄이고 2인 선거구는 3곳으로 늘렸으며, 인천시의회도 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제안한 4인 선거구 4곳을 2곳으로 절반 축소했다. 


결국 지방선거는 기득권 거대정당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즉, 그들만의 잔치에 유권자는 동원될 뿐이다. 거기에다 후보자들이 쓴 선거비용도 모두 유권자의 몫이다. 선거가 민주주의 꽃이라는 말은 교과서에서나 나올 화려한 수사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는 지금의 선거제도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기득권 거대정당의 이름을 가리고 각 후보들의 공약을 볼 때 과연 어느 당의 후보인지 자신 있게 구별해 낼 수 있을까? 기후 위기, 비정규 불완전 노동, 성소수자, 여성, 이주 노동자 등등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 반드시 담겨야 할 이러한 열쇠 말들이 선명한 무지개를 만들어 내는 그러한 정책과 정당들이 설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내야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이루어 낼 수 있을 터인데, 지금의 선거제도 아래에서 우리는 과연 각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 속에서 이러한 말들을 찾아볼 수 있는가? 거대정당으로 수렴되지 않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욱더 소수화 되고 있는 현실이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혁명적인 수준의 선거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전면적인 3~4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도입,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 폐지, 중대선거구에 당별 입후보 1인 제한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도 국민투표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 지금과 같이 국회에 맡겨서는 안 된다.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거대정당 의원들에게 제 머리 깎으라고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주권자인 시민들로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기득권 거대정당 후보들에게 절대 유리한 지금의 선거제도 속에서도 출마한 소수 정당의 지방의원 후보, 무소속 지방의원 후보들에게, 어쩌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흡사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과 같은 선거 전장에 서 있는 다윗과 같은 후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기득권 거대정당 제도의 거대한 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표라도 더 가져가는 쪽에서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가 존재하고 그것으로 인해 거대 양당이 지배하는 국가일수록 빈부 격차가 커지고 ‘이것 아니면 무조건 저것’이라는 흑백논리 사고가 횡행하고 다양성은 오히려 잘 수렴되지 않는다. 유전적 다양성은 인류를 진화 발전시켜 온 원동력인 것이 분명할 터인데, 오히려 다당제를 가로막고 있는 선거제도로 인해 다양성을 통한 성숙과 행복은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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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 칼럼] 무투표 당선, 선거제도 개혁의 분명한 출발점으로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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