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이건일(성남시 태평2동복지회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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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꼰대’ 단어만 읽어도 숨이 막힌다. ‘꼰대’라는 말은 ‘은어’다. 바른 언어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단어다. 학창시절에는 아이들이 꼰대라는 단어를 선생님에게 쓰곤 했다. 주입식 교육세대로 태어나 교육을 받았던 당시에는 선생님의 말은 절대적이었고 진리였다. 학생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선생님 철학과 원칙, 그리고 교과과정이 중요했던 시기다. 그래서 당시 학생들은 선생님을 향해 ‘꼰대’라고 별명을 즐겨 지어주곤 했다.
 
 ‘꼰대’는 때로 ‘기성세대’를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다. 당신들의 살아온 세월을 정보 삼아 아이들을 다룬다. 아이들은 늘 ‘어른들은 모른다’라고 이야기하며 저항하고, 어른들은 ‘너희도 나이 들어봐야 안다’라고 핀잔을 준다. 이것은 오래된 갈등이다. 이러한 갈등의 주요 원인은 ‘기성세대는 모두 알고 있지만 어린 세대들은 모른다’에서 시작된다. 즉 여기에서도 절대적인 진리는 기성세대의 경험이다.
 
 이제 꼰대라는 말은 선생님, 부모 세대를 넘어 ‘노인세대’를 가리키고 있다. 꼰대라는 것이 결코 나이의 많고 적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 당사자의 생각과 관련되어 있지만 지금의 세대에서 꼰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누가 뭐래도 노인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노인을 하나의 단어로 정리해 보라고 한다면 단연 ‘꼰대’다. 이는 세대 간의 갈등을 그대로 보여준다.
 
 꼰대는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고 그것을 진리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를 상대방에게 강요는 하지만 절대 다른 의견을 듣지 않는다.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생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꼰대를 혐오한다. 속된 말로 재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그를 따르던 제자 한 명이 소크라테스에게 다가와 아테네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소크라테스’ 스승님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를 극구 부인했다. “아테네에는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 스승이 가장 똑똑한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아테네에서 이름난 학자들을 한 명씩 만나기 시작했다. 모든 학자들을 만난 소크라테스는 제자를 불러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확신이 들었다. 내가 아테네에서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를 들은 제자가 소크라테스에게 까닭을 물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대답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똑똑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모를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그들보다 똑똑하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다.”고 제자에게 설명했다.
 
 아는 것을 알고 모른다는 것을 알면 모두 아는 것과 같다. 여기서 나온 말이 그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다. 우리는 평소 이 격언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 꼰대들의 시각에서 해석한다. “너의 분수를 알아라!”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와 같은 이야기에 활용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분수를 알라는 말이 아니다. 바로 “내가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알라”는 의미다.
 
 이 시대의 꼰대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을 알라”는 말이다. 경험이 일반화되어 진리가 되고 정답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다양한 사람들에게는 그마다의 다양한 생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차이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만큼 정신적으로 건강 한 것은 없다. 세대 간 소통의 갈등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꼰대가 스스로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게 될 때 비로소 선배가 된다. 우리 모두는 꼰대를 싫어하지만 선배는 좋아한다. 기성세대와 노인세대에게 젊은 세대가 바라는 것은 선배 된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자신을 알아야 한다. 물론 내가 모를 수 있다는 것을 포함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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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일의 복지탐구] 꼰대를 위한 혁명, ‘꼰대와 선배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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