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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영의 세상보기] 3.1운동 100주년과 YMCA
작성일 : 19-02-23 17:49    
소태영(평택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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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전 한반도 
 
 최근 몇 년 사이 바람직한 현상 중 하나가 ‘한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방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이 1871년 신미양요로 시작하고, 영화 ‘암살’은 193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영화 ‘동주’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 해방직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가 극적인 요소와 과장이 많다고 하더라도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 잠깐 10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1864년 대원군과 쇄국정책, 1866년 천주교에 대한 탄압과 병인양요,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 1896년 독립협회 창립,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창립, 1905년 을사조약, 1906년 재일 조선YMCA 창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과 고종 퇴위, 1910년대 일제 무단통치 강화, 1919년 1월 고종 서거, 2.8 독립선언, 3.1 만세운동,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860년부터 1919년까지 겨우 60년간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역사적 사건들이 이어진다. 거대한 폭풍처럼 밀어닥치는 서구문명과 일본 제국주의, 그 크나 큰 소용돌이 속에서 이 땅의 젊은이, 민초들의 받아들임과 밀어냄, 도전과 응전, 창조와 항쟁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이런 거대한 물결 속에서 일제에 의해 독립협회가 강제 해산(1898년)된 일과 황성YMCA 창립(1903년)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YMCA 관계자는 9명이었다.
 
 또한 3.1운동을 전후해 함흥YMCA(1918년 3월), 선천YMCA(1919년 6월), 평양YMCA(1921년 3월), 대구교남YMCA(1921년 12월), 광주YMCA(1920년 8월), 원산YMCA(1925년 7월), 전주YMCA(1925년 10월)가 연이어 창립되면서 한국YMCA는 3.1운동이라는 민심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본격적으로 전국조직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당시 분위기를 엿보기 위해 글 두 꼭지를 보자. “열강의 침탈 속에서 조국의 독립과 개화를 부르짖던 독립협회가 열강의 음모와 그들의 앞잡이가 된 수구집권세력과 다시 그들의 앞잡이 황성협회의 폭력 앞에 붕괴된 지 4년만의 일이었다. 독립협회의 정신을 이어받은 청년단체로서 다시 YMCA가 출현한 것이다.”
 
 “1919년 1월 6일 조선인 유학생들은 동경의 조선YMCA 회관에서 신년웅변대회를 열고 독립운동의 방략에 대해 협의했고, 난상토론을 거쳐 이튿날 서춘을 비롯하여 유학생 임시대표위원이 구성되었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2월 8일 조선YMCA 회관에서 유학생 총회를 명분으로 한 ‘조선청년독립단대회’가 4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들은 독립선언서 낭독 후 시가행진을 예정했지만 일본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었고, 임시대표위원 중 상해로 출발한 이광수와 조선으로 귀국한 최근우를 제외한 9명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 3.1운동과 촛불혁명
 
 YMCA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장점 중 하나가 역사와 자주 대화하게 되는 것이다. “2019년 현재, 한국사회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평택YMCA가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질문은 “1903년 황성YMCA를 창립했던 지도자들은 그 시대를 어떻게 읽고, 무엇을 하고자 했을까?”라고 하는 질문과 맞닿아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1919년 2월 8일, 제국주의 심장부인 동경에서 과감하게 독립선언을 낭독하고, 만세운동을 펼쳤던 젊은이들의 기상과 의기에 놀라게 된다. 아울러 1919년 3월 1일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던 ‘비폭력 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추동하고, 참여했던 민초들의 거대한 물결에 가슴 떨리고, 그 뒤 잔혹하게 전개되었던 일제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YMCA 활동으로 이어졌던 민족의 저력에 고개 숙이게 된다.
 
 작년 한국YMCA 전국연맹에서 개최했던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모임에서 “3.1운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비폭력 촛불혁명이었다.”는 참가자 한 분의 말씀이 있었다. 민족대표 33인 중 YMCA 관계자가 9인이라고 자랑하지만 사실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서 독립을 선언한 후 스스로 일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연행되었다. 이렇듯이 3.1운동의 실질적인 도화선은 파고다 공원에서 개최되었던 민초들의 만세운동이며, 이곳에서 학생YMCA 전문학교뿐 아니라 중등학교 학생YMCA도 큰 역할을 하였다. YMCA에서는 이 부분을 더 비중 있게 바라봐야 한다.
 
 2016년 말~2017년 초를 뜨겁게 달군 비폭력 촛불혁명, 우리는 지금도 그때의 뜨거운 열기와 자발성, 시민의식과 공동체성, 시민 한명 한명의 목소리가 모여 거대한 군중의 함성으로 포효할 때 느꼈던 가슴 떨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비록 일제에 의해 짓밟혀졌지만 100년 전 전국 방방곡곡에서 전개되었던 민초들의 ‘비폭력 만세운동’이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한 근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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