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칼럼 정재우 목사.JPG
정재우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우연히 일회용 물티슈를 뽑다가 나는 거기에 새겨진 문구를 보며 뭉클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잘 먹고 잘 자고, 엄마가 그랬으면 좋겠다. 따봉엄마 박ㅇㅇ님”

 

나는 처음엔 아기를 키우는 엄마가 자기 아기를 위한 소원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뒷 문장을 보니 자기 엄마의 노후건강을 비는 소원이었다. 아마 아기를 돌보다가 문득 엄마 생각이 난 모양이다.


여러분의 새해 소원은 무엇인가? 지난 한 해를 지나면서 우리는 분명히 보았다. 코로나19의 역습과 인류의 대응하는 모습을. 백신 확보를 위한 선진국들의 자국우선주의, 국제적인 인적교류 단절로 세계 정치와 경제가 급변하는 걸 보았다.


어쩌면 지난 2년은 ‘잃어버린 2년’이란 표현이 맞다고 본다. 일상의 멈춤, 방역 단계에 따른 유보된 자유, 재택근무와 비대면 교육, 집콕과 가족중심 문화 재발견, 소상인의 폐업속출과 몰락, 청년세대 기회실종과 능력주의 사회의 양극화, 결혼과 출산 지연, 싱글세대 급증과 싱글산업 번창, 부동산 고공행진과 하락, 역병의 장기화로 사회 부적응자 속출, 방역의료진의 탈진과 이직 등 끝이 없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는다. 그래서 세계적 전략회의가 열렸으나 강대국의 입김으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더하여 지구촌 각처의 대규모 천재지변들이 일어났다.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이 접수하고, 우크라이나는 미·러의 대결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이렇게 맞이한 세계 앞에 어떤 새해 소원을 품어야 할까? 서두에 이야기를 끄집어낸 아기 엄마와 같은 소박한 소원을 품는 것이 사치일까? 재난을 바라보는 나에겐 이런 소원이 있다. 재난을 재난으로 흘려보내지 말자는 것이다. 재난이 온 원인도 알고 인간의 한계도 알았기에 여기에서 지혜를 찾아보자. 도시재생사업처럼 재난 후 재생의 기회를 발견해 보자. 양극화는 인류사회 몰락의 길이다. 서로 배려하고 양보해야 한다.


그래서 다음으로 바라는 것은 재난형 삶의 스타일을 개발하자는 것이다. 재난이 온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게 많다. 그동안 무관심했던 것을 챙겨보자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일에서 가치와 보람과 행복을 찾아보자. 검소한 생활로 돌아가자. 소외된 약자들과 함께하는 훈련을 해보자. 마을공동체를 소중히 여기고 한 발 내밀어 보자. 공존, 공유, 공생의 의미를 다시 기억하자. 문화, 재능, 기술, 소유를 도구로 마을공동체 재생과 활성화를 일구어 보자.


한 가지 더 소원하는 것은 이런 모든 작은 일들이 가능하도록 매우 이상적인 조화와 화합을 꿈꾸어 보자는 것이다. 옛날 교과서에서 배운 ‘도덕재무장 운동’이 범세계적으로 일어난 적이 있었듯이 우리에겐 재난 후 공존을 위한 평화운동, 도덕과 배려 재무장운동, 잃어버린 이웃과 가족애 회복운동이 일어나길 소원한다. 그러려면 조화와 화합의 미덕이 절실하다.


깊은 산속 작은 옹달샘은 한결같이 맑고 시원하여 산속 작은 동물들의 샘터였다. 어느 날 사나운 사냥꾼이 샘을 발견하고 멱을 감고 흙탕물로 만들고 말았다. 작은 동물들은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지혜로운 토끼가 말한다. “조금 기다려봐. 여기 샘구멍으로 샘물이 퐁퐁 올라오고 있어. 곧 우리들 샘은 예전처럼 맑고 시원해질 거야”


재난의 후유증이 극심한 우리에게 간절한 소원인 지혜의 샘이 솟아나면 좋겠다. 그러면 곧 재난 이후의 샘터는 더 맑고 시원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게 될 테니까. 아기 엄마의 소원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잘 먹고 잘 자고, 엄마 지구가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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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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