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이은우(평택시민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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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평택여중에서 부모님의 생존 여부와 직업을 묻고, ‘지금 저희 집의 경제적 형편은 이렇습니다’ 항목에는 기초생활대상자인지, 부모가 이혼을 했는지 별거했는지, 집안에 문제가 있는지까지를 물어보는 비인권적 학생기초자료 조사서를 학생들에게 배부해 사회적 파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제보를 언론에 한 학부모님의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시민들은 “아직도 이런 시대착오적인 조사를 하는 학교가 있다는 것이 어처구니없다”고 분개하고 있으며, “예민한 시기에 학생들이 겪었을 상처가 걱정된다”며 우려를 나타나고 있습니다.
 
 방송에 보도 된 아이들의 인터뷰를 보면 “집안 사정 그런 거 자세히 쓰면 다 탄로날 거 같아서 쓰기 힘들었어요. 많이.”, “다른 친구들 간에 격차를 느낄 수 있어서 많이 민망했다”며 상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평택여중 2학년 10개 반 중 4개 반에서 이와 같은 내용의 설문지가 배포 되었다고 하는데 빙산의 일각으로 보여 개탄스럽습니다. 이런 잘못된 비인권적 조사를 ‘올해만 2학년 학생들 대상으로만 진행했을까’라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평택여중 일부 교사는 1학년 학생들에게는 전화를 걸어 ‘아빠와 엄마의 직업’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평택여중뿐만 아니라 관내 학교들이 학생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의도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이런 비인권적 가정조사를 광범위하게 진행한 것은 아닌지 철저하게 실태를 조사하고 이에 따른 엄중한 조치를 할 것을 경기도교육청에 촉구합니다.
 
 이런 비인권적 가정조사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는 문제 때문에 2013년 교육부에서는 ‘학력·직장·재산 등 학부모 신상정보 수집을 금지’하면서 자율 기재 방식의 학습환경조사서(구 가정환경조사서) 양식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부 학교, 교사들이 행정 편의적인 발상으로 예전 양식을 그대로 활용하거나 잘못된 양식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평택여중의 가정조사서는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이었고, 부모의 이혼, 별거, 가난 등을 묻는 것은 해당 가정이 마치 정상적이지 않은 것처럼 편견을 조장할 위험성이 큽니다. 비교육적, 비인권적, 차별을 조장하는 시대착오적인 가정조사서인 것입니다.
 
 하물며 정부차원에서는 ‘평등한 기회·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추진하면서 입사지원자들이 이력서에 성별, 출신지, 출신 대학, 사진 등 차별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사항들을 기재하지 않음으로써 지원자들의 개인적 배경이 심사위원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편견에서 벗어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미 공공기관, 공기업, 민간기업에까지 블라인드 채용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사회는 채용조차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교육현장은 아직도 행정 편의적인 발상, 학생과 부모를 대상화하는 퇴행적 사고, 부족한 인권감수성, 사회제도의 변화에 둔감한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지 참으로 답답한 현실입니다.
 
 아빠나 엄마가 대통령이든 무직이든, 이혼을 했든 안했든, 부자인지 가난한지가 왜 중요하고 교사가 왜 궁금해 해야 합니까? 이런 조사를 통해 교사 스스로 아이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합니까? 조사를 통해 알게 된 마음 속 편견이 아이들을 대할 때 드러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비인권적 조사서를 받아 본 아이와 부모의 심정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이만 바라보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교육현장을 촉구합니다.
 
 그러나 평택여중은 아직도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관련 교사 경고, 형식적 인권교육, 해당 학급 학생·학부모에게 사과 정도로 마무리하려 하고 있습니다. 학교 책임자인 교장 등은 뒷전으로 빠져 있습니다. 최소한 학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모든 평택여중 학생·학부모에게 사과 메시지를 보내야 합니다.
 
 평택교육지원청은 평택여중 교장에 대해 관리책임을 물어 엄중히 조치를 해야 하고, 인권감수성을 높여내기 위한 대책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정보 보호법, 교육기본법, 아동복지법, 교육부 지침 등을 위반한 심각한 범죄행위임을 해당 교사와 학교장은 인식해야 합니다.
 
 수시로 발생하고 있는 교육현장의 비교육적, 비인권적 행태는 학생들에게 직접적 피해와 상처를 주고 있으며, 학부모와 시민들에게도 교육계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불신이 이어지는 것은 교사들과 학생, 학부모와의 올바른 관계설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교육계는 개인정보, 학생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학생들을 알아가는 노력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행정 편의를 앞세워 대안을 모색하지 않는 것은 자질과 인성의 문제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 삼아 교육현장의 가정환경 조사 방법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더불어 교사들에 대한 인권 감수성 함양이 함께 이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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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우 칼럼] 평택여중의 비교육적, 비인권적 학생 가정조사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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