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이장현(평택대학교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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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깊어지면 가을이 왔다고 한다. 올해는 유독 그리운 파란 하늘을 보기 위해 몇 번이나 하늘을 보았던지, 미세 먼지로 하늘을 가리며 시작된 악재가 연이어 이어지는 이때는 참 난감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다.
 
 꿈이 있어야 할 것 같고 천진하고 순진해야 될 것 같은 청소년들이 경악 할 수밖에 없는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 의식이 있는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주고 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얼마나 잘못 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수 천 년 전 이집트 벽화에서도 젊은이들의 방종을 개탄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있지만 생각 없이 준비 없이(?) 지금에 도달했기에 더 당황스럽게 여겨지고 있다. 오늘날은 과거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과학의 발전 중 통신의 발달은 많은 편리함과 동시에 많은 부정적 이면의 사건들을 낳고 있다. 인터넷왕국은 차고 넘치는 정보와 걸러지지 않은 정보들의 남용으로 모두가 무방비 상태로 노출 된 결과물로 오늘의 사건을 맞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을 시작으로 청소년의 청소년답지 않은 일탈행동들이 최근 논란이 되면서 소년법 폐지 청원자가 25만 명을 넘어서는 범국민적 공분이 일어나고 있다. 과연 청소년의 일탈행동을 법으로만 제제 한다고 해결이 될까하는 의문이 든다. 일반 형법과 마찬가지고 사형을 언도한다고 해서 없어질까?
 
 당근과 채찍 요법이 가장 일반적인 교육의 논리라면 청소년에게 당근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누구나 이야기한다. 그들에 대한 기본적인 인격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있었는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한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강요하는 사회, 청소년의 인권은 무시되고 청소년의 강점 보다는 단점과 문제에만 집중하는 사회기에 문제가 된다. 지금 우리아이들은 걷기도 전에 교육의 열풍 속에 빠져들고 있다. 어릴 때부터의 교육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풍토는 조기교육의 병폐를 낳았고 부적응과 비행의 청소년들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비행의 강도 역시 그 수위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세지고 있어서 공분을 가지는 모든 어른들은 흥분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냉철히 이성적으로 사건을 보고 그 저변에 있는 우리의 일상들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다는 아니지만 문제가 되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는 문제가 되는 의식을 가진 부모가 존재한다. 과도한 사랑이 문제가 되기도 하고 결핍된 사랑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경제적 부유함이 이유가 되고 경제적 빈곤이 또한 이유가 된다. 일등을 향해 달리기만 하는 우리의 의식도 전환이 필요하다. 일등이 아니면 존재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지게 하는 사회 환경 또한 그렇다. 이제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할 때이다. 딱 내세울 정답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긍정의 눈으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방글라데시의 행복 지수가 제일 높은 이유를 무엇으로 설명할까? 지적 수준의 낮음, 발전된 문화의 편리함과 경제의 위력을 겪어보지 못해서라고 단정 짓기 에는 설득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전으로 80만 명을 학살한 상처를 갖고 있는 르완다를 생각해 보면 조금의 실마리가 풀릴지도 모르겠다. ‘우무간다’는 르완다어로 함께 돕는다는 뜻을 가진 말로, 그들은 처벌대신 용서를 택했고 전 국민이 그에 동참하여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서로 위로하고 있다. 우리도 ‘우무간다’가 필요하지 않을까? 단 조건은 있다. 용서란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경우에만 해당 되어야 할 것이다. 악어의 눈물에 속임을 당하면 곳곳에 숨겨진 시한폭탄 같은 철부지들과의 공존으로 우리는 더 이상 내일의 행복을 보장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행복은 유전자나 행운이 아니다.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 안에 있는 최고의 힘을 발휘하여 주변을 변화 시키고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을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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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무간다’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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